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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에 폭설, 그리고 코로나까지. 유독 추운 이 겨울, 다들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가까이 마주 앉아 서로에게 온기를 전할 순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따스함을 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이웃, 동네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18일 오전 광주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 새벽에 내린 눈이 쌓여 있다.
18일 오전 광주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 새벽에 내린 눈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올해로 21년째다. 이사 오고 며칠 뒤 큰 눈이 내렸다. 유례 없는 눈이라고 했고 어느 해에도 마주하지 못했던 폭설이었다. 온통 하얀 것으로 덮어버린 세상이었다. 마침 그날에 집들이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전날 오후부터 내린 눈으로 모든 일정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시흥에서 부천으로 넘어오는 고개가 있는데, 모든 차량이 눈 때문에 넘지 못했다. 가까이에서 오는 것도 어려웠으니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을 기대하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눈이 사람들의 발을 묶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했고, 집들이엔 결국 아무도 오지 못했다.

집들이를 위해 해 놓은 음식과 남편의 귀갓길은 남은 숙제였지만, 하얀 눈을 바라보는 건 세상의 모든 시름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 생애 처음 내 집을 장만한 기쁨은 지인들과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치 눈이 그들 모두를 대신해 축하해주는 느낌이었다. 모든 걱정을 순백으로 새하얗게 지워버릴 만큼 창 밖의 세상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도, 치우는 걱정도 그 순간엔 거짓말처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눈 오는 풍경을 넋놓고 바라보다 깨달은 것 

이사 오기 전까지는 다가구 단독주책이나 다세대가 사는 빌라에서 살았다. 눈을 치우는 것은 당연히 입주민들의 몫이었다. 한참 눈이 내릴 때는 현관문 안으로 들이치는 눈과 계단에 사람들이 드나들며 두껍게 남긴 발자국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다.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다칠까 부지런히 치워야 했다.

큰길에서 집까지 들어오는 골목도 함께 사는 세대들의 몫이었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아도 누구랄 것도 없이 나와서 같이 치우고 길을 만들고는 했다. 눈을 치우는 것이 몸은 힘들었지만 그 일을 피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다.

아파트로 이사 오니 그 모든 일이 경비아저씨들의 몫이 되어 있었다. 눈이 내리는 당일은 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쌓이는 풍경을 넋을 잃고 보았고, 다음날 공원에 가서 눈을 만질 생각에 신이 나 있을 때, 비로소 눈을 치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쏟아진 당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다음 날까지도 경비아저씨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눈을 걷어내고 있었다.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우리 부부는 빗자루와 삽을 들었다.  

넓은 단지의 눈을 치우는 일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경비아저씨들만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빗자루와 넉가래를 들고 눈을 밀며 할 수 있는 만큼 치워보자고 생각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는 내 일이었고 함께 사는 세대 모두의 일이었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늦었지만 내 몫의 역할에 마음이 동한 것이었다.

한껏 싸맨 덕분인지 경비 아저씨는 어린 학생쯤으로 생각해서 힘드니 천천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상황도 재미있었고 우리끼리 눈으로 웃으며 일을 즐겼다. 재미있는 오해가 신나게 일하도록 만들었다. 도움이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다. 고맙다는 인사에 정색하며 손을 내저었지만 그 말 때문이었을까, 두꺼운 패딩 속으로 더운 김이 푹푹 나오며 온몸이 뜨끈해질 때까지 눈을 치웠고 말끔하게 치워지는 쾌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은 그때와 같은 큰 눈은 없었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이 쌓여 있어도 직장에 나가느라 바쁘기도 했고 돌아오면 늘 말끔히 치워져 있었던 것 같다. 수고하는 손길에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말을 넙죽넙죽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해가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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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전남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18일 오전 광주 북구 신용동에서 동행정복지센터직원들과 통장단원들이 주민들의 보행로 확보를 위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전남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18일 오전 광주 북구 신용동에서 동행정복지센터직원들과 통장단원들이 주민들의 보행로 확보를 위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광주 북구청 제공

몇 해 전에도 눈이 제법 많이 내렸던 기억이 있다. 휴일이었던 것도 같고, 그때도 남들보다 먼저 발자국을 만들고 싶어 남편과 아침 일찍 공원으로 나서는 길이었다. 이날도 여전히 경비 아저씨 혼자 눈을 치우고 계셨다.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는 물론이고 차도의 중간쯤 도로가 드러나도록 말갛게 눈을 쓸어냈지만, 계속 내리는 눈은 도로를 다시 얇게 덮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도 남편과 함께 빗자루를 잡았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을 쓸어내는 것은 나름의 만족이 있었다. 쌓여 가는 눈이 빗자루질 한 번에 한쪽으로 깨끗이 쓸리고 길이 드러나는 상쾌함은 나만의 것이었다. 내가 만든 길에 사람들과 차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다시 기분이 좋았다. 넉가래로 눈을 밀어 놓으면 눈사람 하나쯤은 넉넉히 만들 수 있는 눈이 쌓였다. 물론 한두 시간 후면, 쌓인 눈으로 동네 꼬마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며칠 전, 제법 큰 눈이 내렸다. 올해는 눈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철없이 마음이 들떴다. 밖에 나가니 사람이 다니는 길은 이미 눈이 깨끗하게 쓸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경비 아저씨와 또 다른 이웃이 함께하고 있었고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함께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100세대가 사는 큰 동이니 눈이 내릴 때마다 한두 세대씩만 함께 치운다면 경비아저씨의 수고로움도 덜고 내 집 앞을 내가 치워야 한다는 책임감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런치 이웃의 글에, 캐나다는 눈이 내리고 48시간 내에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고 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내 집 앞의 눈은 반드시 치워야 하고, 치워지지 않은 집은 또 사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 도둑이 들 위험도 있어서 치워야 한다고 했다. 여행을 가게 되더라도 눈이 내릴 것을 대비해 이웃에게 치워줄 것을 당부하고, 같은 이유로 이웃집의 눈을 대신 치우는 경우도 물론 있고.

1년이나 2년마다 바뀌는 경비아저씨와 막역하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 동의 일을 보시는 동안은 특별히 더 힘든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반드시 그런 마음 때문은 아니지만 가을에 수북이 떨어진 낙엽을 볼 때나 겨울에 눈이 내릴 때는 치우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빗자루질 한 번에 깨끗이 쓸어지고 정돈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후련해진다. 잡티 하나 없이 치워진 단지는 내가 사는 곳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사는 곳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런 마음이기에 나의 사소한 행동이 이웃과의 '따뜻한 나눔'으로 오가는 '정'으로 포장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분들이 일머리 서툰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일의 방향도 알려주고 너그럽게 마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쑥스러워 말로는 마음의 표현은 잘 못 하지만 한 해 한두 번 정도는 눈이나 낙엽을 치우는 데는 꼭 함께하려고 한다.

올해는 눈이 많이 오는 것 같다. 며칠 전에도 큰 눈이 예고됐지만, 다행스럽게 많이 내리지는 않았고 날이 따뜻해 금방 녹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이라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주말밖에 없지만, 또 누군가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주중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경비아저씨와 함께 주민들이 눈을 치우는 풍경이 누군가에게 따뜻함으로 보인다면,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코로나로 얼굴을 가리고 가까이 갈 수도, 손을 마주 잡을 수도, 환한 웃음을 보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조금의 온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놈의 성격 탓에 이웃과 막역하게 지내지도, 이웃의 수저까지 파악하는 상황은 꿈도 꿀 수 없지만, 함께 눈을 치우며 약간의 몸개그나 '오버'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면 서로를 미소 짓게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아파트 눈 치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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