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곽상도 의원 측이 주장하고 있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설 연휴이던 지난 13일, 서울문화재단은 '코로나19 피해 긴급예술지원' 사업 관련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대응할 가치가 없는 것"이란 표현에서 어떤 감정(?)이 묻어난다. 이날 자료는 앞선 9일 재단 측이 배포한 설명 자료에 이은 2차 자료였다. 서울문화재단은 왜 설 연휴 전후 2차에 걸쳐 해명에 나서야 했을까.
먼저 9일 <조선일보>는 <문준용, 원서에 딱 4줄 쓰고 코로나 지원금 1400만원 받았다> 단독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38)씨가 서울시에 '코로나 피해 긴급 예술 지원'을 신청하면서 피해사실 확인서에 단 네 줄만 적어내고도 최고액 지원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9일 확인됐다"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곽 의원 등이 제기한 의혹의 연장선상이었다.
해당 기사의 출처는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였다. <조선일보>는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실이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시각 분야 281명 지원자들의 피해사실 확인서를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라며 "최종 합격자 46명으로 경쟁률은 6대1이었다. 나머지 235명 가운데 91.4%(215명)는 문씨보다 상세히 피해사실을 기재했음에도 떨어졌다"라고 보도했다.
서울문화재단의 1차 자료는 이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었다. 재단 측은 "'피해사실 확인서'는 심사 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참고자료에 불과"하다며 해당 지원 사업의 심의 기준은 "①사업의 적정성 및 타당성(20점) ②사업수행역량 및 실행능력(60점) ③사업의 성과 및 기여도(20점)를 고려해 지원대상자를 결정했다"라고 부연했다.
핵심은 '피해사실' 자체가 심의 기준에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확인서의 분량이나 서술형식은 물론 내용 모두 실제 피해사실이 있는지, 실제 신청자격이 있는지를 식별하는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재단 측의 설명대로라면, 곽 의원과 <조선일보>가 심사기준이나 자격과 상관없는 참고자료에 대해 '딱 4줄'이란 선정적인 헤드라인과 여타 지원자들과의 비교를 통해 괜한 흠집 내기를 한 게 된다.
이러한 재단 측의 설명과 문준용씨의 반박에도 곽 의원은 집요했다. 13일 다른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곽 의원은 "'문재인 보유국'이라서 그런지 문 대통령 아들은 이렇게 달랐습니다"란 장문의 페이스북 글에서 애초 서울문화재단이 해당 사업의 지원자를 "150건 내외"로 최초 공고한 것과 달리 실제 254개 단체를 지원한 것을 문제 삼았다. 지원 단체(인원)를 나중에 늘린 것이 선발 기준에 못 미치는 문씨를 지원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이날 서울문화재단 측은 지난해 4월 배포한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긴급지원 신청 몰려…15억 추가 투입>이란 설명 자료를 공유했다. 해당 자료에서 재단은 여타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이 신청자가 몰려드는 바람에 재단 차원에서 재원을 추가 투입했고 지원자를 늘린다고 밝혔다.
재단에 이어 문씨도 14일 또 다른 페이스북 글에서 재차 반박에 나섰다.
곽 의원 주장을 정리하면 'A가 탈락할까봐 선발 인원을 늘렸다'입니다. 그런데 근거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A가 대통령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게 타당한 근거인가요? 요즘 세상에도 이런게 가능할까요? 선발 인원 확대 과정에 어떤 점이 의심스러운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될 것 같은데요?
그런데 곽 의원은 근거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듯합니다. 이 분의 의혹 제기 방식을 살펴보면, 한 번도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페이스북을 통해 글을 써오는 중입니다. 자기 주장이 자신 있다면 공식적인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 배포 같은 것을 했을 겁니다. 지금 곽 의원의 주장은 일부 언론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곽상도 의원의 과거
이번 대통령 아들 지원금 논란은 예술가란 직업이 월급을 받을 정도의 사회적 생산 가치가 없는, 일종의 배부른 잉여성 행위 또는 약자를 위한 구호성 퍼주기 사업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폄하적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래서 대통령 아들이자 전업 작가인 당사자가 수많은 월급쟁이들처럼 생계를 위해 공모에 정당히 지원해 선발이 된 것을 호구지책이 아니라, 마치 특혜를 입었거나 가난한 자의 밥그릇을 뺏은 권력자 아들의 파렴치함으로 감히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다.
- 지난해 12월 20일 정윤철 감독 페이스북 글 중
해당 논란은 애초 문화예술계 실상이나 지원 사업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 실상을 아예 들여다볼 생각이 없는 이들이 제기한 의혹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문 대통령 아들 역시도 정권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과거 몇몇 사례로 만들고픈 욕망이 빚어낸 참극일 것이고. '대통령 아들이 해 처먹으려고 마음먹었으면 재벌 기업에 손을 벌리지 1400만 원을 지원 받았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대통령 아들이기에 긴급지원금은 포기해야 한다? 실제 문씨가 전시 등에서 손해를 입었고 이를 보상받기 위해 여타 창작자들과 동일한 기준을 통해 지원을 받았다면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 아들이라 특혜를 받은 것이 없다면, 그 대통령 아들에게 손해를 강요하는 것 또한 일종의 폭력이자 차별 아니겠는가.
물론, 곽 의원이 이에 동의할 리 없다. 아니, 여기서 더 나아갔다. 15일 곽 의원은 <중앙일보> 인터뷰(<곽상도 "날 표적수사 한 文에 이번 주 억대 소송 걸겠다">)를 통해 문 대통령에 대한 민사소송을 예고하고 나섰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경찰의 '김학의 동영상' 수사를 막은 적이 없는데도, 문 대통령이 사실상 자신을 겨냥한 수사 지시를 내려 막대한 피해를 봤다는 게 곽 의원의 소송 요지"라고 한다.
2019년 3월,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 국면에서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김학의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바 있다. 버닝썬 사건, 장자연 사건과 함께였다. 이것이 어째서 곽상도 의원 개인을 겨냥한 수사 지시인가.
앞서 지난해 12월 곽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한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역시 검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이 '정치력'이 아닌 직접 검찰 고발을 통해 벌일 일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느 검사 출신 변호사는 적지 않은 검사들이 세상 사람들을 둘 중 하나로 바라본다고 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저지를 사람. 또 범죄자들을 매일 마주하는 일부 검사들은 세상일을 보는 기준을 범죄와 범죄가 아닌 것으로 단순화한다고 했다.
과거 공안검사 시절 곽 의원은 어느 쪽에 해당했을까. 그러고 보니, 지난 13일은 강기훈씨가 지난 2014년 유서대필 조작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7년째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