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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릴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분노하며 살인죄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릴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분노하며 살인죄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대법원 양형기준은 국민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2019년 4월, 서울남부지방법원 2018고합580 판결문

이 판결문엔 이례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하는 '양형기준'은 법정형 범위 내에서 피고인의 형량을 정하는 데 쓰이는 일종의 지침인데, 법관이 그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더해 재판부는 "법관에게 부여된 양형은 국민으로부터 온 것이고, 국민의 법 감정과 유리될 수 없다"며 "다시는 이 사건과 같은 참혹한 비극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표명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러 아동을 학대하고 한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위탁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했다(2심에서 징역 15년으로 감경). 아동학대치사죄의 양형기준은 ▲ 기본 4~7년 ▲ 감경요소가 있을 시 2년 6월~5년 ▲ 가중요소가 있을 시 6~10년인데, 피고인은 이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참고로 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사법부 의지 표명한다"

이 사건은 2018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보던 무허가 위탁모가 아이 3명을 학대하고 이 중 1명을 사망하게 한 사건이다. 학대행위가 충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아동의 부모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이 위탁모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공분했다. 언론 역시 이 사건에 주목해 많은 기사가 나왔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오상용 부장판사, 이지수·김보경 판사)도 판결문을 통해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직접 관계가 없는 일반시민들, 특히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공분을 느끼고 향후 유사한 아동학대범죄가 발생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엄벌을 탄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가족의 형태는 과거와 달라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가정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생계유지, 육아휴직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 등)은 그들에게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려는 워킹맘, 워킹대디는 육아도우미, 위탁모, 어린이집 등을 통해 자녀의 양육을 맡기고 있다"며 판결을 이어갔다.

"피고인은 자신을 믿고 아이를 맡긴 피해자들 부모의 신뢰를 무참하게 짓밟았고, 자신의 학대행위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보이기도 했다. 또 고문에 더 가까운 학대행위와 방치 속에 소중한 한 아이의 생명이 사라지게 했다.

(중략)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아픔을 남겼다. 특히 피해자들 부모와 같이 여러 사정상 아이를 타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워킹맘, 워킹대디들은 깊은 좌절과 함께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이 일하는 엄마들의 꿈과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피고인과 같이 아이를 위탁받아 양육하는 사람들의 아동학대행위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은 매우 크다."
 

이어 재판부는 "아동학대치사의 양형기준은 학대의 정도가 중한 가중영역의 경우에도 징역 6년에서 10년에 해당한다"라며 "법정형에 무기징역형이 선택형으로 규정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 양형기준은 국민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법부의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우리들의 일하는 엄마들이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끝으로 ○○○(사망한 피해아동)이 이곳에서의 아픈 기억을 잊고 부디 하늘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정인이'만'이 아니라 정인이'도'] 여론 들끓지 않았다면 공소장 변경 했을까?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양부인 안모씨가 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양부인 안모씨가 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위 판결문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하는 양형기준은 원칙적으로 구속력을 갖고 있진 않다. 하지만 법관이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할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기재해야 한다. 양형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은의 변호사는 "위 사건은 (징역 17년이란) 형량도 중요하지만, 판결문에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과 달리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사건의 경우에는 이러한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다. 이는 '정인이' 사건의 재판에서 검찰이 뒤늦게 살인죄를 적용하기로 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최근 이 사건이 여론의 공분을 사면서 아동학대치사죄의 양형기준과 관련해 논란이 일었다. 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은 살인죄(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양형기준에선 다소 차이를 보인다. 특별한 감경·가중요소가 없다면 아동학대치사죄는 4~7년, 살인죄는 10~16년이다.

살인죄의 경우 고의성이 입증돼야 유죄로 인정되는 반면, 아동학대치사는 그렇지 않다. 아동학대의 경우 목격자가 없는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등 고의성 입증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 변호사는 "만약 정인이 사건처럼 공분이 일지 않았다면 검찰이 법의학자와 부검의에게 사인의 재감정을 신청하면서까지 살인죄를 적용해 공소장을 변경했겠나"라며 "그동안 사건에 따라 살인죄를 적용할지 아동학대치사로 적용할지 면밀히 검토하기보다, 아이가 죽으면 그냥 쉽게 가느라고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왔던 것이다. 이는 아동살인뿐만 아니라 교제살인, 가정폭력살인 사건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알려진 사건과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다루는 태도가 달라서는 안된다. 그러니 사람들이 신고보다 폭로에 혹하게 되고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나오는 것"이라며 "검찰과 법원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정인이만'이 아니라 '정인이도'가 돼야 한다. (여론의 관심 정도에 따라) 사건의 음과 양이 명확하다면 사법부도 검찰도 신뢰받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 수많은 '정인이들' 절반이 1세 미만... 그럼에도 집행유예 나오는 까닭 (http://omn.kr/1rngw)
- 엄마냐 아빠냐에 따라 '정인이들' 죽은 이유 달랐다

#아동학대#아동학대치사#양형기준#법원#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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