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로 한 해 2400명의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다른 사업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경수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선되자 마자 첫 행보로 단식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6일 오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그는 9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월 24일 비정규직으로는 처음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그의 첫 행보가 투쟁의 현장일 것은 이미 예견됐던 부분. 2007년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입사한 양 위원장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기아자동차 사내하청분회장을 맡았다. 해당 기간 동안 양 위원장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며 363일 동안 국가인권위 고공농성과 23일의 단식을 진행했다. 그 결과 1천여 명의 불법파견 인력에 대해 정규직 전환이라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된 그는 "한국사회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부속품처럼 취급받는 노동현실을 바꾸겠다"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해 누구라도 노조할 수 있게 만들겠다"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양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난) 꽉 막힌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언론에서 뻘건 사람, 투쟁만 외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렇지 않다. 청와대에서 노정교섭을 위한 대화제안이 오면 언제든지 만나겠다"고 말했다. 다만 사용자와의 대화는 노정교섭 자리가 아닌 개별적인 노사교섭과 임단협을 통해 이뤄지면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50인 사업장 4년 유예? 1만명 넘는 노동자 더 죽어야 하나"
-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국회 앞 농성장 단식농성을 선택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민주노총 사업의 대부분은 조합원들 고용 및 임금, 처우와 관련된 문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노동자들이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중대재해로 한 해 2400명의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사업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지금 이 시기, 위원장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모든 일에 우선해서 투쟁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단식을 하게 됐다."
- 경총뿐 아니라 4년 유예가 거의 확정적인 50인 미만의 중소기업 사장들도 중대재해법에 대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정부안에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4년을 유예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법안 적용 시점을 고려하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5년을 유예하는 거다. 산술적으로 따져보자. 한 해 2400명이 5년 동안 사망하면 1만 2000명이 더 죽고 이 법이 시행되는 거다. 이건 엄청난 방조다. 무엇보다 50인 미만 사업장을 소유한 일부 사장들이 이 법안을 격렬하게 반대한다 하던데, 그 분들에게 솔직히 '기업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노동자들이 산재로 일하다 사망할 가능성이 있으면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노동자의 죽음을 막는 게 우선이다."
- 8일에 법안 통과가 예고된 상태다.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보나?
"부족한 게 많이 포함된 법안이 통과되리라 본다. 그럼에도 중대재해법이 제정된다는 자체로는 큰 의미가 있다. 부족함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오늘 내일 노력하겠다. 법안이 제정되면 그에 맞게 후속조치도 이어갈 생각이다. 돌아보면 2018년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하고 산업안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김용균의 뜻을 담아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그가 사망한 현장에서 노동자가 또 죽어나갔다.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주요 공약이 11월 총파업이다. '내년 대선에서 노동자들의 의제로 대선판을 주도하자'고 밝혔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총파업을 예고한 오는 11월이면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될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정기국회도 진행되는 때다. 정치적 격동기가 펼쳐지는 셈이다. '대선판을 주도하자'고 말한 건 대선에서 의제와 공약이 노동자의 지위를 바꿀 이슈들도 만들자는 이야기다.
한국사회는 노동자들이 기계처럼 일하고 부속품처럼 취급받고 있다. 심지어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노조를 갖지 못한 노동자도 90%다. 어렵게 노조를 만들어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처럼 해고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돼선 안 된다. 정부나 기업에서는 우리가 IMF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노동자도 함께 졸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이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탄압받아선 안 된다. 11월 총파업은 이를 의제화해 파업투쟁을 하겠다는 뜻이다. 100만 명 조합원이 한날한시에 일손을 멈추면 대한민국이 멈춘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지위를 높이는 의제를 갖고 투쟁할 생각이다."
- 하지만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선거에서 사회적 대화를 강조한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44% 이상의 표를 받기도 했다.
"대화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사용자와의 대화는 노사교섭, 임단협 교섭을 통해 진행하면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사회적 대화는 대정부 교섭을 뜻한다. 대정부교섭을 하는 자리에 굳이 사용자를 앉혀놓을 필요는 없다. 사회적 대화라는 애매한 틀에 갇히다 보면 본질이 흐려지고 우리가 강조해야 할 의제가 희석된다. 사회적 대화보다는 노정교섭 혹은 정부와의 대화라고 하는 게 맞다. 총파업의 최종적 목적 역시 파업을 안 하는 것이다. 우리 의제가 관철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되면 굳이 파업할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정부와의 대화는 필수다. 청와대에서 대화 제안이 오면 할 거다. 거부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언론에서 자꾸 대화를 못하게끔 프레임을 짜는데, 누구라도 만날 생각이 있다."
"터닝포인트 만드는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과정에서 '코로나 방역 수칙을 어긴 민주노총', '부정선거 의혹 논란' 등의 보도가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조선일보를 필두로 민주노총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 공격이 있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에게 큰 반향은 없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 하지만 코로나 때 집회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투쟁을 주도한다는 이유 등으로 민주노총을 향한 청년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의식차가 확연하다.
"청년들의 분노,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청년세대가 갖는 고용절벽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표현된 것으로 본다. 다만 청년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세대의 고용절벽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양질의 일자리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당장 현대기아차만 해도 귀족노조라고 지적받을 정도로 좋은 일자리다. 그런데 앞으로 4~5년 간 2만여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정년퇴직을 하는데 제조분야에서의 신규채용 계획은 없다. 무슨 뜻일까?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청년들의 분노는 이런 지점으로 향해야 한다고 본다. 청년세대 고용문제를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말하고 그들의 분노를 표현할 공간을 마련할 생각이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청년들을 설득할 계획인가.
"우선은 민주노총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방송국을 만들 계획이다. 민주노총 방송에는 2030세대를 위한 채널도 포함될 거다.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는 방송국에 청년들을 채용해 배치하고, 민주노총 간부들 역시 청년들로 채울 생각이다. 청년세대들에 대한 조직사업 역시 청년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4050세대가 청년들을 조직화하는 건 어렵다. 2030세대가 직접 하는 게 수월하다. 2030 간부들에게 청년세대 조직사업 예산과 권한을 주면 많은 게 달라질 거라고 본다.
또 학교 현장에서 노동인권 교육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독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모의 교섭 수업을 하는데, 우리는 노동자임에도 노동법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을 바꿔나갈 생각이다."
- 더 나아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구체적인 목표로 제시했다.
"심한 말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장은 왕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르고 있다는 거다. 1년에 연차가 3일뿐인 사업장이 상당수다. 이런 문제가 밖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부분을 알리면서 바꾸겠다. 중대재해법이 여기까지 온 것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이천 화재참사가 국민적 공분 불러일으켜서 아닌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얼마나 천대받고 열악한지 알게 되면 달라질 거라고 본다."
- 민주노총의 25년, 위원장들이 끝까지 임기를 채우는 경우가 드물었다. 직선 위원장의 경우 단 한 명도 끝까지 임기를 지키지 못했다. 3년 후 어떤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투쟁을 잘해서 이기면 임기 중간에 그만둘 일이 없을 거다. 박근혜 정권 당시 민중총궐기를 이끈 한상균 위원장이 구속된 건 박근혜 정권을 바로 끌어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대의를 믿고 따르다 보면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다만 과정에서 투쟁 열심히 하다가 구속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갖는 책임이자 한국사회 한계라고 본다. 두렵지 않다.
그럼에도 (임기가 종료되는) 3년 후에는 민주노총을 통해 한국사회의 방향전환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노동자들 삶도 자꾸만 어려워지는데 개선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자꾸 언론에서 나에 대해 '뻘건 사람', '투쟁만 외친다'고 하는데 난 꽉 막히지 않았다. 다만 욕은 많이 먹을 생각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여러 시도를 통해 변화를 이끌고 싶다.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