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겨울에 태어났고 그 다음 해 3월 이제 막 매화꽃이 필 무렵 입양을 왔다. 검정색과 흰색이 알록달록한 보더콜리로 명랑하고 놀기 좋아하며 에너지가 넘쳤다. 입양하고 한해가 지나 첫 생리를 했다. 그러자 동네방네 온갖 개들이 밤새 우리집을 들락거리더니 봄이가 임신을 했다.
11월 2일 첫 출산으로 새끼 7마리를 낳았다. 우리가 모두 외출했을 때 홀로 출산을 하였고 집에 왔을 때는 눈도 뜨지 않는 새끼들을 핥아 주고 있었다. 너무 고생했다고 우리는 눈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마른 북어를 듬뿍 넣고 죽도 끓여주었다. 따뜻한 이불을 가져가 덮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못 보도록 가림막도 쳐 주었다. 아직도 어린데 봄이가 안쓰러웠다. 며칠이 지나고 새끼들을 보러 갔다. 다행히 봄이가 경계하거나 예민하지 않았다.
새끼들은 신생아 같았다. 붉은 살빛에, 피부가 쭈글거리는 모습이 꼭 주머니쥐 같았다. 하지만 3주쯤 지나니 눈을 뜨기 시작했고 알록달록 검정과 흰색의 얼룩소 같은, 작고 귀여운 보더콜리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남편은 술만 먹으면 7마리의 새끼들을 양팔에 껴안고 들어와 거실에서 안고 자곤 했다. 품에서 자고 있는 강아지들은 꼬물꼬물 너무 앙증맞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얼마간 더 키우고 싶었지만 젖을 뗀 후 3개월이 지나 한 마리씩 입양을 보냈다. 보더콜리를 키우는 일은 단단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힘이 많이 든다. 입양은 보냈지만 계속 사랑스러운 모습의 새끼들이 눈에 밟혔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두 번째 출산을 하여 8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한 마리 빼고는 다 입양을 보냈다. 그때도 마음이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작년 여름이 오기 전 5월, 우리는 큰일을 모의하였다. 다름 아닌 강아지들의 중성화 수술이었다. 우리 집에 와서 두 번의 출산을 하였고 총 15마리의 새끼를 낳은 봄이가 세 번째까지 출산을 한다면 으스러지고 말 것 같았다. 새끼를 많이 낳으면 개들도 오래 못 살고, 부인과 질환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또한 입양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기도 했다. 우리는 결단하지 않으면 안됐다. 또한 입양이 안 된 보리도 같이 있었고 곧 생리를 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밤새 강아지들을 지킬 수도 없고 높은 담을 세울 수도 없었다. 중성화 수술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 같았다.
근처에 사는 강아지 핑이네 집에는 울타리를 쳐 놓았는데도 수놈들이 그 울타리를 뚫고 들어왔다고 했다. 핑이네도 첫 번째 임신을 했을 때는 아무 생각을 안 했다가 두 번째 임신을 하고 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울타리를 높게 쳐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보란 듯이 또 세 번째 임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핑이도 때가 되었다. 핑이에게도 중성화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다. 마침 출산한 지 3개월이 되었고 또 임신을 걱정하고 있었던 찰나에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동물병원부터 수소문하고 직접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돈 앞에서 절망을 하고 말았다. 암놈의 수술은 비용이 너무 비쌌다. 일단 봄이는 몸무게가 20킬로 이상이여서 70만 원, 보리는 45만 원이었다. 둘이 합해서 100만 원까지 해주신다고 하였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우리는 빠듯한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또 고민하고 있는 차에 작은 읍내에 있는 한 동물병원에서 더 저렴한 금액으로 중성화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고민도 없이 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봄이와 보리. 그리고 옆집 핑이와 한 집이 더 합류하여 그 집 아톰과 함께 우리는 핑이네 큰 차에 타고 함께 병원에 찾아갔다. 하지만 일단 차에 타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다.
핑이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뒷자리에서 내가 봄이와 보리를 잡고, 핑이는 목줄을 길게 하여 운전하는 핑이 엄마가 느슨하게 잡고 출발했다. 운전석 옆자리에는 수놈 아톰과 엄마가 자리를 잡았다. 올라가자마자 네 마리의 개들이 불안해서인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톰과 핑이는 가만히 있었는데 활발하고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의 소유자인 보리와 봄이는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얼마나 손에 힘을 주고 목줄을 잡았는지 나중에는 손목이 아파왔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차 안에 강아지와 사람과 털과 냄새가 뒤범벅됐다. 강아지들의 불안과 사람의 답답함, 절망감이 섞여 그야말로 생난리였다.
봄이와 보리가 계속 움직이고 얼마간 잠잠하던 핑이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뒷자리에 세 마리와 사람 한명과 섞여 완전 아수라장 되었다. 30분 거리가 거의 몇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시골로 더 시골로, 우리는 그렇게 30여 분 정도가 지나 병원 앞에 도착하였다. 힘들긴 했지만 다행히 큰일 없이 잘 도착했다. 그런데 곧 이 일들은 앞으로 펼쳐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내 마음에 긴장이 풀렸는지 보리의 목줄을 놓쳐버렸다. 봄이를 일단 동물병원에 맡겨 놓고 시내를 달렸다. 낯선 동네에서 낯선 아줌마가 달렸다.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참 열심히 뛰었다. 그래도 멀리 가지 않아 줄을 잡을 수 있었고 동물병원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그렇게 좌충우돌 동물병원에 입성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몇 달을 고민했던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까지 힘든 것은 다 사라졌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때까지는 몰랐다. 험난한 수술기는 지금부터이다. 수술하러 간 첫 날 우리는 알았다.
*다음화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