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은 스승 이달에 대한 시평을 남겼다. 그리고 성혼과 임제에 대해서도 지었다.
저절로 댓귀가 들어맞는 이달의 시
손곡 이익지가 지은「한식시」(寒食詩)
배꽃에 비바람 분 지
석 달 하고도 보름
병든 나그네 바람에 머문 지
어느 덧 삼십 년 일세.
『증임귀성지』(贈林龜城詩)
여러 해 나그네가 되었더니
옷자락이 모두 다 떨어지고,
몇 달인가 집 떠나 있었더니
띠마져 헤어졌네.
아무리 범숙이라 한들
이처럼 차갑게야 대해 주었을까?
스스로 소진을 비웃지만
힘들어서 되돌아가진 못하겠구나.
「노산묘시」(魯山墓詩)
동녘 바람은
두견새의 쓰라린 울음을 실어다 주고,
서쪽으로 지는 해는
노산군의 무덤을 차갑게 해주네.
등의 여러 글귀들은 댓귀를 맞춘 것이 저절로 들어맞은 것들이다. 침착하면서도 문장의 힘이 갑자기 달라졌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풍월시라고 그를 헐뜯었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주석 7)
통곡보다 더 슬픈 성혼의 만시
성혼(成渾)ㆍ호원(浩源) 선생이 청양군(靑陽君)의 만시(挽詩)를 지었으니,
벼슬길로 세상을 떠돌며 노니노라니
누가 참으로 편안한가.
나그넷길에서 서로 만나면
곧 친구가 된다네.
오늘 아침 댓자리에서
한 곡조 노래를 부른 뒤에,
그대를 보내고 돌아와 누우니
옛 산에도 봄날이 왔네.
이가 이른바, 긴 노래로 나타낸 슬픔이 통곡보다도 더 심하다는 것인가? (주석 8)
허봉의 책에 붙여준 임제의 시와 '수성지'
임자순(林子順)이 스스로 호를 소치(笑癡)라고 하였다. 작은 형님이 일찍이 북쪽 지방 기생들의 일을 모아서 책을 만들었는데, 화치(和癡)의 고사를 본받아서, 무릇 이십 사 령(令)으로 하였다. 자순이 이에 칠언시를 지었다.
이름난 기생 스물 넷을
골라서 모았다는데,
소치의 것은 그 가운데
하나도 없구나.
사람 살며 하는 일
모두가 거짓이라는데,
곳곳마다 풍류소리가
소치를 달래는구나.
그의 문장은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바 「수성지(愁城志)」라는 것은 글자가 시작된 이래 특별난 하나의 문자이다. 천지간에 스스로 모자라, 이러한 문자를 얻을 수가 없다. (주석 9)
주석
7> 앞의 책, 62~63쪽.
8> 앞의 책, 82쪽.
9> 앞의 책, 8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