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릉의 대표 솔숲 중 하나인 초당솔숲   허균·난설헌기념공원과 녹색도시체험센터  이젠을 마주하고 있다.
강릉의 대표 솔숲 중 하나인 초당솔숲 허균·난설헌기념공원과 녹색도시체험센터 이젠을 마주하고 있다. ⓒ 박소영
 
허균은 임진왜란의 전쟁을 피하여 스물다섯 살인 1593년 한햇동안 강릉 외갓집에 칩거하면서 많은 책을 읽고 시를 지었다. 그렇게 하여 묶은 책이 『학산초담(學山樵談)』이다. 요행히 이 지역은 왜군이 밀려오지 않았다. 이 시화집에는 시(시평) 등 108편이 실렸다. 자신이 지켜보았거나 만난 사람들에 관해 지은 것이 많았다. 

그는 '교산' 이라 처음으로 명시한 「맺음말」에서 책을 내게 된 심중을 서술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님의 가르침을 잃었으므로 여러 형님들이 사랑스럽고도 불쌍하게 여기셔서 독촉과 꾸지람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힘줄이 게을러지고 살도 풀어져서 글 읽기에 힘쓰지 않았다.

좀 자라난 뒤에는 과거에 급급한 사람을 보고서 즐겨 그를 본받았지만, 직접 자질구레하게 글귀나 다듬고 꾸미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서,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이미 재가 되었다. 십년 동안 글이나 읽으려고 하였지만, 아아 슬퍼라. 이 또한 늦었구나. (주석 4)

 
 강릉 '초당마을숲'과 경포호가 만나는 곳에 있는 다리 장식. 허균의 대표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 손을 흔들고 있다.
강릉 '초당마을숲'과 경포호가 만나는 곳에 있는 다리 장식. 허균의 대표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 손을 흔들고 있다. ⓒ 신한슬
 
허균의 초기 시와 시평인 108편 중 가족사와 지인 관련 내용 몇 편을 골라 소개한다. 원문은 한문이고, 허경진 교수의 번역임을 밝힌다.

허봉의 학당(學唐)

작은 형님의 시는 처음에 소동파를 배웠으므로, 옛날에 있었던 사실들과 알맞게 문장이 되었다. 호당(湖堂)에서 『당시품회(唐詩品彙)』를 열심히 읽고 나서야, 비로소 시가 맑고도 굳건하게 되었다. 만년에 갑산(甲山)으로 귀양을 갈 때 이백(李白)의 시집 한 부를 가지고 갔으므로, 귀양에서 돌아올 때에는 신선의 시어를 깊게 얻어서 장편과 단운(短韻)이 말을 달리는 듯 힘이 있었다.

이익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학사 미숙(美叔)의 시를 읽으면 하늘에서 꽃이 흩날리는 것을 보는 것 같다."고 하였지만, 작은 형님은 불행하게도 일찍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 글재주를 다 보여주지 못하였다. 남긴 글들도 다 흩어져서 모아들일 수가 없다. 임진왜란 때에 미처 모아들일 틈도 없이 병화(兵火)에 다 없어져 버렸다. 세상에서는 다시 없을 만큼 큰 슬픔이니, 어찌 그 끝이 있겠는가? 내가 경호(鏡湖)에 살고 있을 때에 이 말을 듣고는, 놀랍고도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일찍이 내가 외운 것들을 기억해 보니 겨우 오백 편이었다. 이를 베껴서 세상에 전하는 까닭은 이것이 썩어 없어지지 않을 작품임을 믿기 때문이지만, 이 또한 형님이 쓰신 것에 비한다면 태산 가운데의 터럭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주석 5)

 
 허균의 호를 따 만든 ‘교산교’. 교산은 여기 야산이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자락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허균의 호를 따 만든 ‘교산교’. 교산은 여기 야산이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자락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김종신
 
허봉과 허초희의 시참

작은 형님께서는 귀양가시기 전에 옥당(玉堂)에 계셨는데, 어느 날 꿈 속에서 시 하나를 지었다.

 채마밭에 나가 씨 심노라니
 일 솜씨는 그런대로 늘어났지만,
 연기 끼인 하늘은
 꿈 속에서도 희미하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가생의 눈물뿐이니,
 밤이면 밤마다
 차가운 옷을 적시는구나.

 그리고는, 그해 가을이 되자 갑산으로 귀양을 갔다. 누님도 평시에 
 또한 꿈 속에서 시를 지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그 이듬해에 세상을 마치었으니 삼구(三九)는 이십 칠이라, 누님이
 세상에서 누린 햇수와 꼭 같았다. 사람의 일은 이미 전에 정하여져
 있는데, 커다란 운수를 어찌 벗어날 수 있으리요? (주석 6)


주석
4> 허경진, 『허균의 시화(詩話)』, 151~152쪽, 민음사, 1982.
5> 앞의 책, 40쪽.
6> 앞의 책, 52~5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허균평전#자유인_허균#학산초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