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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초상화 허난설헌 초상화
허난설헌 초상화허난설헌 초상화 ⓒ 선양사업회
 
허균의 '짧은 봄날'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결혼하고 초시에 합격한 이듬해 처남 김확과 함께 작은형의 벗인 승려 사명당을 만나고 서애 유성룡에게 문장을 배우는 등 '찬란한 봄'이 있었다.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그의 학문과 품격은 더욱 넓고 깊어졌다.(이 부분은 뒤에 상론)

하지만 화창한 봄날이 너무 짧듯이, 그의 봄날도 길지 않았다. 작은형이 1558년 9월 금강산을 유람하고 금화현 생창역에서 급사하였다. 황달과 한담이었다. 허균이 스무살 때이다. 이듬해에는 또 누님 허난설헌이 스물일곱 살에 병사하였다. 조선왕조를 넘어 동양3국에 여성의 시가 알려지고 평가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어린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바람기 있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심한 학대 속에서도 주옥같은 214수의 한시를 남긴 채 요절하였다.

허균은 누님의 비상한 글재주에 대해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누님의 시와 문장은 모두 하늘이 내어서 이룬 것들이다. 유선시(遊仙詩)를 짓기 좋아하였는데, 시어가 모두 맑고도 깨끗해서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고 이를 말한다. 문장이 또한 기이하게 뛰어났으니, 그 가운데서도 사륙문(四六文)이 가장 아름다웠으며, 『백옥루상량문』이 세상에 전한다. 나의 작은 형님이 일찍이 말씀하셨다.

"경번의 글재주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대체로 이태백과 이장길(李長吉)이 남겨둔 글이라고 할 만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석 12)

 
허균·허난설헌의 초당동 생가 허균·허난설헌의 초당동 생가
허균·허난설헌의 초당동 생가허균·허난설헌의 초당동 생가 ⓒ 선양사업회
 
누님을 잃은 허균은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혈육이면서도 스승 이달과 작은형에게서 함께 시와 문장을 서스럼없이 배우고 평했던 오누이였다. 2년 사이에 따르던 학식 높은 작은형에 이어 누님까지 잃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마음의 안정을 잃고 허무감에 사로잡혀 술집과 기방을 출입하는 등 일탈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뒷날 허균은 누님의 산재된 시를 모아 문집을 엮는다. 이 부문은 뒤에 다시 쓰기로 한다. 

남편이 닭이면 닭을 따르고, 남편이 개면 개를 따르라던 봉건적 조선 사회에서 자유로운 지성으로 인본주의를 갈구하며 이상형을 찾아서 끝없이 시심을 갈고 닦은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사실 그의 꿈은 죽음과 함께 시공을 초월하여 현실화되었다. 동양삼국의 최고 여류시인이라는 평가는 중국시인의 입에서 나왔고, 조선조 최초의 여성시집 『난설헌집』은 북경의 조고계에 낙양지가를 올렸다. 그것은 출중한 평론가며 시인인 동생 허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석 13)


조선의 천재시인 허난설헌은 현모양처를 최상의 덕목으로 묶어놓은 시대의 질곡에서 결국 스물일곱 살의 삶을 접어야 했다. 누님의 시혼과 미쳐 펼치지 못한 삶의 아픔을 지켜 본 허균으로 하여금 질곡의 동아줄을 끊게 하려는 정신이 '유훈'으로 남는다. 후대의 학자는 허난설헌의 시혼과 아픔을 요약한다.

허난설헌은 시대의 희생물이 된 여성이다. 여신동이라 불리던 그녀의 재주를 수용치 못했던 시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고 있던 시대에 현숙한 어머니와 어진 부인이 될 수 없었던 허난설헌에게 단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활화산처럼 넘쳐흐르는 시혼의 분출이었다.

난설헌의 시세계에는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정감의 불꽃을 억제할 수 없는 차원까지 승화시킨 차라리 처절함마저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탁월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설헌이 한국문학사에서 큰 주목을 받을 수 없었던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주석 14)         


주석
12> 장정룡, 앞의 책, 100쪽, 재인용.
13> 앞의 책, 7쪽.
14> 박양자, 「강원의 얼(10) 허난설헌」, 『강원일보』, 1996년 5월 25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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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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