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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Income, No Kids.' 사전적 의미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를 일컫는 용어'다.

처음 '딩크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는 작명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어지만 입에도 쫙 달라 붙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말이 '아이 없는 부부'를 대표하는 말로 굳어질 줄은 몰랐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불만이 있다.

지난 1년 간 남편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내가 일을 놓았던 적도 있다. 딩크족이라는 말은 맞벌이를 전제로 하므로 우리는 이에 비껴 났다가 다시 포함되기를 반복해온 셈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 딩크족이라고 짐작하면 정정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한다.

좀 삐딱하게 보자면, 이 말은 아이가 없으면 반드시 맞벌이여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사고이자 암묵적인 강요는 아닐까 싶다. 물론 사소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이 '사소하게' 부정되거나 오인되는 일이 반복되면 왠지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자문을 하게 된다. 

내가 이럴진대 남편이 있냐는 질문에 아내가 있다고 대답해야 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오지랖 넓은 내 우려와 달리, 유쾌하게 삶을 직진하는 이들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박수를 치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이들은 내 응원 없이도 멋지게 살아갈 게 분명하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책표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책표지 ⓒ 위즈덤하우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 김규진은 동성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공중파 뉴스에도 출연한 바 있다고 한다. 얼굴이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공익과 사익 모두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그녀. 책 전반에 흘러 넘치는 에너지 덕분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흔하디흔한 결혼식'을 올리길 원하는 이들. 과연 이 사회에서 동성 결혼식이 쉽게 이뤄질 수 있을까. 나 혼자 뒤늦게 가슴이 조마조마한 가운데, 의외로 관계자들은 실리로서 이들을 대했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이 가끔은 야속하지만, 이럴 땐 속 없이 반가울 뿐이다.
 
"조금은 이질적인 존재인 우리에게, 결혼 준비 과정은 작은 정상성의 경험이었다." - 100p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결혼식에 불참하기도 하고 혼인신고서는 예상한 바와 같이 불수리 통보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긍정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저자다. 그러니 가능한 결혼서약서의 한 대목 때문에 나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터뜨려야 했다.
 
"신혼부부 대출이 안 되지만 1주택 세금으로 2주택을 보유할 수 있어."- 134p

성별은 다를 수 있지만, 낭만과 현실이 공존하는 우리네 결혼이 이토록 구체적으로 잘 그려진 경우는 흔치 않은 듯하다. 사랑으로 결혼하고 하나의 경제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더없이 진솔하다. '질척거리는 금전 관계'로 얽히고 싶었다는 말이 이렇게 신선하게 들릴 줄이야.

저자는 레즈비언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가부장제에 부역했고 '코르셋'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결혼식과 순백의 드레스가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으나, 나는 당사자에게 전해진 그런 비판에 소심하게 반기를 들고 싶다. 

한 부분에서 선구자가 된다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앞장설 수는 없지 않을까. 완벽하지 않을 바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 나가는 것이 변화로 향하는 지름길이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다음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며. 
 
"당장 거대한 악을 내가 직접 모두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하루하루 작은 차별과 혐오와는 싸워나갈 수 있다." - 9p

갈수록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는 소수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모든 소수자들을 절로 응원하게 된다. 결국 그게 내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알량한 계산과 함께. 오늘도 나는 남을 응원하는 동시에 내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 넣는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0)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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