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명이 평생 최소 1만4000개 이상을 쓴다는 생리대.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우리 몸에 닿는 이런 제품들이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2017년 3월 21일 여성환경연대의 의뢰를 받고 생리대 유해 물질을 조사한 김만구 강원대 교수팀은 "시판 생리대 대부분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8월 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깨끗한 나라 '릴리안' 사용자 부작용 제보 등이 잇달았고, 식약처에서는 릴리안을 비롯한 시판 생리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합니다. 8월 25일 최근 3년간 생산되거나 수입된 모든 생리대 56개사 896품목(제조 671, 수입 225)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8월 29일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원회)'를 구성하여 생리대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진행 사항 및 조사 결과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로 합니다. 식약처에서는 김만구 교수 및 여성환경연대의 조사가 과학적이지 않다고 문제 삼으며, 식약처 조사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공개했습니다.
일련의 파동으로부터 3년이 지난 작년 10월 언론을 통해 "국내 유통 생리대 중 97%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보도의 출처는 당시 국정감사 기간 중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용호 의원의 문제제기였습니다. 이용호 의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수조사한 '일회용생리대 건강영향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조사 대상 666개 품목 중 국제보건기구와 국제암센터가 분류한 발암류 물질이 불검출된 제품은 19개로, 전체의 2.8%에 불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용호 의원실이 제기한 문제는 2017년 당시 식약처가 발표한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팩트체크 전문매체를 표방하고 있는 <뉴스톱>은 이용호 의원실의 문제 제기가 이미 2017년에 발표된 자료를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검출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검출량인데, 기준치를 넘기지 않았음에도 '발암물질'이라는 이유만으로 공포 조성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도한 언론들이 공포 마케팅에 편승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집니다.
생리대 안전성 관련 조사
그렇다면 식약처에서 발표한 자료는 어떤 것이고, 이용호 의원실과 식약처는 같은 자료를 보고 어떻게 다른 주장을 내어놓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문제가 진행된 뒤 현재까지 새롭게 발표된 자료나 조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생리대 안전성 문제의 주무 부처인 식품의약안전처 및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공개한 자료와 입장은 홈페이지의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되어 있습니다.
2017년 8월 23일 '안전성 논란 생리대 수거·검사 등 품질검사 실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논란이 터지기 이전에도 시중에 유통 중인 생리대에 대해 정기적인 품질점검을 실시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2015년과 2016년 '깨끗한 나라'를 포함한 252품목을 검사하였으며, 논란이 터진 2017년에도 원래부터 53품목을 선정하여 검사할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15년 및 2016년, 그리고 그 이전에 어떤 조사가 있었고, 그 방법과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여성환경연대는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써온 지 50년이 되어가지만 단 한 번의 공적인 안전성 검증도 없었"으며, "2017년 일회용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 이후" 비로소 "유해 물질 검출 실험, 전성분 표시제 시행, 일회용 생리대 건강영향조사" 등이 시작되었다며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처음으로 자료가 조회되는 2017년, 자체적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이전 식약처는 정보공개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잠재움과 동시에 여성환경연대 및 김만구 교수 측의 문제 제기를 일축하기 위해, 여성환경연대 및 김만구 교수의 시험 결과(8월 30일)와 제품명(9월 4일)을 공개합니다. 이후 이어진 2017년 1차 조사(9월 28일)는 총 84종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중 생식독성, 발암성 등 인체 위해성이 높은 10종의 VOCs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2차 조사에서는 나머지 74종에 대한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2018년 조사자료는 국내 생리대 제조업체 5개사(깨끗한나라, 엘지유니참, 웰크론헬스케어, 유한킴벌리, 한국피앤지)로부터 보고받은 자체 조사 결과("작년보다 검출량이 줄었으며 문제없음")와 더불어 식약처가 126개 제품에 대해 자체 조사한 프탈레이트류 및 비스페놀A 검사 결과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2019년 조사에는 마찬가지로 126개 제품에 대해 VOCs 60종에 대해 검사하였고, 추가적으로 다이옥신류와 퓨란류에 대한 검사를 하였습니다. 2020년 조사에서는 2019년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던 폴리염화바이페닐(PCB)을 포함하여 조사했습니다.
한편, 2017년 안전 논란 이후 '유기농'이나 '무해함'을 강조한 광고가 늘어나자 식약처는 2019년부터 온라인 광고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 발표된 자료가 있습니다. 생리대 안전성의 주무관청은 식약처이지만, 정부가 진행한 조사는 그 밖에도 일부 존재합니다.
환경영향 평가를 담당하는 환경부에서도 향후 연구설계를 위한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한, 2018년 '오늘습관' 생리대에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되어 논란이 되자,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도 해당 제품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하였습니다.
아래 표는 정보공개센터가 현재까지 발표된 자료의 내용을 표로 정리한 것입니다.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 '케모포비아'?
식약처는 자체 조사를 바탕으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또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검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고, 또 업계의 자율규제나 저감조치 등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생리대 안전성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것일까요? 이는 직접적으로는 1) 조사방식 2) 기준치 3) 역학적 인과관계에 관해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답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식약처가 제시한 위해성 기준(안전역)은 '독성참고치'를 '전신노출량'으로 나누어 결정됩니다. 그런데 산출 근거가 제시된 '전신노출량'과 달리 "동물실험 또는 인체역학연구에서 확인된 유해한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 수준에 자료의 한계에 따른 불확실성 계수를 반영하여 산출"한 독성참고치(RfD)는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을 때 주요 유해화학물질이 질 점막(그리고 일부 경피흡수)을 통해 얼마만 한 양이 흡수돼 인체에서 대사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경구노출과 일반 피부 노출, 질 점막의 차이가 어떤지도 모르고, 대규모 역학조사를 벌이기 위한 패널 자료 역시 부재합니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만한 규모의 이상군(다시 말해 피해호소인)과 대조군이 같은 시간, 같은 연령대에 존재해야 합니다. 엄밀한 의미의 이상군과 대조군이 얻어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렇게 자료가 구축되어도 생리혈 자체의 유해성을 분리한 유해 물질만의 영향을 파악하는 것을 더욱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것은 원래 밝혀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며, 화학물질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을 풀 것을 주문합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잠재적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과학적 지식에 비추어볼 때 '위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부정하지 못할 뿐이며, 더 합리적인 판단을 위한 근거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요.
과학계에는 단지 그것이 풀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과제들이 많이 있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왜 우주의 비밀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많은 예산이 투여되지만, 생리대에 포함된 독성성분의 위해성을 밝혀내는 일은 그렇게 취급받지 못할까요?
여성 당사자와 당국, 그리고 제조업체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해결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환경부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일축하며,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일명 '케모포비아(Chemophobia)' 현상으로 단정 지어 버리고는 합니다.
화학물질의 정보공개와 알 권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질들도 잘 생각해보면, 독성이 전혀 없는 물질을 찾는 게 더 쉬울 지경이라는 것이죠. 이들은 커피도, 설탕도, 소금도, 심지어 물도 과다복용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독성기준치는 어떻게 과학적으로 정할 수 있고, 또 어떻게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권위를 획득할 수 있을까요?
해당 물질의 화학적 특징을 이론적으로 점치거나, 동물실험 등으로 그 수준을 정하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복합요인의 작용, 노출 방식의 차이 등을 고려하면 이런 방법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늘 외국의 선례를 찾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생리대 안전성 및 독성기준에 관한 논쟁은 외국에서도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식약처의 소통방식은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2017년 이래로 반복되어온 식약처에 대한 비판 보도와 그에 대한 반박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정확한 조사의 방법과 절차, 그리고 보고된 수치의 안전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근거가 무엇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약처는 김만구 교수의 연구 결과가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아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식약처 공식자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와 생리대안전검증위원회의 면밀한 검토를 통해 타당성과 객관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시료의 처리 방법(동결건조 후 가열처리, 0.1g/0.5g 샘플링)이 도마에 오를 때는 '해외논문에도 나와 있다'거나 '자문기구의 검토를 거쳤다'는 답변만을 내놓았습니다. 경구독성, 피부독성 등 독성기준치의 근거가 문제가 될 때, 식약처는 "개별 VOC에 대해 미국 환경보호청, 미국 독성물질 및 질병등록청, 세계보건기구 화학물질안전국제프로그램(IPCS) 등의 독성연구자료를 토대로 외부전문가 평가를 통해 설정"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답은 권위에 호소한 뿐, 구체적인 검토의 근거와 내용은 없습니다. 식약처가 조사에 대한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외부전문가라는 말만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 외부전문가들이 내린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었는지-어떤 선행연구를 참고했는지-, 개별 성분에 대한 기준을 어떤 근거로 마련했는지-어떤 자료를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떻게 가공하거나 수합했는지-를 공개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닌, 이미 진행된 사항에 대한 필수적인 정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화학물질이 가져다준 생활의 편의와 더불어 나타난 측정하기도 어려운 위험은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과제로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제는 더이상 기관의 권위를 내세우거나 해외사례를 뒤적이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갈등 과정에서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소비자·노동 단체와 전문가, 연구자 등이 모두 안전 규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화학물질의 정보공개와 알 권리는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참조 :
[시민건강연구소] 위험한 생리대, 다음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www.opengirok.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