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걸려서 치료받으면 보험 안 되고 돈 다 내야 해요?"
"아니요. 안심하고 검사받으세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이 내려진 후 첫 일요일에 한국어수업에 못 들어온다고 연락 온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코로나 진단 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에게 치료비용을 물리는 나라 출신이 입국 과정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치료받을 경우는 본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반면 국내 체류 중 걸린 지역 감염자는 체류 자격이나 국적 불문하고 치료비용이 무료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이나 병원들에서는 간혹 비용 청구 문제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양성 반응이 나오면 치료비를 물어야 한다는 등의 가짜뉴스와 체류 자격 때문에 불안해하며 검사받을 생각조차 않던 이들도 동료들을 따라 진료소에 갔습니다. 진료소 안내를 맡고 있던 경찰서에서 "특정 시간에는 많은 사람이 방문하면서 새치기, 시비 등이 발생하고 있으니 혼잡한 시간대를 피해서 개별 방문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자를 보내올 정도였습니다.
혼잡 시간대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인지를 알려주지 않는 형식적 안내에 아침 일찍 선별진료소를 찾아갔던 이주노동자들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 때문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가짜뉴스 때문에 진단검사를 포기하려던 이주노동자들은 대체로 음성 결과에 만족을 표하면서도 왜 외국인들만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행정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 이주노동자 향해 전가해도 되나
지난 2월부터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명목으로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만을 특정하여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경기도는 3월 8일부터 22일까지 15일간 행정명령을 시행했고, 서울시는 17일부터 31일까지 2주간 '외국인 노동자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시행한다고 밝혔다가 시행 이틀 만에 철회한 바 있습니다.
서울시는 많은 이주인권단체와 각국 대사관 항의가 빗발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관련 조사에 착수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19일자로 행정명령을 권고로 바꿨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서울시 행정명령이 인권 침해와 차별 논란이 벌어진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정 총리는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수요자 입장에서 감수성을 가지고 방역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또한 21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서울시의 경우 중수본 차원에서 행정명령 취소를 즉시 요청했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이어 각 지자체에서 이주노동자만을 특정한 "선별검사를 시행할 때 해당 사업장의 위험도나 혹은 발생현황, 근무형태 등을 고려해서 차별이나 인권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히 주의해 조정해줄 것을 19일 일제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지자체들은 여전히 행정명령을 시행 중에 있고 철회 움직임이 없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인종차별 심화를 우려해온 전국 120여 개 단체들은 21일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을 기해 '이주노동자를 제물로 삼는 코로나19 전시행정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성명서에서 '특정 집단을 분리하여 합리적 근거 없이 특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고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하는 차별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중대본이 권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여러 지자체가 발표한 이주노동자 전수검사 행정명령은 정확한 역학조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에 부합하지도 않고 차별적입니다. 실효성은 없지만 뭔가 하고 있다는 눈에 보이는 행위를 통해 행정에 쏟아질 수도 있는 비난을 소수자에게 돌리는 전시행정일 뿐입니다.
이주노동자 전수조사 행정명령이 차별적인 전시행정이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서울시에 행정명령 철회를 요청했던 중대본 조치나 정세균 총리의 사과 이후 벌어진 일들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서울시에는 즉시 행정명령 철회 요청, 타 지자체엔 공문 처리한 중대본
서울시가 '외국인 노동자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내리자, 주한 영국대사관이 공개적으로 항의하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데 이어 주한외국상공회의소는 행정명령 재고 요청서를 서울시에 보내고, 주한 독일대사관, EU 회원국과 노르웨이·스위스·영국을 대표한 포르투갈 대사관 등은 정부 당국에 '차별적이고 지나친 행위'라는 입장을 서면으로 전달합니다.
서울시가 행정명령에 대해 "모든 외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각국 대사관들이 유감 표명을 하고 나선 이유는 서울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자국민들이 합리적 이유 없이 검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서울시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했을지 모릅니다.
어찌 됐든 상사 주재원이나 학원 강사 등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많은 서유럽권 국가들의 대응은 정부를 압박하기에 충분했고 성과를 냈습니다. 중대본이 철회 요청을 하고 총리까지 신속하게 사과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중대본과 정세균 총리가 국적에 따른 차별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입니다. 정 총리는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외국인 근로자 특별 방역대책'을 논의하며 서울시에는 개선 요청을 했지만 다른 지자체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똑같은 조치가 서울시에서만 차별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자국민을 위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의 요구에는 그토록 빨리 반응하면서 주로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시민단체의 요구에는 귀를 닫고 있습니다.
중대본은 모든 지자체에 방역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차별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행정명령 철회를 동시에 요청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인권침해 실태에 대응해 온 시민단체들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작년 3월에 개정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은 이주노동자들을 겨냥했다고 주장합니다.
외국계 CEO만 당황? 외국인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감염병 의심자라는 규정을 두어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와 감시 관리라는 실적 위주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서울시 등의 행정명령 논란이 말해주듯이 이주노동자들이 표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누구나 감염이 의심되지만 감염병 환자로 확인되기 전 단계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은 그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물론 진단검사 의무 행정명령이 차별적 조치라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서울시와 인천시가 권고로 변경하고 경기도가 '채용 전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시행하지 않기로 하는 등 개선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울시는 진단검사 권고 대상을 '외국인 노동자'에 한정하고 있으며 경기도는 진단검사 의무화 성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대구시는 2차 행정명령을 다시 발표하며 채용 전 진단검사를 포함시켰습니다. '차별'이라는 항의에 밀려 포장은 바꾸지만 방역대책 홍보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제물로 삼는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모 경제지가 '외국인이란 이유로... 5년째 한국 사는 찰스도 줄 세우더니'라는 제목으로 낸 기사를 보면 외국계 기업 CEO들이 코로나 의무 검사에 얼마나 당혹스러워했는지 실감 나게 설명해놨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라고 그런 당혹감이 없었겠습니까?
정부와 여러 지자체는 코로나19 발발 초기 공적 마스크 배분이나 재난기본소득 등 방역 대책 대상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했습니다. 이제 와서 역학조사에 근거하지 않고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진단검사를 강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주노동자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예방과 치료를 지원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특별히 앞으로 백신 접종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미리 점검할 필요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서울시 행정명령 철회 논란에서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