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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연재합니다.[기자말]
 우리 집에서는 일상인 비닐 씻어 말리기
우리 집에서는 일상인 비닐 씻어 말리기 ⓒ 이준수
 
우리 집은 언젠가부터 새 비닐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다회용 용기를 사용하는 버릇이 들다 보니 새 비닐을 뜯을 일이 없었다. 다만 싱크대 수납함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기존 비닐봉지가 골칫거리였다. 일부러 모으려고 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콩나물 봉지 따위를 버리기 아까워 아내가 씻어 말린 다음 쟁여두었는데 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한 번이라도 더 비닐을 재사용하겠다는 의도였지만, 매일 같이 빨래 건조대에 널린 비닐을 보고 있자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리유즈백(Reuse bag, 망사형 다회용 면주머니)을 들고 있다.

쌓이는 비닐, 이대로는 안 된다

리유즈백은 비닐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천가방이다. 그물처럼 촘촘한 구멍이 뚫려있어 통풍이 잘 되고, 질기다. 보통 마트에서 야채나 과일을 담을 때 사용한다.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구입을 희망하는 당근, 감자 등을 담고 점원 분께 무게를 달아달라고 하면 된다.
 
 리유즈백은 비닐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천가방이다. 그물처럼 촘촘한 구멍이 뚫려있어 통풍이 잘 되고, 질기다.
리유즈백은 비닐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천가방이다. 그물처럼 촘촘한 구멍이 뚫려있어 통풍이 잘 되고, 질기다. ⓒ elements.envato
 
안이 잘 안 보일 수 있으니 입구 부분을 벌려 내용물을 확인시켜 드리면 좋다. 본인이 직접 무게를 달아 가격 스티커를 붙여도 되지만, 내용물이 보이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므로 나는 가급적 부탁을 드리는 편이다.

난관도 있다. 천 가방 사용을 거절당할 수도 있다. 이건 리유즈백을 처음 샀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나는 첫 사용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아내의 성공담에 자극받아 나 홀로 마트로 향한 어느 날이었다.

장바구니에는 두 개의 천가방이 들어있었고,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긴장되었다.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괜히 튀는 짓을 한다는 인상을 풍기고 싶지 않았다. 주목받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몹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최대한 부드러운 동작으로 쓱 사고 나오는 거야.'

나는 '카레라이스 재료 사기'라는 원래의 목적에 따라 야채 매대로 갔다. 비닐 랩으로 포장된 중국산 세척 당근을 가볍게 지나쳤다. 내가 도착한 곳은 터프하게 쌓여있는 국내산 흙당근 코너. 다른 손님이 롤 형태로 비치된 비닐백을 뜯는 동안 나는 리유즈백을 꺼냈다. 잠재적 비닐 쓰레기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흐음, 리유즈백은 이 맛에 쓰는 것이군' 하면서 룰루랄라 집게를 들었는데 사소한 사고를 쳤다.

피라미드 형태로 배치되어 있던 당근 구조물(?)의 중간 부분을 건드린 게 화근이었다. 나는 그저 그 당근이 튼실하게 보여서 집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상부의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 핵심 기둥을 제거한 결과를 초래하였고 산사태, 아니 당근 사태가 벌어졌다.

우두두두. 둥글둥글한 당근이 위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주목받기 싫어하는 나는 양손과 팔뚝, 집게를 이용해 인간 콘크리트 옹벽을 급히 쳤다. 하지만 허술한 빈틈으로 당근 하나가 빠져나왔고, 나는 2초 간 저글링 비슷한 짓을 하여 무릎 언저리에서 당근을 잡았다.

아마 그때부터 야채 코너 점원 분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덩치 큰 남자가 이상한 가방을 꺼내더니 주의를 끌기 위해 서커스를 하고 소중한 상품에 위협을 가한다 - 이것이 대략적인 나의 인상이지 않았을까.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안색을 바로 하고, 문제의 저글링 당근과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당근을 집어 리유즈백에 담았다. 그리고는 나를 의식하고 계시는 점원분께 다가갔다. 묘한 경계감이 느껴졌다.

"당근 무게 좀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담으시면 안 돼요. 저거 쓰세요."


단호한 말투. 저거는 당연히 비닐백을 의미했고, 그것이 이 세계의 규칙인 듯했다. 하지만 나도 나름 다회용 포장용기 사용으로 단련된 몸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스테인리스 볼에 패밀리 사이즈를 받아오는 사람으로서 침착하게 리유즈백 사용 의도를 말씀드리면 된다. 그러나 어쩐지 어버버 하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피라미드 당근을 무너뜨린 여파가 심리에 영향을 미쳐 이 분께 더 이상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같은 생각이 커진 탓이었다.

일단 물러났다. 그렇다고 당근을 다시 빼낼 수도 없었다. 내가 리유즈백을 왜 샀는가, 용기내 캠페인 참여를 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여럿 겪지 않았는가. 쑥스럽다고 해서 포기한다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유사 상황에서 의기소침하게 대응할 것만 같았다.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점원 분은 내가 다시 접근하자(저거를 사용하지 않은 채로) 흠칫 놀라셨다. 할 말을 신중히 골랐다.

"죄송합니다만, 환경을 생각해서 이 가방 쓰는 건데 당근 무게를 달아주시면 안 될까요? 저번에 아내도 이렇게 했거든요."

환경을 생각한다는 명분이 점원 분의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린 걸까. 점원 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리유즈백을 받았다.

"무게가 더 많이 나갈지도 모르는데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방 무게로 50원 정도 가격이 오른 스티커를 받았다. 행복한 추가 지출이다. 우리 집은 비닐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대량의 비닐이 발생하는 생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겠다는 살림 운영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령 온라인으로 감바스(내가 너무 좋아해서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 밀키트를 배송해 먹으면 맛나고 편하겠지만 사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는 이 즐거움

텀블러나 밀폐용기, 리유즈백이 준비되지 않으면 카페도, 배달음식도, 마트도 가기가 꺼려진다. 이런 생활이 몸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번외 선물에 가까운 이득도 있다. 당근이나 대파, 부추, 버섯 같은 원재료를 사용해서 집밥으로 요리하다 보니 건강해지고 가계 경제가 개선되었다.

외부 음식은 값이 비쌀 뿐 아니라 포장 때문이라도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많이 사용한다. 불필요한 포장 용기 사용을 줄이려 소비를 가려가며 하였을 뿐이데, 2020년 12월 우리 집 식비(4인 가구)는 531,570원이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을 가정 보육으로 대체하느라 하루 세 끼 집밥을 먹었다는 걸 감안하면 꽤 선방한 축이다. 이러니 장바구니에 리유즈백을 담아 마트로 향하는 길이 즐거울 수밖에.
 
 천 가방은 사용하기도 간단하고, 보관도 쉽다.
천 가방은 사용하기도 간단하고, 보관도 쉽다. ⓒ 이준수
 
리유즈백을 지참한 친환경 장보기는 시간이 부족한 분들도 비교적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다. 천가방을 우리처럼 가게에서 사지 않고(재주가 부족하여), 집에서 만들어도 좋다. 솜씨가 뛰어난 분들은 남는 천을 이용하여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가방을 충분히 만드실 수 있을 것 같다. 계산대에서 결제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계산원 분이 지나가듯 한 마디 툭 던졌다.

"요새 저런 가방 많이 쓰네. 비닐 안 쓰고 좋지 뭐."

나를 특정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하게 지지받는 기분이 들었다. 저런 가방(리유즈백)이 좋다는 느낌은 중요하다. '저거(비닐백)'의 사용이 기본 전제인 세상에 균열을 내려면, 기쁨이 필요하다. 나는 생태계 붕괴의 공포를 자극해 환경 캠페인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닐 한 장 줄이면서 얻는 소소한 보람과 행복이 지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리유즈백 그물 구멍 사이로 당근의 흙이 떨어져 나온다. 손가락으로 비비니 지문에 거뭇한 자국이 남는다. 흙에서 캐 온 작물을 사면서 그간 손에 검댕 한 줌 묻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구가#용기내캠페인#필환경#가계부#플라스틱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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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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