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생각이 나와는 많이 다르고 성격도 독특하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왔나 싶고, 나만의 취향이란 것이 있나 싶다. 성격적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는 것도 큰 단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정확히 규정하고 독특한 표현으로 자신을 돋보이도록 드러내는 것은 기본이 돼야 하는 건가 싶은데, 명확하게 나를 규정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따라온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넘친다. 그들이 방송에서 자기 PR(Public Relations)과 함께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끄는 모습은 당당하고 멋져 보인다. 카메라가 돌고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고 전국으로 방송되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정확한 어휘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당당하게 전달한다. 부럽다 못해 샘이 난다.
더불어 내가 가진 콘텐츠는 뭘까 생각해 본다. 나도 뭔가가 있을 텐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도 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며 TV 앞에 앉아 평범하면서도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손동작, 표정, 눈의 미세한 찡그림, 발의 동선, 머뭇거림도 자연스럽다. 거기에 강렬한 눈빛과 시선 등. 저 정도는 나도? 아니 저건 좀 어렵고... 저 말은 내가 흔히 쓰는? 저런 표현은 너무 멋지고... 끝없이 비교를 한다.
짱구의 삐딱한 인생 기술
일본의 경제 보복 이후 한때 대화방의 메인 화면에 보란 듯이 '노 재팬'(NO JAPAN)을 걸었고, 이후로도 일본의 상품을 낱낱이 검열해서 피하고 있는 중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일본 작가의 도서는 의식적으로 피했다. 문화 강좌를 많이 듣지만 일본 작가의 강연도 피했다. 적극과 소심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가볍게 읽으려고 빌려온 이 책, 짱구가 나온다. <크레용 신짱>의 주인공. <크레용 신짱>은 일본 작가 요시토 우스이(Yoshito Usui)의 만화다. 이 작품을 이야기의 모티브로 가져간 책이 최고운의 <멀쩡한 어른 되긴 글렀군>이다. '내 일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짱구의 삐딱한 인생 기술'이라는 부제로, 짱구의 대응을 통해 작가가 느낀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있어 보이는 인생이요?
싫은데요. 안 할 건데요."
인생의 여섯 번째쯤의 목표가 '있어 보이는 인생'이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이것을 당당히 안 하겠다고 말하는 작가의 배짱이 부럽게 느껴졌다. 거기에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책하는 어른들에게 추천한다"는 독자의 추천의 말도 표지에 적혀 있다. 분명 나를 위한 책이다.
과연 지금 이 삶이 나의 본편일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결국 내가 할 일은 따로 있고, 지금은 임시로 사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임시의 끝은 언제일까.
나이가 내일모레면 육십이 가까워오지만 비슷한 생각을 한다. 지금의 삶은 부록일까? 남들은 쉬어도 된다고 말하는데, 언제까지 쉬면 되는 건가... 묻지 않는다. 그냥 상투적으로 건넨 위로 비슷한 말일 테니까. 현재의 삶이 부록이 아니라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나조차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 이어지면 금방 피곤해지고 무력해진다.
어느새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는지, 뭘 그렇게 구시렁거리냐며 옆에서 툭 건드린다. 재능이 없다는 말에 실의에 빠진 이모에게 착가운 맥주를 건네는 짱구처럼 내 옆의 사람도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말한다. 한 잔에 정신이 번쩍 들고, 몸이 말랑말랑하게 풀어지면서 무겁던 생각이 가벼워진다. 오늘은 그만, 내일 또 생각나면 답을 고민하면 되고.
모두 공평하게 이번 생은 처음이기 때문에,
인생의 전환을 맞이할 때마다
남자도 여자도 똑같이 새로운 자신을 낳아 기르며 살아간다.
남편이 되면 남편인 나를 낳아 길러야 하듯이,
노인이 되면 노인인 나를 낳아 길러야 한다.
이는 생이 끝날 때까지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이십이 될 때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처럼 마음가짐이 특별했던 것 같다. 마흔이 되고는 인생의 전환기라며 뭔가 달라지겠지, 더 큰 의미 부여를 했다. 그런데 삶은 마흔이 넘어서도 지난했고 힘들었다. 마흔 하나도, 다시 오십이 넘어도 인생은 편안하고 여유롭지 않았고 지금도 매 순간이 시끄럽다. 매일의 하루가 나를 낳고 기르느라 그랬던 건가 싶다.
힘들었겠구나 이해하려는데 또 이런 말도 한다. "사는 것, 나이 먹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으면서 오늘 하루를 사세요." 남은 시간까지 쭉 이러고 살 수 있을까?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심각해지면 또 답이 없다. 고민한다고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지 싶은데 은근히 위로가 된다
상담일을 하고 들어왔는데 바로 딩동! 현관 벨이 울렸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과 관리실 직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아마도 수도관이 낡아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단다. 계획상으로는 집수리는 무조건 내년 가을 이후가 되어야 했다. 모든 것을 미루고 버티고 사는데 당장 아랫집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진다고 한다. 집이 더는 못 버티겠다고 하니 고칠 수밖에.
주어진 대로 내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건,
시시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참 다행인 일이란 걸 잊지 말아야지.
수도관 교체하는 업자는 잠깐 살피더니 내일 수리하러 온다며 "금액은 백이십입니다" 쿨하게 말하고 갔다. 회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계획에 없던 지출, 집안에 온통 횟가루가 날리고 천천히 가라앉는 악몽 같은 상황, 이사에 버금가는 정리가 다시 시작됐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많았다. '짱구'와 '네네(짱구 여자 친구)'가 '소꿉놀이할 때 지어먹는 돌멩이 밥 같은 것'들이. 정리가 아니라 버려야 할 것들을 아직도 이고 지고 있었나 보다.
돌발 상황을 맞이하면 가슴부터 뛰고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도 흐려진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 허둥대다 어떡하든 견디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곧 물에 잠길 것 같은 위험한 순간에 짱구가 외친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힘을 빼." 빈틈없이 계획을 세우고 동동거리며 살아도 예외가 생기니 마음이라도 편히 먹어야 화병에 걸리지 않을 것도 같다. 책을 읽으며 집안의 상황을 따라가니 복잡했던 것이 의외로 가볍고 쉬어는 것 같다. 이게 뭐지 싶은데 은근히 위로가 된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나를 규정하는 작업을 해 보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사람의 눈엔 나도 꽤 독특한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의 뚜렷한 주관과 깔끔한 자기 정리를 부러워하지도 말고 비교할 것도 없다. 그럴듯하게 내세울 화려한 멋은 없어도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내가 드러나는지도 모르니까. 조금 시시해도 이게 또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