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신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백신을 맞게 될 백신소비자로서 '과연 나와 우리 가족이 맞게 될 백신이 안전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집하던 중 '백신물량 확보'에 대한 우리 언론기사를 무수히 접하게 됐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은 인구수 대비 3배 넘는 물량을 확보하고 접종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뭐 했냐'는 식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기사도 있었지만 비전문가인 나조차 납득할 수 없는 '몰아가는 기사'도 많았다. 아마 미국의 바이든 당선자가 백신 접종을 하게 될 21일부터 더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기사들을 접할 때 백신 소비자이자 납세주체인 국민으로서 마땅히 던져야할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본다. 낚이지 말고 나와 우리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1. 나는 백신을 언제쯤 맞게 되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문일 것이다. 언론 보도만 보면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일반인 접종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보이고 있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유력지인 <엘에이 타임스(LA TIMES)>는 '언제 쯤 백신을 맞을 수 있느냐'는 독자들의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년 봄이나 여름 쯤 맞게 되니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공식적으로 답하고 있다.
인내심을 가지세요. 당신이 백신을 맞게 될 시점에 보건당국의 연락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21년 봄 또는 여름이 유력합니다. (엘에이 타임스 온라인, 12.17)
백신 접종의 1순위는 의사, 간호사 등의 보건의료종사자들과 학교 운영진을 비롯한 필수 노동자들, 65세 이상의 기저질환 노인들이라는 게 미국 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가 최근 확정한 가이드라인이다.
영국의 경우는 나이 순서대로 백신을 맞게 된다. 요양원 거주자와 종사자가 1순위이고, 이후 나이 순으로 80세 이상, 75세 이상, 70세 이상으로 순위가 내려간다. 이렇다보니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종사자들이 '올 겨울 안에 맞게 해 달라'며 불만을 토로한다고 18일자 영국 <가디언>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 겨울을 넘겨야 백신을 맞게 되는 것이다.
백신 확보 선진국들의 목표는 내년의 최대유행기인 겨울이 오기 전에 국민적 예방접종을 끝내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보건당국은 내년 2~3월부터 백신물량을 순차적으로 도입해 내년 11월 전에 예방접종을 완료하는 단계적 시행방안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18일 공식브리핑을 통해 "내년이 끝나기 전에 4400만 명분의 백신은 확보돼 있다"고 밝혔고, 양동교 질병관리청 의료안전예방국장은 "백신이 공급되면 신속하게 접종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2. 백신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충분한 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라고 답한다면 세금 많이 낼 준비를 해야 한다. 백신확보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나라들과 천문학적인 인구를 가진 나라가 우선적으로 물량을 선점하는 게 백신시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미국 듀크대 세계보건혁신센터가 집계한 코로나19 백신 통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인도가 전 세계 백신의 57.5%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의 물량을 합하면 62.3%, 즉 백신 10개 중 6개가 미국, 유럽, 인도의 몫인 셈이다.
16억 회분으로 코로나19 백신 최다보유국인 인도의 인구는 2018년 기준 13억5300여만 명이다. 15억8500만 회분을 확보해 2위를 기록한 유럽연합은 27개 회원국이 공동구매에 나서 경쟁력을 확보했고, 10억 1천만 회분을 확보해 3위인 미국은 이미 백신 개발업체에 수조 원의 연구비를 지급했고, 지난 8월 화이자 백신 한 종류를 1억 회분 선구매하는 데에만 20억 달러, 우리 돈 약 2조2천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 정부가 최근 밝힌 내년도 모든 종류 백신 구매 비용(1조3천억 원)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다. 미국 정부가 화이자보다 단가가 비싼 모더나 백신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백신으로 10억1천만 회분을 확보한 만큼 백신구입에 소요되는 예산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물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그 만큼 예산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만일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실정이라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백신구입에 목을 매야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확진자수가 문제가 아니라 사망자수가 이슈이다. 19일 기준으로 LA카운티 한 지역에서만 일일 사망자수 99명, 시간당 4명 넘게 코로나19로 죽어간다. 미국 전체로 하루 329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영국은 532명이고, 마크롱 대통령이 확진판정을 받은 프랑스는 258명이 사망해 누적 사망자수 6만 명을 넘어섰다. 더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나 방역체계 개선만으로는 손볼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백신구매를 사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일일 사망 14명(누적 659명), 신규 확진 1천 명 대로 접어들면서 어려움을 겪고있다. 그러나 이 때 집단면역이 가능한 필수보유량의 우선확보 여부와 예산집행력,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접종순위, 그리고 무엇보다 '백신의 안전성' 검증에 분배해야 할 때이다.
3. 우리가 확보한 백신물량은 확실한 것일까
이 대목에서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라는 생소한 용어가 나온다. 중요한 용어다. 나는 처음에 우리 정부가 '코백스'를 통해 백신을 구매했다고 브리핑하기에 '코백스'라는 중간유통회사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코백스는 그게 아니라 몇몇 선진국의 백신 입도선매 때문에 소외될 수 있는 세계인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만든 국제 프로젝트다. 참여국의 공동출자로 백신 개발을 후원하고 백신이 나오면 공평하게 원하는 시기에 공급받을 수 있는 일종의 '백신 은행' 또는 '백신 협동조합' 이다.
백신개발은 돈이 많이 들지만 실패율도 높아(평균 성공률 10%) 백신 개발에 선뜻 투자할 수 없는 작은 나라들이 공동 출자를 바탕으로 대량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기에 '백신 펀드'라고도 불린다.
앞서 미국 듀크대가 집계한 코로나19 백신 통계에 따르면 인도와 유럽연합, 미국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백신을 확보한 집단이 바로 '코백스'다. 코백스는 7억 회 분의 물량을 확보해 캐나다(3억5800만), 영국(3억5500만)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국은 '코백스'를 통해 신속하고 안정적인 최소 물량을 공급받고, 백신 개발사와의 개별접촉을 통해 더 많은 양을 확보한다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19일 코백스에 선급금 850억 원을 지급한 우리 정부는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 명분을, 글로벌 제약사와의 개별 협상을 통해 3400만 명분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코백스에서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백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했지만 임인택 국장은 브리핑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사노피-GSK 개발 백신 세 종류를 (코백스로부터) 제안 받았고, 세 가지 종류 백신에 대해서 공급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내년 1분기 공급받는 것을 목표로 코백스 집행부와 회의를 갖고 있다고도 밝혔다.
코백스 확보 물량(1000만 명분) 이외의 나머지 3400만 명분은 정부가 다국적 백신 개발사들과 개별접촉을 통해 확보해야하는 물량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능력이 평가된다. 그렇다면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드러난 우리 정부의 능력은 어떨까? 적어도 접근자세는 엿볼 수 있다. 안전성이다.
4. 나와 가족이 맞게 될 백신은 안전할까
쏟아지는 뉴스의 제목들만 얼핏 보면 미국에서 '화이자 백신'이 FDA(미식품의약국)의 긴급승인을 받으면 우리 뉴스는 '화이자 백신 얼마나 확보했냐'고 묻는다. '모더나 백신'이 승인받았다고 하면 '모더나는 왜 아직 안 했냐'고 한다.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과학적인 사고는 아니다. 의학전문기자들은 알고 계실 것이다. 현재 뉴스에 오르내리는 백신들의 제조방식 중에 인류가 오래전부터 써온 방식이 있고 최근 들어 많이 쓰는 방식도 있지만, 상용화된 적이 거의 없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바로 '화이자'와 '모더나'가 만든 백신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설계도가 담긴 mRNA를 우리 몸에 바로 넣어주는 일명 '핵산 백신' (또는 mRNA 백신)이라고 통칭한다.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핵산(DNA, RNA)을 직접 몸에 넣어주는 겁니다. 이 유전물질이 단백질 껍질을 만들면 우리 몸에 항체가 생기겠죠? 그런데 지금까지 상용화된 '핵산 백신'은 거의 없습니다.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방식이라는 거죠. (이충헌 KBS 의학전문 기자의 2020. 7.28. 리포트 중)
코로나19 백신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바이러스를 죽여서 만든 '사백신'은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중국의 시노벡과 시노팜이 해당된다. 다음은 해롭지 않은 바이러스에 코로나19의 유전물질을 실어 몸에 넣어주는 '유전자 재조합 백신'으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백신이 이에 해당된다.
이에 반해 이번에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핵산백신'은 아직 한번도 상용화된 적이 없는 방식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백신개발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임상시험을 모두 거치고도 이를 통해 축적된 안전성, 효율성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제출해야 하지만 미국 FDA는 사안의 시급성을 들어 '긴급승인'이라는 방식으로 상용화의 길을 터준 것이다.
지난 18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일문일답 자료에 따르면 옥스퍼드-아스트라제레카 백신과 관련한 부작용 사례 1건, 얀센 백신 관련 1건에 대한 관찰기록이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 관련) 원인불명 부작용(횡단성척수염, 영국 1명)으로 임상 자체 잠정 중단(9.8)하였으나, 안전성 검토 후 영국 임상(9.12), 미국 임상 재개(10.23)"
"(얀센 관련) 3상 임상시험 진행 중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이상사례 발생으로 임상시험 일시중단(10.12) 되었으나, 안전성 검토 후 임상 재개"
한번도 상용화된 적 없는 방식의 백신이 미국 내 접종을 앞두고 있다. 다수의 과학자들은 제출된 성적이 워낙 좋아 그것만으로도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이 최우선이고 백신의 안전성 검증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기에 안전성 여부에서 눈을 떼면 안 될 것이다. 아무쪼록 모든 백신들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훌륭한 성공을 거두기를 기원한다.
<참고자료>
1. Danis Campbell, 'Give NHS staff Covid vaccine now or face growing winter crisis, say hospital bosses' (The Guardian online news, 2020.12.18)
2. Jessica Roy, 'When can I get the COVID-19 vaccine?'
(Los Angeles Times online news, 2020.12.15)
3. 최현준, '인도 EU 미국, 전세계 백신의 60% 확보...한국은 17위 해당' (한겨레 온라인, 2020.12.8)
4. 김양혁, '정부 내년 코로나 백신 예산 1700억원...화이자 모더나는 '그림의 떡' (조선비즈, 2020.11.23)
5. '코로나19백신, 다른 나라는 이미 계약 맺었다는데 한국은 괜찮을까?' (BBC NEWS KOREA 온라인, 2020.11.18)
6. 이충헌, '모더나 방식의 코로나19백신 과연 안전할까?' (KBS 뉴스 온라인, 2020.7.28)
7.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부 "코로나19 백신 접종계획 연내 마련...내년 11월 전 완료 목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뉴스 온라인, 2020.12.18)
8. 보건복지부, '백신 도입 늦다? 부작용 임상 중단 등 상황 감안하며 협상 진행'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뉴스 온라인, 2020.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