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로 빨간 투쟁 머리띠를 묶고 청와대 앞에 섰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 최전방에서 땀흘린 이들은 이제 청와대를 향해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늦추위를 견디며 농성하고 있는 코로나19 병원 노동자들을 만나보려고 한다.[기자말] |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은 인근 지역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이자 공공병원이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확진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4일, 이천병원 간호사인 이현섭(35)씨는 절박한 마음으로 청와대 앞에 나와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씨가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보낸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처음엔 대부분 경증환자를 받다가 갈수록 환자들의 중증도가 올라가고 있는데요. 처음 경증환자를 받을 때와 같은 인력으로 높아진 중증도를 감당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 초유의 감염병 사태, 전담병원으로 처음 지정됐을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엄청 혼란스러웠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감염병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하니 다들 두려움이 앞서는 분위기였습니다. 더욱이 원래 계시던 환자들을 급하게 퇴원시키거나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고요.
코로나19 초기엔 일반 병원에서 발열이 있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 진료를 안 받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런 환자들을 모두 저희 병원에서 진료해야 했어요. 전담병원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상황에서요. 한정된 인력으로는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 의료인력에 무리한 부탁을 하는 환자들에 대한 보도도 많았는데요.
"택배가 많이 쌓였고, 커피나 담배 같은 기호품에 대한 요구도 꽤 많았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입원 환자분이 유튜브 방송을 켜서 직원들을 폄하하는 일도 있었고요. 병원 밖에서도 일들이 있었어요. 지역 유치원에서 부모님이 전담병원 직원이라고 하니 등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있었고, 인근 식당에서 병원 직원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치료에 전념하기도 힘든데 이런 일들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때가 나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2차 대유행 이후에는 현장이 정말 전쟁터였어요. 요양병원 등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스스로 거동이 힘든 환자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났는데요. 그에 따라 인력이 늘었어야 했는데 인력은 늘어나지 않고, 각자 근무하는 시간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어요.
일반적인 병원에선 보호자나 간병인이 계세요. 그런데 코로나19 전담병원에는 그런 게 없죠. 통상 업무 외에도 식사를 도와드려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드려야 합니다. 장시간 누워있으면 욕창이 생길 수도 있으니 체위 변경도 해드려야 하는데요. 그걸 모두 간호 인력만으로. 그것도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 해야 했어요."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걸 전 국민이 아는데, 누가 오겠어요?"
-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담병원 노동자로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인력이죠. 환자가 조금 줄었다고 해도, 수도권 중심으로 많이 발생하다 보니 현장에선 체감될 만큼 변화가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백신이 차츰 보급되겠지만 변종도 계속 발생하는 상황이니 언제 올지 모르는 대유행 대비가 필요합니다."
'인력을 더 뽑아야 하지 않겠냐'는 뻔한 질문에 이현섭씨는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걸 전 국민이 다 아는데 누가 오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가족도 반대할 거고, 파견직으로 가면 같은 일을 해도 3~4배 더 많은 급여를 받잖아요"라고 말을 이었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소속 대부분의 노동자는 코로나19 위험수당 등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백신, 충분한 코로나19 전담병원 인력
인터뷰 중 이씨가 갑자기 '존버하던 전담병원 간호사는 떠났습니다', '전담병원에 필요한 또 하나의 백신은 충분한 인력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뛰쳐나갔다.
"버스가 빨리 지나간다 싶었는데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놀라 쳐다보니 버스 아래로 누워있는 사람이 보였어요. 보행자 신호를 확인하고, 피켓을 두고 바로 뛰어서 달려갔습니다."
이씨는 능숙하게 경직된 환자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한 뒤 척추를 고정한 뒤 지혈했다. 다행히 119가 늦지 않게 도착해 환자를 무사히 이송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씨는 "당장 앞에 다친 분이 계셔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더니, 그 자리에 본인이 아니라 어떤 전담병원 간호사가 있어도 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전담병원 간호사들은 정말 사명감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돈만 보고 일했으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을 때 다들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겠죠."
1년 동안 부족한 인력과 미비한 지원에 허덕이며 일했던 전담병원 노동자들.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를 마주하며 오늘도 방호복을 입는다. 그리고 늦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지금 피켓을 들고 청와대에 대책을 요구하며 서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홍보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