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놀이를 하고 온 아이가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겨울과 봄이 서로 밀당하다 겨울에 지고 마는 달이 2월이라고.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 하고서야 겨울은 물러선다고. 겨우내 내린 눈은 땅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새생명을 피워 내는 단물이 된다. 아직 그 물이 다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포근했던 날씨 뒤로 밀어닥친 추위에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방심한 사이 내리기 시작한 눈이 소복이 쌓였다. 구정 지나면 봄이야,라고 큰소리 쳤던 게 무색했다. "눈이다, 눈!" 아이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조금 내리다 말겠지 싶었던 싸라기눈은 한낮까지 이어져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눈이 오니까, 핫초코를 먹기로 했다. 특히나 이번 겨울의 마지막 일 것 같은 눈. 기념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뜨겁게 데운 우유에 커버춰 초콜릿을 넣고 잘 섞어주면 윗면에 미세한 거품이 생겨 포근하고 달콤한 핫초코가 만들어진다. 머그잔을 조심스레 받아 든 아이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는 거실 창 앞에 나란히 앉아 핫초코를 홀짝거렸다. 눈 오는 날, 창 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핫초코는 아이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달콤한 추억이지만 내가 간직하고 싶은 '한 컷'의 일상이기도 했다.
가느다란 눈이 맹렬한 기세로 흩날렸고 우리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결국 밖으로 나갔다. 두꺼운 바지에 모자를 눌러쓰고, 부츠와 장갑으로 무장한 채. 아이들이 놀러 나오지 않았는지 놀이터에는 발자국 하나 없이 곱게 쌓인 눈이 하얀 도화지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이는 천천히 놀이터를 걸어 다니며 발자국을 찍었다. 눈 싸움을 하고 싶어 했지만 한 쪽 팔에 깁스를 한 상태라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았다. 대신 장갑을 낀 다른 손으로 미끄럼틀 위, 그네 위, 철봉 위로 쌓인 눈을 쓸어내며 돌아다녔다. 나뭇가지를 주워 새하얀 바닥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길다랗게 이어지던 선은 둥그렇게 휘감으며 춤을 추다 산과 바다가 되었고 꽃과 나무, 토끼와 고양이, 악어와 다람쥐로 변했다.
집으로 돌아와 꽁꽁 얼어버린 발과 손을 녹인 우리는 옥수수 가루와 치즈를 넣어 스콘을 구워 먹었다. 스케치북을 펼쳐 물감을 떨어뜨리고 빨대로 후후 불어가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자유롭게 뻗어 나간 물감 줄기 주변으로 면봉으로 알록달록 색색의 점을 찍었다. 저녁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가지 라자냐를 만들었다. 라자냐 면과 구운 가지를 층층이 쌓고 사이 사이에 토마토 소스를 바른 후 맨 위에 눈처럼 하얀 모짜렐라 치즈를 얹었다.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는 아이 덕에 더 맛있게 먹었다.
'눈'이라는 장치 덕분에 내 안에 어떤 스위치 하나가 켜진 것 같다. 평범한 일상에 '반짝' 불이 켜지는 순간은 늘 사소하고도 사소했다. 하지만 그 리듬을 잘만 타면 어떤 기념일보다 특별한 하루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공을 들인 하루는 누구보다 내 마음이 먼저 안다.
눈이 내리면 아이의 마음 속에 저절로 떠오를 풍경 하나를 지은 것 같다. 눈과 핫초코, 따끈한 스콘과 라자냐. 매일 매일이 특별할 순 없지만 사소한 리듬이 생기를 불어넣는 일상의 마법을 놓치고 싶지 않다. 스위치 하나만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 놓는 조명처럼, 마음에도 그런 스위치 몇 개를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눈이 오면 핫초코를 마시고, 비가 오면 전을 부치고, 날이 맑으면 산책을 하고, 우울한 날엔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일 같은 거. 봄이 오면 꽃을 사고, 여름이면 복숭아를 먹고,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잎을 줍고, 겨울이면 노오란 고구마에 가래떡을 구워 먹는 일처럼. '딸깍' 스위치 한 번 누르면 평범한 하루에 고운 빛이 번지는 순간을 모은다.
낱알처럼 흩어진 그런 순간들에 기대어 우리는 살아간다. 아이에게 건네 주고 싶은 삶의 비밀도 거기에 있다. 진짜 부자는 가슴 속에 작고 사소한 스위치가 많은 사람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