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동안 근교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교외로 나갈 계획을 세우면서 쌍안경과 나침반, 휴대용 손전등 세트를 아이에게 사주었다. 그걸 본 아이의 이모가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 사는구나."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쌍안경 같은 장난감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지금과는 확실이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훨씬 풍족했다. 날마다 골목으로 나가 친구들과 뛰어 놀았고, 마당에서 흙을 파헤치고 꽃과 나뭇잎으로 소꿉놀이를 했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경험이 빈약한 삶을 산다. 밖에서 뛰어노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자연과 접할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좋은 장난감을 사주어도 엄마 마음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 첫 날은 양평 언니네 집에서 보냈다. 마당에서 웃자란 나뭇가지를 잘라주는 이모를 아이가 도왔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다음 목적지로 떠날 채비를 하는데 더 놀다 가자고 졸랐다. 이모가 장에 가서 나무를 사다 심을 거라는 말에 자기도 같이 나무를 심고 싶다고 했다.
평창으로 이동하면서 동물 농장에 들르려고 했는데 계획을 바꾸었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려고 인위적으로 기회를 만들 바에야 자연스레 주어진 나무 심기 체험을 하는 게 나았다. 아이 마음을 알아챈 이모가 나무 하나를 고르게 해주겠다며 솔깃한 제안을 덧붙였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장이 늘어선 길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무를 파는 곳은 시장 건너편 한갓진 자리에 있다. 가지만 길게 뻗은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인도 한 켠에 세워져 있다. 좌판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익숙한 나무들은 다 있다. 모과, 사과, 배, 단감, 체리, 블루베리, 앵두 등 과실 나무부터 벚나무, 매화 나무, 목련, 장미, 수국 등 꽃나무까지.
나무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된 아이는 골똘히 나무를 살핀다. 체리 나무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를 앵두 나무 쪽으로 데리고 간다. 하얀 꽃이 피고 체리처럼 빨간 열매도 달린다고 아이 마음을 꾄다.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에 있던 앵두 나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니는 아이가 고른 앵두 나무에 모과 나무, 매화 나무, 장미와 작약을 더해 값을 치른다. 나무 한 그루에 만 원이 넘지 않는다. 마당만 있다면 이것 저것 사다 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식물에 크게 관심 없는 남편마저 욕심이 난다고 한다. 땅에 심어만 두면 철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즐거움을 안겨줄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키가 자라고 품도 넓어져 넉넉한 그늘까지 선사해주겠지.
나무는 우리 곁에서 함께 시간을 쌓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긴 시간을 나누며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축적되는 삶의 신비를 몸소 보여 준다. 그러니 나무가 건네는 기쁨은 일회적인 게 아니라 영원에 가깝다. 그런 기쁨을 만 원도 안 되는 값에 살 수 있다니, 왠지 횡재한 기분이다.
언니네 집으로 돌아와 마당 한 켠에 나무 심을 자리를 고른다. 위치를 잡아보려 앵두나무를 땅 위에 세우니 키가 아이와 비슷하다. 자기 나무니까 스스로 심고 싶다고 한다. 이모부가 삽으로 땅을 파 작은 구덩이를 만들자 아이가 저 만한 앵두 나무를 들고 가 구멍 속에 뿌리를 넣는다. 흙을 덮는 일은 아이 몫이다. 아빠가 곁에서 돕는다.
나무를 다 심고 뿌듯한 얼굴로 서 있는 아이를 사진에 담는다. 어느 결에 왔는지 아이를 따르는 동네 고양이가 주변을 맴돌다 아이 다리에 제 몸을 부비며 지나간다. 아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한순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장난감으로 만들 수 없는 즐거움과 책으로도 배울 수 없는 진짜 온기가 거기 있다.
과학자이자 시인이며 '환경 보호의 수호성인'으로 불리는 레이첼 카슨은 <센스 오브 원더>에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 만큼도 중요하지 않다"고 썼다.
아이들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며 감탄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부모가 도와줄 일은 자연에 대한 지식을 넣어주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 볼 뿐만 아니라,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안다. (…)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 할 때에야 비로소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들과 만날 수 있다." - p.87 <센스 오브 원더>, 레이첼 카슨, 닉 켈시 사진, 표정훈 옮김, 에코리브르
아이는 벌써부터 여름에 달릴 앵두를 기대한다. 몇 개나 열릴지, 그 열매를 어떻게 나눠 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아이가 나무를 심으며 느낀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과 기대가 어른에게도 옮겨온다. 언니와 나는 앵두 나무와 아이 둘 중 누구 키가 더 빨리 자랄지 궁금하다. 꽃이 피는 봄이, 열매가 맺힐 여름이 기다려진다.
앵두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아이 키를 넘어서는 날을 꿈꾼다. 커다란 품으로 아이를 굽어보며 말로 할 수 없는 위안을 건넬 어느 날을 상상한다. 그 끝에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낀다. 아이에게 자신을 맡긴 앵두 나무와 아이의 다리를 스치고 간 고양이, 말없는 대상을 향해 아이가 쏟아내는 웃음 속에서 어느 때보다 평온한 기분에 젖어 든다.
레이첼 카슨이 옳았다. 동물 농장에 데려가 줄을 서서 기다려 먹이를 주고 가축들에 대한 소소한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었다. 마당을 가진 이모가 있고, 이모가 나무를 선물해준 건 아이에게 주어진 특별한 운이 분명하다. 하지만 작은 화분에 꽃나무를 심거나 밖으로 나가 하늘에 떠 가는 구름을 보는 것으로도 자연을 느끼기엔 충분할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의 외로운 별들이여!
아이와 함께 다만 아름다움에 취하라.
부모라는 이름의 외로운 별들이여!
아이와 함께 놀라워하고 느껴라.
부모라는 이름의 외로운 별들이여!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의 의미, 신비, 아름다움에 다만 놀라워하라."
- p.81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