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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들은 필요한 모든 것이 남성에 맞춰진 데이터에 따라 일상에서, 일터에서 또 재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한다. 여성은 공백으로 남아있는 세상을 이제 바로잡아가야 한다.
여성들은 필요한 모든 것이 남성에 맞춰진 데이터에 따라 일상에서, 일터에서 또 재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한다. 여성은 공백으로 남아있는 세상을 이제 바로잡아가야 한다. ⓒ 알라딘
 
'데이터'라는 단어는 객관성을 이미 내포하는 단어일까? 세상의 무수한 데이터가 한 성별만을 기준으로 수집되고 분석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가 쓴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일상생활을 하고 노동을 하고 재난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남성의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적 제도가 정해지며, 여성이 고려되지 않은 데이터로 인해 여성들이 매번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데이터 공백

저자는 여성 데이터 공백에 대한 논문, 신문기사, 국제기구 자료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일상, 노동, 의료 등 많은 영역에서 여성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도시 계획, 제도를 설계할 때도 남성을 표준으로 삼아 여성의 삶이 불편한 상태로 유지된다. 사무실 온도도, 화학물질 유해성 정도까지도 남성에 맞춰져 있다 보니 남성에게 괜찮다면 여성이 느끼는 문제는 그저 '혼란변수'로 여겨져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의 질병은 데이터에 쌓여있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여성의 증상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여성은 오랫동안 고통받기도 한다. 이 현상은 국가가 다르면 다른대로, 학력이나 계급이 달라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을 드러내지 않거나 여성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무수한 정책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여성을 지운다는 것은 남성, 특히 백인 비장애인 남성 외의 존재들 –여성, 장애인, 비백인– 을 사회에서 지운다는 의미가 된다. 젠더 데이터 공백이 있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 자체가 고쳐야 할 문제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남성은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전제는 정확하지 않다. 이런 전제 때문에 역사적 자료에는 오류가 발생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이후 자료에도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이 결과 남성은 보편이고, 여성은 특수하다고 여겨진다.
 
(여성은) 특수한 정체성, 주관적 관점의 취급을 받게 된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여자들은 문화에서, 역사에서, 데이터에서 잊어도 되는 존재, 무시해도 되는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여자는 투명 인간이 된다. (50쪽)

저자는 이렇게 데이터에 공백이 있는 이유가 '인류가 남성만으로 구성됐다고 여기는 무념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주장한다. 온갖 알고리즘이며 슈퍼컴퓨터에 데이터를 넣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편견으로 가득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동 아닌 노동

여성이 투명인간이 되는 경우는 노동에서도 나타난다. 여성은 전 세계적으로 무급 노동의 75%를 담당하고 있다. 여자의 일일 무급 노동 시간은 3~6시간인데 반해 남자는 평균 30분~2시간이다. 대표적인 무급 노동은 설거지, 청소 같은 집안일, 그리고 돌봄 노동이 거기 해당한다. 여성의 노동 중 무급노동은 경제에 포함되지 않고 경제 활동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여성은 유급 노동을 하면서 무급 노동까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정적이지 않은 파트타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렇게 꾸준히 일하기 힘든 여건에 있는 여성이 경력을 쌓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저자는 능력주의의 문제까지 짚어낸다. 이미 여러 가지 핸디캡을 가지고 경력을 시작하는 여성에게 육아 부담까지 따라온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능력을 부당하게 평가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성공한 모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교과서에서 보여주는 성공한 경력자는 역시 남성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필요한 자리에 여성이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은 왜 생기는걸까? 과거 남성만이 공적 영역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여성이 나중에 합류했지만, 여성이 남성만큼 자리하지 못한 상태가 데이터가 되고 여성은 그러한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 아닐까?
 
여성과 그들의 삶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성차별과 젠더 차별을 계속 당연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382쪽)

데이터 공백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 상황을 바꿀 의사가 없다는 것이고 여성에게 계속해서 왜곡되고 부족한 데이터를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저자는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성별을 알리지 않을 경우 여성의 취업률이 올라가고, 여성이 교과서에 나올 경우 여학생의 시험 점수가 상승한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지만 그 능력이 제대로 된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오류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은 번번이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좌절한다. 이미 데이터의 바탕에 왜곡이 있는데 그 데이터에 따른 의사결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란 어려운 것이다.

여성을 더 보고 목소리를 더 들을 때

저자는 여성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주어지면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에 젠더 데이터 공백이 있었기에 남성 편향적 정책이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여성에게 피해가 가고 있다. 여성 정치인이 더 많이 선출할 때 여성문제, 가족문제, 교육과 돌봄노동 문제에 발언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제시된다.

여성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은 바로 이 의제에 재정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남성 정치인들이 지배해온 사회와 분명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다.

저자는 성별/젠더 데이터 공백에 대한 해법이 없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여성 진출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여자들을 의사결정과정, 연구, 지식 생산에 참여시킨다면 여성의 의견이 모든 과정에 반영되고, 여성이 데이터에 남게 된다. 이렇게 할 때 지금까지 이 사회가 지워버린 여성의 자리가 존재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인 유청희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2월호에도 연재됩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은이), 황가한 (옮긴이), 웅진지식하우스(2020)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데이터 공백#무급노동#남성편향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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