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국가보훈처가 '서해수호의 날'을 앞두고 지난 23일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6분 분량의 영상물이 있다. 제목은 '잊어서는 안될 서해수호 용사들'.
[영상] '잊어서는 안될 서해수호 용사들' https://youtu.be/3_piOq2i9xo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천안함 피격 희생자인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씨(78)와 만나는 여정이 담겨 있다. 당시 깊은 상처를 입어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는 신은총 예비역 하사와도 만났다.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를 달기 위한 방문이었는데, 이들의 만남은 아주 각별하게 비춰졌다.
[기억] "잊지 않고 찾아줘서 감사"
윤씨는 지난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때 헌화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이게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묻기도 했었다. 이날 충남 부여의 자택에서 황 보훈처장을 만난 윤씨는 고 민평기 상사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고 눈물을 흘렸고 헤어질 때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잊지 않고 찾아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감사하고..."
황 보훈처장과 고 민평기 상사는 함께 근무한 인연도 있었다.
"해군 조함단에 있을 때 민평기 하사는 행정하사였죠. 달리기도 잘했고, 축구도 잘 했어요. 성격도 밝고 명랑해서 승조원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머리카락이 직모여서 다른 사람에 비해 좀 길게 하고 다녔는데, 인간성이 좋고 무엇이든 솔선수범하는 모범적인 부사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웃었죠. 함상에서의 생활이라는 게 딱딱해지기 쉬운데, 주변 승조원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감격] "너는 나와 함께 싸운 전우다"
황 보훈처장이 만난 신 예비역 하사는 당시 척추와 다리에 중상을 입고, 현재 복합통증후군(CRPS)으로 투병중이다. 그는 지난 10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집에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를 직접 달아준 황 보훈처장에 대한 감사의 사연을 아래 사진과 함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됐다. 모진 투병생활을 하면서 11년 동안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인 지팡이였다.
그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11년 만에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이 드디어 나타났습니다"라면서 지팡이에 대한 사연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저희 집에 방문하셨을 때 지팡이를 사라고 어머니 손에 꼬~옥 쥐어 주셨던 돈으로 실내에서 사용하게 될 같은 모델로 지팡이 하나 더 사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진짜 잘 쓰겠습니다."
이에 황 보훈처장은 "대한민국은 우리 신은총 하사의 희생과 헌신적인 자세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에 보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답장했다.
[관련 기사] "11년 만에 우리 이야기 들어주는 분이 나타났다" http://omn.kr/1sf7g
신 예비역 하사가 이날 감격에 가까운 글을 올린 까닭은 지팡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 보훈처장이 신 예비역 하사에게 건넨 이 한 마디 말도 한몫했다고 한다.
"너와 나는 같이 싸운 전우다."
신 예비역 하사의 모친이 보훈처 최정식 홍보팀장과 통화할 때 "아들이 그 말을 듣고 큰 힘을 얻은 것 같다"면서 전해줬다는 말이다.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11년이 지났지만 육체적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진보진영 일각으로부터는 '패잔병'이라는 낙인까지 찍혔고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도 심각했던 것이다.
황 보훈처장은 이날 만남에 앞서 상이군경회와 상의해 신 예비역 하사의 교통비도 해결해주었다. 거동이 불편한 신 예비역 하사는 최근 보훈병원의 전문위탁진료 승인을 받아 인천에서 강남성모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한 달에 두 번씩 전문 진료를 받고 있는데, 상이군경회에서 교통 지원을 받도록 조치한 것이다.
황 보훈처장에게도 이들과의 만남이 각별할 것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전 해군참모총장인 황 보훈처장은 해군 제2함대 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을 지냈다. 천안함 피격사건과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희생당했거나, 부상당한 장병들은 모두 황 보훈처장의 부하이기도 했다.
[예우] 국가유공자 등록, 취업 알선-지원
정부는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정해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로 희생된 '서해수호 55용사'를 기리고 있으며 올해로 6회째를 맞는다.
올해부터 보훈처는 서해수호 55용사 유족을 시작으로 전몰·순직군경 등 유족 총 22만 2천명에게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를 달아주고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의 대상은 당초 국가유공자 본인에 한정됐었다. 올해 사업 대상을 확장한 것은 서해수호 용사 유족을 비롯한 보훈단체 등의 요청을 전격 수용한 조치였다.
해마다 서해수호의 날이 다가오면 일부 보수언론들의 단골메뉴는 천안함 장병들에 대한 예우 문제였다. 하지만 보훈처에 따르면 현재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12명이 국가 유공자로 등록됐다. 지난 2019년 3월까지 6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할 때 정부 차원의 예우와 지원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중 9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질환자이다. 58명 중 24명이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다. 이중 절반이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현재 4명의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서해수호 관련자 중 보훈대상자에 대한 취업지원도 실시하고 있다. 2021년 2월 말 현재 연평해전 13명, 천안함 12명, 연평도 포격도발 8명 등 총 33명이 취업한 상태이다. 현재 7명이 추가 지원을 해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단기, 의무복무자에게는 전국 10개 제군지원센터를 통해 직업상담, 사이버교육, 취업알선 등의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정부는 전사자 예우와 명예회복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는 등 서해수호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가령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경우, 별도 규정이 없어서 전사자가 아닌 '공무 중 순직' 처리가 됐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명예회복 및 '전사자'로서 보상 및 예우가 이뤄졌다.
또 2019년 8월 '하재헌 중사'에 대한 국가유공자 결정과정에서 관계 법령간 인정 기준이 다르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보훈심사'라는 일부 지적을 받아들여 대상자 인정 기준을 적극 개선하기도 했다.
[기억] "말년 휴가 나가기로 했는데..."
보훈처는 지난 18일에도 '서해를 지켰던 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물을 공개했다.
[영상]서해를 지켰던 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https://youtu.be/ZzIwNJ8Z9m4
황기철 보훈처장과 전준영 천안함 생존장병전우회 회장 등이 국립대전현충원 내 제2연평해전 묘역과 연평도 포격도발 묘역, 그리고 천안함 46용사 묘역(한주호 준위 묘역 포함)을 찾아 헌화하는 영상을 담았다. 또 '서해수호 참전장병 간담회' 모습도 담겨 있다.
영상에서 제2연평해전 참전 장병인 곽진성씨는 "전우들이 묻혀 있다 보니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따뜻하다"면서도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은 전준영 천안함전우회 회장은 자신의 동기 묘역을 가리키며 "입항하면 이제 말년 휴가를 나가기로 계획이 짜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이들과 함께 천안함 46용사들의 묘비석을 쓰다듬으며 과거 인연을 떠올렸다.
"옛날에 이창기가 참 잘했는데, 잘했어. 이창기와 민평기는 나하고 근무했어."
이 영상의 마지막 자막은 이렇게 맺었다.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서해수호 용사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끝까지 예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