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지 말라'는 정책 기조가 1년 넘게 지속 중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모여 살게 된'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집단거주시설에서는 어떤 생활이 이어지고 있을까?
- 향유의집 사무국장과 지난 2월 2일 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저는 김포에 위치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근무하는 사무국장 강민정입니다. 향유의집은 1985년 12월 30일 개원했습니다. 제가 입사했던 2002년 당시만 해도 116명 정도 거주했는데, 지금은 20명이 계세요. 그 이유는, 향유의집은 탈시설 정책을 일선에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지원주택이든 체험홈이든 여러 가지 형태로 지역 사회로 나가서 사는 이용인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20명 정도 계시고, 이 20분의 이용인도 2월 말이나 3월 초 즈음에는 전부 시설을 벗어나서 지원주택이나 체험홈으로 나가실 거예요. 그래서 향유의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예정입니다, 하하."
- 거리두기 지침으로 인해 시설 외부와 거주인 간 접촉이 대부분 차단된 상황에서, 시설 종사자들의 고민도 함께 깊어졌다.
"거리두기 기간이 지속되고 코로나 확산이 심해지다 보니까, 이용인 분들이 외출에 제한을 받잖아요. 기존에 오전 자원봉사자라든지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지인이나 가족들의 방문도 사실상 통제하게 되다 보니까, 이용인 분들이 되게 힘들어하세요. '잠깐 왔다 가는 건데 왜 안 되냐. 직원들도 출퇴근하지 않냐, 우리도 여기에 있기 답답하다' 이런 항의 아닌 항의를 하시기도 하시고요.
또 지역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물론, 시설에 오시던 미용 자원봉사분들의 방문도 어렵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이용인 분들 머리가 관리가 안 돼서 갈수록 덥수룩해지고. 그래서 나중에 저희 직원 선생님들이 바리깡 갖고 머리 잘라드리고 묶어 드리고 그랬어요. 프로그램을 짜서 주기적으로 나가고 영화도 보고 바람도 쐬고 했던 것들이 '올스톱' 되다 보니까, 이용인 분들이 답답해하고 처지는 부분이 있었고. 직원들은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소시켜드려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요.
가령 '국장님 이분이 은행에 잠깐 다녀오신다는데 괜찮나요?' 하면 고민이 시작되지요. 그런데 이용인분들이 은행만 다녀오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 보면 옷도 예쁘고 신발도 예쁘고 해서 다른 데에 들를 수도 있거든요. 솔직히 그건 직원들도 마찬가지니까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닌데, '어르신, 꼭 은행만 다녀오세요'하고 다짐을 받고 보내드리고 그랬죠.
사실 저희는 기존에는 이용인들이 전동휠체어 타고 혼자 나갈 때 어디 가는지 적으시라고 하거나 나가지 마시라고 통제하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외출하시던 분들을 지금은 저희가 통제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직원분들이 '코로나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하면서도 '이렇게 통제하는 게 맞나?'하는 가치의 갈등을 겪었어요. 그럴 때 저한테 물어보시면 저는 저대로 '마스크 꼭 끼시라, 소독 꼭 하시라, 거기만 갔다 오시라' 이렇게 말씀드렸죠.
단체시설이다 보니까 한 사람이 걸리면 전파되는 건 정말 순식간이거든요. 그래서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계속 진행했던 프로그램들 외에 밖으로 나가는 프로그램을 많이 못했어요. 이용자분들은 여기서 2~30년 살았기 때문에, 밖에 한 번이라도 더 나가고 바람 쐬고 영화 보고 바닷가 구경하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물론 저희가 외출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에요. 살금살금 저희 방법으로 가능한 만큼 진행했죠. 기관 차량을 이용해서, 개별적으로 바닷가 가고 싶어하는 분들 모시고 가서 차에서 안 내리고 바닷가 구경만 하고, 회만 사와서 집에 들어와서 먹고. 이런 식으로 해소를 했었죠."
- 한편 코로나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의 양상은 시설 거주인들의 장애 유형별로 상이하다고 한다.
"가령 뇌병변장애인분들 같은 경우, 마스크를 써야 하는 걸 아시지만 마스크가 비뚤어졌을 때 스스로 고쳐 쓰기 어려운 분들이 계세요. 그리고 와상장애인같은 분 같은 경우, 전동휠체어 타고 사람 없는 곳에 혼자 산책 다녀오시는데, 마스크가 내려가거나 올라가거나 하면 스스로 고쳐 쓰시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특히 코 닿는 부분이나 턱 닿는 부분이 올라가면 고쳐 쓰기 힘드니까, 새 부리형으로 일자로 된 마스크를 달라고 이야기하시길래 그렇게 생긴 마스크는 다 그분에게 드렸어요. 그건 살짝만 내리면 전체를 조절할 수 있으니까.
또 이용인 분들은 날씨가 따뜻해도 더운물 목욕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용인 분들이 스스로 목욕을 못 하시고, 대부분 직원 선생님들이 목욕을 시켜드리는데, 더운물 틀고 선생님들이 더운 날씨에 마스크 쓰고 목욕 지원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하셨죠."
- 사무국장은 코로나 시대에 장애인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책이나 지침 등에 관한 정보 접근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직원들이야 요약자료 같은 것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고, 나온 지침을 밴드에 공유하거나 게시판에 인쇄해서 붙여두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용인 분들의 경우, 저희가 자치회의라는 이름으로 생활실별로 한 달에 한 번씩 중요한 내용을 공유하고 이용인 분들이 원하시는 부분에 대해 얘기를 들어서 수렴하고 반영하는 회의를 하거든요.
거기서 저희는 그림 자료 등을 활용해서, 손 씻기나 소독제 사용법, 거리두기 같은 것들에 대해서 설명은 드렸어요. 하지만 사실 이용인 분들의 인지능력이 다 다르다 보니까, 어디까지 이해하셨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희는 그래도 안내는 해야 하니까 설명은 드렸던 거고요. 화상자료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긴 해요. 저희 또 방마다 TV가 있어서 화상자료를 활용할 수 있거든요. 그런 걸 찾아서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좀 드네요."
- 코로나 확산 이후 시설 운영과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느냐는 질문에 사무국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거주인분 중에 맘에 안 들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걸 시키면 옷을 벗으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지금은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세요. 마스크를 왜 써야 하는지 계속 설명하고, 마스크 쓰시라고 말씀 드리고 마스크 꺼내드리고 하다 보니까, 본인도 마스크를 쓰고 저희에게 오시고, 마스크가 답답하니까 내려도 '어, 마스크' 이러면 다시 쓰시고 그러세요.
'아, 장애인분들이 익숙해지시지 못할 것 같았는데 계속 말하다 보니까 되는구나' 그런 가능성을 경험하는 거죠. '저분이 무슨 마스크를 쓰시겠냐' 이렇게 생각했는데 반복적이고 시각적인 학습효과에 노출되다 보니까 지금은 잘 쓰고 다니세요. 그런 것들이 새로운 모습의 발견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몇몇 분들이 마스크 잘 쓰고 다니시는 것. 그런 부분이 발견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시설 폐쇄 이후 기존 직원들의 고용 문제와 관련한 고민도 함께 나누었다.
"실직자 되는 거죠(웃음). 지금 지원주택에서도 직원을 채용하고 있으니까, 일부 희망자는 그쪽으로 넘어가는 분이 계시고. 체험홈 쪽으로 직장을 잡아서 가시는 분도 계시고. 그런데 보면 주로 행정직이나 직접 서비스를 하시는 분들이 넘어가시고, 영양팀이라든지 치료 파트, 건물 관리하는 파트 직원분들은 고용연계가 사실 잘 안 돼요. 그런 부분이 안타깝죠. 그런 과정에서 직원 선생님들이 '어, 이용인이 또 나가네. 그럼 내 자린 어떻게 되지' 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이용인이 나가서 잘 사시는 건 좋은데 내 자리가 없어지니까 불안하고."
- 탈시설에 대한 사무국장의 가치관이 변해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향유의집에서 제일 처음 이용인이 자립한 게 2008년이에요. 그 해에 한 분이 자립을 하시고. 2009년에 열 분이 한꺼번에 나가시고. 그 이후로 꾸준히 한두 분씩 계속 자립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은 2007년, 2008년에 저희 시설을 최초로 설립한 법인이 한번 뒤집혔어요. 비리 때문에 설립자랑 연관된 사람들이 법적 처벌받고 다 나갔거든요. 그 후 서울시에서 관선이사 체제로 법인을 운영하게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죠.
그러면서 중간중간에 시민사회 쪽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법인에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서 법인의 방향성 같은 것이 인권, 자립 이런 쪽으로 추진되었죠. 사실 저만 해도 이런 시설에서 평생 살라면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어요. '너희 시설은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는 좋은 시설이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시설은 시설이거든요.
이용인들이 시설에서 나가신 뒤에 다 좋은 일만 겪으셨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그분들이 지역에서 살아가면서 저희 이용인하고 만날 수 있게끔 계속 홈커밍데이 같은 행사도 했고요. 또 먼저 나가셨던 분들이 동료 상담가로 오셔서 시설 거주인들을 만나서 얘기할 수 있게끔 하면서, 거주인들이 '여기서 같이 살았는데 쟤는 나가서 살고 있네' 이런 생각을 하는 경험이나, '내가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도 나가볼까'로 바뀌는 계기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저는 여기 오기 전에 다른 시설에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시설에서 장애인들하고 재밌게 잘 지내는 게 잘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생각이 바뀐 계기를 꼽자면요. 2008년에 최초로 자립하신 분이 나가서 사시는 걸 보면서, '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분이 전동휠체어 타고 보도블럭 비틀비틀한 길을 가시는데, 그 모습이 멋있는 거예요. 혼자 자기 길을 알아서 찾아서 가시는 모습이요.
시설에서 그분을 만났을 땐, 어쩐지 개인보다 장애를 먼저 보게 되었는데, 2008년에 나간 그분이 밖에서 사시는 걸 보면서 '저 사람도 그냥 사람이다', 이렇게 사람을 보게 됐어요. 지체장애 1급 홍길동이 아니라 그냥 홍길동을 봐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게 됐지요.
탈시설 반대하는 직원들이 하는 주장이 뭐냐면, '지역에 나가면 누가 돌봐줘. 지역에 나가서 1대1로 서비스 받다가 인권침해 당하면 책임질 거야?'라는 주장이거든요. 하지만 그 모든 게 갖춰질 때까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사는 게 맞을까요? 제도적으로 미흡할 때 일찍 나가신 분들이 직접 투쟁해서 만들어낸 것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이 본인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고, 그분들이 가진 에너지가 참 좋았어요.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탈시설을 지원하면서 많은 고소와 고발에 시달렸지만, 그걸 후회하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물론 우리가 전혀 실패하지 않았고 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장애인분들이 원할 때 옆에서 도울 수 있었다는 건 잘한 거 같아요. 잘했지 뭐(웃음)."
- 마지막 한 마디를 요청하는 질문에, "그래도 시설이 거주인들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들, 지금 다른 시설도 인터뷰 하시죠? 시설마다 운영하는 방식이라든지 대처하는 방법이라든지 이런 게 다 다른 걸 아실 텐데. 시설이 꼭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에요. 어쨌든 이 시설에 살 수밖에 없는 분들이나, 자식을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들의 마음이 저도 사실 이해는 되거든요.
시설 또한 그들의 보금자리이긴 해요. 잠시 거쳐 갈지라도, 어쩌면 평생을 살지라도. 시설이라는 것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갖고 있는 테두리에서만 판단하시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로서 말씀드린 거예요(웃음)."
덧붙이는 글 | 위 인터뷰는 사단법인 두루의 '코로나 시대의 공익인권활동, 공익소송 및 연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위 인터뷰가 담긴 연구 보고서(「코로나 시대의 장애인권 현황과 장애인권운동 아카이빙」 )는 2021년 3월 말 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