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것 좀 볼래?"
3년 전, 큰 아이가 5학년 때 일이다. 아이가 전에 없이 눈을 빛내며 다가와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는 어떤 젊은 남자가 카메라 앞에서 햄버거를 마구마구 먹는 영상이 하나 떠 있었다. 다름아닌 먹방 1세대 유튜버의 먹방이었다.
먹방의 심리
'햄버거 빨리 먹기, 많이 먹기 대회'에서 신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올라간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저렇게나 많은 햄버거를 카메라 앞에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가뿐하게 먹는 방송은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신선했다. 그런데 더 희한했던 건 그 유튜버가 매우 날씬했다는 거였다. 그야말로 반전의 묘미랄까.
"진짜 잘 먹는다. 이거 진짜로 이렇게 다 먹는 거야?"
"엄마엄마, 다른 것도 있어, 이것도 봐봐."
유튜브 보는 걸 결사 반대하던 엄마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이자, 고무된 딸아이는 기회를 놓칠세라 연거푸 다른 먹방을 보여줬다. 이번에 펼쳐진 광경은 라면먹방. 카메라 바로 앞의 냄비는 일단, 원근감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거짓말 안 하고 세숫대야만큼 커 보였다.
거기에 라면을 한두 개도 아니고 열 개를 넣고 끓이더니 몇 젓가락에 홀랑 다 먹어버리는 거다. 이번에도 먹는 건지 삼키는 건지, 진짜 힘 하나도 안 들이고 잘도 먹었다. 먹방 동영상을 연달아 보고 있자니 식욕이 동했다.
"우리도 라면 끓여 먹자!!!"
그렇게 우리도 무려 라면 네 개를 끓여 폭풍 흡입을 했다. 유튜버처럼 가뿐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욕심껏 끓였는데, 다 먹고보니 남긴 게 절반은 되어 보였다. '먹방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은 잠시, 넘치는 잔반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포만감에 '내가 이걸 왜 이렇게까지 많이 끓였지?'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보통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게 먹는 먹방을 보고 있으면 '진짜 저걸 다 먹을 수 있겠어?' 하는 의구심과 함께, 기어이 다 먹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말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 생긴다. 먹방을 보는 건 대리 만족보다는 '진짜 다 먹나 보자!' 하는 심리가 우선일 거다. 그 후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먹방 시청에 시들해졌다.
과식... 괴식... 동물 먹방까지
그러나 나의 호불호가 무슨 상관있으랴. 그들의 먹방은 갈수록 진화했다. 요즘 유명하다는 먹방을 보니 음식을 차려놓은 솜씨부터 세련되고 예뻤다. 그렇지만 역시나 세숫대야 같은 그릇을 카메라 앞에 두고 펠리칸처럼 입을 벌린 유튜버가 커다란 음식을 한 입에 집어넣는 모습은 먹는 행위보다는 기행에 가까워 보였다.
"아사사삭, 아사삭."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게다가 소리, 이게 문제다. 맛깔스런 ASMR까지 추가되었다. 이미 여러모로 심리적 효과가 인정된 ASMR을 잔뜩 차려낸 먹방은 난공불락이었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효과를 넣어 변화를 주어도 일단 '많이 먹는다'는 먹방 공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먹방'을 타인의 식탐을 관음하는 일종의 푸드 포르노라고 말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라면, 욕하면서 보는 동영상이 먹방이었다.
무슨 유행이든 일정기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게 마련인데 이상하게 먹방만은 그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여 새롭게 재생산, 재유통, 재유행이 되는 것만 같다. 심지어 요즘에는 머리를 빗는 빗, 실내화 같은 것까지 먹는 '괴식'에 이어 매운 과자를 먹는 챌린지 같은 동영상도 우후죽순 생겨난다. 이정도면 '먹방'이라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한가보다 싶다가도, 과식과 괴식에 현혹되는 마음이 잠재된 폭력성과 잔인성에 기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먹방의 진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의 먹방 유튜버들이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기사로 접했던 중국의 먹방은 워낙 스케일이 장대해 궁금증을 더했다. 음식의 종류도 평범하진 않았지만 양도 압도적이었다. 먹방에서도 대륙의 스케일(?)은 남달라 통째로 구운 양이나 낙타 고기를 한 자리에서 모두 먹어치우는 먹방이 경쟁하듯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그 모습은 먹방이 아니라 '고문'에 가까워 보였다.
과유불급이었는지, 얼마 전 중국에서는 먹방이 금지되기도 했다.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음식 낭비 현상이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이어서 마음이 아프다(餐饮浪费现象、触目惊心、令人痛心)"라는 말을 한 뒤에 과도한 음식낭비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먹방'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 식품은행을 설립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식품낭비방지법(반식품낭비법)'을 만든다고도 한다. 32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법안의 초안에는 '과도한 양의 식사나 음주 장면을 방송하는 먹방 콘텐츠를 금지하고, 위반 시 시정명령과 1만∼10만위안(약 170만∼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먹방 열풍이 어찌 그리 쉽게 사그라들 수 있으랴. 이제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음식을 먹이는 먹방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연실색할 만한 일이었다. 이쯤해서 드는 고민. 왜 이렇게 먹방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는 것일까?
대체 왜이러는 걸까?
유튜버들이 앞다퉈 먹어대는 이유는 아마도 단 하나일 것이다. 좋아요와 구독수가 올라갈수록 돈을 버는 시스템에서 먹방만큼 손쉽게 조횟수를 올리는 방법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재주 없이도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콘텐츠, 먹기만 하면 되는 '먹방'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콘텐츠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먹방을 찍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낭비하는 일에 과연 이렇게 손 놓고 동조해도 되는 것인지. 기행에 가까운 음식먹기를 아무런 필터 없이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단지 재미와 쾌락만을 위한 먹방을 소비하는 데 죄책감은 없는지.
한류 콘텐츠로서의 위상이 높은 '먹방'이 결국에 탄소 발생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진 않을지. 동물 먹방까지도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먹방이 폭력성에 대한 관음증마저 키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나는 이제 정말로 먹방을 그만 보고 싶다. 먹방으로 말초적인 감각의 만족만을 유도하는 방송을 보고 있자면 불필요한 음식물 섭취와 음식물 쓰레기만 생각난다. 이 참에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이 '잔반지옥 편'이라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소비되지 않으면 생산되지 않을 터. '궁금해도 먹방 그만보기!'를 올 한해 나의 목표로 세워봐야겠다. 나의 작은 미풍이 돌풍이 되길 기대하면서. 하긴, '유승준 방지법'에 발끈한 유승준이 난데없이 라면 먹방으로 먹방 데뷔를 하는 마당에, 갈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나의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