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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쿠팡 본사 모습.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쿠팡 본사 모습. ⓒ 연합뉴스
 
주식 1주당 1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상식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정부는 이런 틀을 깨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벤처기업 창업주가 회사 전체 지분의 30% 미만을 가진 경우 1주마다 2~10개가량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입니다. 

이 법안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오픈마켓 '쿠팡', 정확히는 미국회사인 쿠팡 LLC(유한책임회사)'의 미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이었습니다.  

쿠팡 LLC의 자회사인 쿠팡은 국내기업인데 미 증시에 상장한 것은, 한국에선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죠. 이런 주장은 자연스럽게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등과 쿠팡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의 반박으로 관련 논쟁은 일단락 지어졌습니다. 경실련은 성명에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차등의결권 허용 때문에 뉴욕증권거래소를 택했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곡해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쿠팡 초창기 투자자로 참여했던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차등의결권 때문에 어떤 증시에 상장하는 결정은 하지 않는다"며 "많은 회사가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똑똑한 기관투자가들을 만날 수 있고, 투자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벤처도 무관심한 새 벤처기업법

그런데 쿠팡 LLC의 상장을 두고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일까요? 우선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려는 이 법안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안 발의의 취지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벤처기업의 창업주가 경영권을 뺏길 우려 없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복수의결권 주식의 유효기간은 10년으로,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3년까지입니다. 

창업주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당 주식을 상속 또는 양도하거나, 이사직을 잃으면 주식을 보통주로 전환하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됐습니다. 또 이사의 보수,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 감면 등 사항에 대해선 1주당 1개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도록 했죠. 

하지만 벤처기업의 투자 유치를 돕겠다는 기본 취지와 다르게, 이 법안의 통과를 바라는 벤처기업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이 법이 통과하더라도 실제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소벤처기업부 내부 분위기도 그렇다"며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혹시 모르니 이런 법안이라도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 교수는 "지금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창업주가 투자자와 개별 계약을 맺을 때 충분히 복수의결권과 같은 조항을 포함할 수 있다"며 "법과 관계없이 사적 계약상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상장 이후 무용지물, 정부는 왜?
 
기자회견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2일 오전 11시 국회 분수대 앞에서 복수의결권 법안 폐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2일 오전 11시 국회 분수대 앞에서 복수의결권 법안 폐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한국노총
 
또 "비상장기업에는 차등의결권 주식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며 "차등의결권 주식은 상장할 때 필요한 것이다, 유니콘 기업의 '성장'을 위해 차등의결권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창업주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은 상장 이후에야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의 경우 창업주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갖고 있다면 오히려 투자를 받기 어렵고, 기업공개(IPO)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거액의 투자에 나선 것인데, 비교적 적은 돈을 투자한 창업주가 실제보다 과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 불합리하게 느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어 "정부는 마치 이 법이 통과해야 많은 사람이 벤처 투자에 뛰어들고, 벤처기업들의 IPO도 늘어나리라 생각하는데 인과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일부 선진국에서는 당초 상장을 전제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오갔고, 결국 복수의결권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게 됐습니다. 시작은 미 뉴욕증권거래소였습니다. 1985년 거래소가 GM의 복수의결권 주식 상장 요구를 들어주게 된 것이죠. 이어 2004년 구글(현 알파벳)이 복수의결권 구조로 IPO에 성공했고, 홍콩, 영국 런던, 일본 등도 복수의결권 허용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이와 달리 상장 이후에는 사실상 창업주의 경영권 방어가 어려운 벤처기업법 개정안을 정부가 밀어붙이는 데에는 숨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박 교수는 "이 법이 통과하더라도 재벌 3~4세 등이 소유한 재벌 계열사는 복수의결권을 발행할 수 없다"며 "벤처기업법에서는 벤처기업을 중소기업으로 한정했는데, 중소기업기본법을 보면 재벌 계열사는 중소기업이 될 수 없다고 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문장만 삭제하면 벌어질 일

이 때문에 정부는 이번 복수의결권 관련 논쟁이 재벌 세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추후 벤처기업에 대한 정의만 수정하더라도 우려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벤처기업은 중소기업이어야 한다는 내용만 빼면 재벌이 비상장 계열사를 만들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세습에 나설 수 있다"며 "복수의결권 주식 유효기간이 10년이지만 이에 맞춰 새 회사를 만들어 인수·합병하면 세습이 가능해진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그는 "이렇게 되면 상속, 양도 때 복수의결권 주식을 보통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항도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며 "이 법은 재벌 세습을 위한 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어 그의 말입니다. 

"지난해 5월 기준 상위 50개 기업의 소유-지배 괴리를 계산했더니, 우리나라 재벌 총수는 1개의 주식으로 15배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순환출자를 통해 소유-지배 괴리가 이미 엄청나게 발생한 거죠. 

그런데 여기에 더해 복수의결권 허용으로 1주당 10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소유-지배의 괴리가 150배로 폭발합니다. 정말 재벌 천국이 되는 거죠. 경제력 집중에 대해 현재 문제 제기하는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겁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상장 이후 3년이 지나면 창업주의 지분이 대폭 줄어들어 갑자기 대주주가 바뀌게 되고, 회사에 대한 지배권이 이동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국보급 차세대 기업을 외국인 투자자가 가져간다' 등 비판이 쏟아질 것이고, 3년 규정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경우"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복수의결권 허용으로 재벌이 1주당 10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소유-지배의 괴리가 150배로 폭발한다"며 "경제력 집중에 대해 현재 문제 제기하는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복수의결권 허용으로 재벌이 1주당 10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소유-지배의 괴리가 150배로 폭발한다"며 "경제력 집중에 대해 현재 문제 제기하는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서울대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이어 "이후 재벌들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항의해 재벌 계열사도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이 가능해지면,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에도 불구하고 재벌 5세, 6세, 9세까지 세습이 이뤄지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자본시장 전문가도 해당 법안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정부 입법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제적 기준으로는 굉장히 독특한 경우를 선택했다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상장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법안이라는 얘기입니다. 

재벌 세습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현재 기존 상장기업이나 그 대주주와는 관련이 없는 형태로 논의되고 있는데, 이후 연관이 있을 수도 있는지를 구체화해야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그는 현재의 경직적인 상법 체계로는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벤처기업들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어 이와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남 실장은 "벤처기업의 특징 중 하나가 창업주들이 종잡을 수 없는 형태의 경영을 펼친다는 것"이라며 "최근 국제 흐름은 자신의 고유 가치관대로 경영에 나서는 새 기업들을 위해 아주 예외적인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다양성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재벌#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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