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라 불린 손문이 베이징에서 객사(1925년 3월 12일)한 이후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한 해 전인 1924년 9월 제2차 북벌을 선언한 손문은 비슷한 시기에 풍옥상(馮玉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북상을 계속하고, 1925년 1월 중국공산당 제4차 대회가 열리면서 양측의 대립은 봉합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갈라졌다.
국민적 존경을 받던 손문의 서거는 국민당 세력과 모택동 세력의 격렬한 사상적ㆍ패권적 대결을 불러왔다.
1925년 11월 광주에서 국민(당) 정부가 수립되어 왕정위(王精衛)가 주석에 취임하고 12월에는 곽승령(郭松齡)이 풍옥상과 손잡고 반 장작림 쿠데타를 일으켰다. 중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기에 빠져들었다. 소련에서는 "모든 민족의 평등우호관계" 등을 내세웠던 레닌이 사망하고 권력투쟁 끝에 스탈린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일제는 틈을 노리고 만주에서 세력을 확대시켜나갔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도 최운산은 활로를 찾았다. 타고난 무인의 기질이 이번에도 다시 발동한 것이다.
일찌감치 무역업 등을 통해 국제 정세와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한 최운산 장군은 만주와 소련, 그리고 국내의 일본군과 일제 경찰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첩보부대를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최진동 장군이 군대와 함께 주로 북만주에 머무르는 사이 최운산 장군은 군자금 마련과 정보 수집을 위해 모연부대와 함께 국내와 중국, 그리고 소련의 국경을 넘나들었다.
당시 셋째 최치홍은 국경지대인 흑룡강성 근처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아편을 재배하는 농부로 위장해 신분을 숨기고 머물면서 독립군의 비밀연락책으로 군자금을 전달하는 한편 독립군 모집 활동을 계속했다. (주석 1)
일제의 추적과 감시는 더욱 강화되었다. 봉오동전투의 주역인데다 자유시 참변 이후에도 다시 독립군부대를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1905년 남만주 철도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만주에 관동총독부를 설치, 약 4만의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시작된 관동군이 1919년에는 '관동군 사령부'를 신설하면서 더욱 많은 병력이 파견했다.
저들은 소련을 가상적으로 설정하고 주둔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실제는 만주를 지배하려는 흑심이었고, 더불어 한국의 독립군을 척살하는 역할이었다.
악명 높은 관동군은 1928년 장작림 폭살사건, 1931년 만주침략, 1932년 괴뢰정권 만주국수립 등 일제의 중국(만주) 침략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박정희ㆍ정일권ㆍ백선엽 등이 졸업한 만주군관학교와, 이선근ㆍ최남선 등이 교수를 지낸 만주건국대학 등은 모두 관동군 산하에 있었던 기관이다. 관동군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대소전쟁의 준비로 약 70만의 정예군이 집결되었다.
제2차대전 말기 미국이 소련에 대일 참전을 요청한 가장 큰 이유는 만주에 주둔한 70만 관동군의 저항을 막아내고 무장해제를 위해서였다. 한반도의 분단은 이에서 기인한다. 이래저래 관동군은 한민족에는 씻을 수 없는 원부의 하나였다. 일제가 광대한 만주대륙을 신속히 지배하고 한국독립운동(가)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통신시설이었다.
일제가 '간도출병'을 단행하면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기동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바로 통신시설이었다. 일제는 간도출병을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통신시설 확충과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게다가 중국 관헌의 움직임에 대한 불만 역시 전신선 가설을 촉진시켰다. 육군성에서는 조선총독부에 의뢰하여 경원과 훈춘 간 체신 전신주에 군용전신선을 첨설하였다.
이는 훈춘과 가까운 지역을 먼저 통신으로 연결하면서 원거리에 대한 정보를 가시적으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육군성은 '시베리아 사건'때 특무로 활동했던 육군통신기수 2명을 청진우체국에서 임시 훈융수비대에 파견하여 통신사무를 맡아보게 하였다.
이후 용산 병기창에서 통신기자재를 보급받아 이를 간도지역 전신선 가설에 충당했다. 1920년 10월 11일 일본 육군성 군사과에서는 이른바 '불령선인'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예산을 배정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조선총독부에 통신원 파견을 요청하였다. (주석 2)
주석
1> 최성주, 앞의 책, 73쪽.
2> 김주용, 『일제의 간도경제 침략과 한인사회』, 72~73쪽, 선인, 2008.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