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연재합니다.[기자말] |
맞벌이가 되면 의자부터 바꿀 줄 알았다. 계속 쓰기에는 너무 오래된 의자였다. 무려 남편이 일곱 살 때부터 썼는데, 그가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했던 덕분에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큰 의자를 받은 거다. 어린이의 의자는 대학생이 된 그의 자취방까지 언제나 함께했다. 질긴 생명력으로 기어이 신혼집까지 들어왔고, 남편은 어느 새 서른 다섯 살이 되었다. 의자는 올해로 28살이다.
28년 된 의자
우리는 왜 새 의자를 들이지 못 했을까? 이유는 하나였다. 뻔하다. 돈. 결국 돈 문제였다. 과거의 총각 남편에게도, 막 살림을 시작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에게도, 십 만 원 넘는 의자를 쉽게 바꿀 만한 돈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돈을 써야 할 데는 많고 의자에게 쓸 돈은 없었다. 의자는 오래되긴 했지만 너절하지 않아서 교체대상에서 늘 후순위로 밀려났다.
육아휴직으로 내 수입이 뚝 끊겼으니 쓰는 돈도 줄여야 했다. 오래됐지만 건재한 의자를 바꾸지 않아야, 가정 경제가 건전했다. 의자뿐이랴. 샤워 퍼프도 7년 동안 써 봤다. 10년 된 낡은 재킷, 7년 된 유선 청소기는 물론 빨래 건조대 발목이 부러져도 테이프를 감아 썼다.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사냐고 물으면, 돈 덜 써야 고상하게 산다고 답했다. 절약해야 저축도 하고 외벌이로도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고. 최소한의 소비로 삶을 안정감 있게 지켜내고 있다고. 절약은 옳았다.
문제는 복직 이후였다. 절약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맞벌이가 되었으니 수입은 두 배다. 아주 신나는 일! 그런데 말이다. 신이 나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철벽녀가 돼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철벽 말고, 쇼핑 센터와 내 지갑 사이의 철벽이다.
아무리 호감 가는 물건이 눈을 스쳐도 웬만해서 반응하지 않고 철벽을 친 듯 선을 긋는다. 퇴근 후에 배달 음식 시켜 먹기도 꺼려지고, 빨래 너는 시간이 아깝지만 건조기를 살 수도 없었다. 사고 싶지만 꾸욱 참는 게 아니라,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물론 의자도 바꾸지 않았다. 요즘은 지갑 여는 게 영 어렵다. 왜 이러지?
코로나, 기후위기, 미세먼지 때문에
정체는 가까이에 있었다. 코로나. 2020년 맞벌이를 시작하자마자, 기가 막히게도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4년이나 일을 못 했기에, 설렘을 잔뜩 안고 출근을 했다. 그러나 나의 직장은 적막하기만 했다. 복도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모두가 충격에 빠져 혼란스러웠다. 마라톤 회의만 거듭했다. 나는 교사다.
2020년 3월, 복직했으나 학교에 아이들이 없었다. 2021년 3월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학교에 매일 오지 못 한다. 오더라도 마스크를 써야만 하고, 리코더를 불지 못 하며, 친구와 손잡고 등교할 수 없다.
"원격 수업이 좋아, 대면 수업이 좋아?"
대면 수업의 압도적 승리. 원격 수업이 좋다는 아이는 셋, 대면 수업이 좋다는 아이는 스무 명이었다. '원격 수업 때 학교도 안 가고 놀아서 좋겠다'는 편견이 깨져 버렸다. 코로나 시대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한다는 것도 해묵은 오해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게 낫다고 한다.
원격 수업일 때 하필 학교 급식 메뉴가 진수성찬이라는 소박한 이유에서부터, 혼자 공부할 때보다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공부하는 게 집중도 잘 되고 40분 수업도 술술 흐른다는 학구적인 이유까지. 11살 어린 아이들은 쌍방향 수업 중 사소한 렉 하나에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다시는 코로나 같은 대규모 감염병을 겪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저 소망만 하기에는 지표가 좋지 않다. 지구는 급속도로 망가지고 있다. 여전히 야생 서식지는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 미세 먼지는 다시 찾아왔고, 지구의 기온은 멈추지 못 하고 오르는 중이다. 걱정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답은 책에 있었다.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소비를 줄이라고.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의 호프 자런도,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의 툰베리 가족도, <작은 행성을 위한 몇 가지 혁명>의 시릴 디옹도, <쓰레기 거절하기>의 산드라 크라우트 바슐도, <우리가 날씨다>의 조너선 사프란 포어도, 그리고 <코로나 사피엔스>의 김경일 교수까지.
우리 각자는 언제 어디서 더 많이 소비할까 대신 어떻게 덜 소비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와 산업계가 우리를 대신해 이런 질문을 던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중, 호프 자런 지음
정말 광신적인 태도는 우리를 포함한 소수 엘리트 계층이 누려 온 행동양식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비행기 여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혀 광신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지요. -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중, 툰베리 가족 지음
작은 자원, 동일한 자원을 가지고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최대로 부유한 삶이 아니라 '적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김경일 교수) - <코로나 사피엔스> 중, 최재천 교수 외 7인 지음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저자들이 간곡하게 호소한다. 더 많이 가지려 하지 말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 살고 싶다면. 내가 얼마만큼 돈을 쓰는가는, 내가 얼마만큼 돈을 버는가와 상관 없다. 가진 돈과 상관 없이 '적은 양의 물건'을 사는 게 윤리적인 시대다. 갖고 싶은 만큼 갖느라 우리가 트리플 콤보를 먹지 않았나. 코로나, 기후위기, 미세먼지.
소비가 미덕인 사회는 더이상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 한다. 가진 돈이 바닥날 때까지 쇼핑을 실컷 해도 지구에게 무해한 쇼핑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한, 절약은 윤리일 수밖에 없다. 세간에 도는 '보복소비'라는 말이 우습다.
나는 언제쯤 마음 편히 새 의자를 살 수 있을까. 모른다. 소비자인 나는 28년 된 의자에 앉아 고민하며 글을 쓸 뿐이다. 멀쩡한 의자를 버리기에는 지구가 너무 아깝다. 이번 달 월급에서도 의자 교체 예산은 없다.
의자 만드는 가구 기업 사장님이 지구에 무해한 물건을 생산하고, 그리고 정치인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소비 철벽을 치는 수밖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