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를 흔든 일들이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저출산 현상, 사유리씨의 비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 아동과 관련한 많은 사건사고들이 신문기사를 오르내린다. 이들은 전혀 다른 현상으로 보이지만, 변화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같은 현상의 다른 측면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저출산'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한 2005년 이래 많은 정책의 폭증이 있지만 저출산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한국 사회의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를 기록했다. 1960년대 이래로 주요 국가들 중 합계출산율이 1.0 아래로 내려간 국가들은 2000년대 초반의 홍콩, 2010년의 대만, 그리고 2018년 이후의 한국 뿐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세이고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청년세대의 특수성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청년들은 가족을 원하지 않으며, 혼자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보다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청년들의 이기심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떤 정책도 소용 없으며, 저출산 문제는 그냥 포기하고 고령화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도 한다. 또는 반대로, 청년들은 결혼하고 싶은데 단지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라고 쉽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청년들에게 돈과 집을 주면 '자유롭게'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비혼출산, 불평등 가족제도 벗어난 새로운 친밀성 모델
그러나 자발적 비혼모가 되겠다고 선언한 사유리씨의 선택과 이에 대한 폭발적 관심은 이러한 주장들과는 맞지 않는다. 사유리씨는 현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단지 결혼제도 내로 들어가지 않고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기존 가족제도와는 거리가 있는 친밀함의 모습을 새롭게 하나 보여주었을 뿐이다. 청년세대는 이에 강렬하게 호응했다. '그냥 혼자 살고 싶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라는 인식과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결혼제도에 들어가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보는 기쁨 때문에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청년들이 있었다. 결혼할 수도 있지만, 그 결혼은 내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황혼결혼'이기를 원한다는 청년들도 있었다. 2030대 청년층 6500명을 대상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한 '저출산 대응정책 패러다임 전환 연구'에서 청년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 않지만, 평등한 파트너쉽이 전제된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응답했다. 청년들, 특히 청년여성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 불평등한 가족제도이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새로운 친밀성
아동과 관련된 최근의 많은 사건 사고들은, 현실 가족제도에 불완전하게 발디딘 가족들이 쉽지 않은 삶을 살게됨을 보여준다. 최근 있었던 사고에 노출된 많은 아동들 중 상당수가 한부모가족이었다. 실제로 양부모 규범을 벗어난 가족은 높은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한부모가족에 대한 세 차례의 실태조사 모두에서, 한부모가족의 평균소득은 전체가구 평균소득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의 OECD 아동빈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한부모가족 상대빈곤율은 약 53%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 이에 비해 한국의 양부모가족 상대빈곤율은 OECD 평균 수준에 가까운 약 13%이다. 한국은 한부모가족 빈곤율이 가장 높은 국가일 뿐 아니라, 한부모가족과 양부모가족의 빈곤율 차이가 가장 큰 국가이기도 하다.
불평등한 가족제도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선택은, 높은 사회적 위험 비율에 노출되게 만든다. 양부모 가족규범을 벗어난 가족이 빈곤과 사고의 위험에 취약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친밀성의 공동체로서 가족의 모습을 얼마나 폐쇄적으로 정의하고 있는가를 역으로 보여준다.
일하는 사람은 돌봄의 책임이 없어야 하고 반대로 돌보는 사람은 온전하게 하루종일 돌봄에만 집중할 것을 주문하는 사회에서는, 양부모규범을 벗어난 가족은 날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된다.아이가 아프거나 코로나와 같은 비상상황이 생기면, 줄타기는 무너지기 십상이다.
정책과 서비스의 공백과 멈춤은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직장을 잃을 위기 혹은 아동이 방임될 위기로 직결된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새로운 친밀성은, 아직 안전한 기반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가족다양성의 약한 경제적 기반은 다시, 새로운 친밀성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가질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저출산에 기여한다.
'새로운 가족'이란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 아니다
아동이 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의 비율이 부모의 혼인상태에 따라 네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구조 내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위험이 높은 가족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불균등성을 줄이는 것이다. 회사인간으로 일하는 남성과 아이를 도맡아 키우는 여성이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가족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족'으로 상정되어 왔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이런 '보편적 가족'은 사실은 보편적 가족이 아니며, 특정한 시기에 출현했다가 다시 소멸하는 '근대 가족'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새로운 가족들'을 '건강가정'과 '건강하지 않은 가정'으로 재단하고,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국가의 신호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행보이다. 가족정책의 근간을 이루지만 낡은 이름을 가진 '건강가정기본법'은 아직 이념적 잔재를 모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에 근거해 수립되는 '건강가정기본계획'은 이미 가족다양성을 중심 테마로 삼음으로서 '건강가정'의 틀을 벗어났다.
변화하는 가족의 모습에 맞추어 가족이 수행하던 돌봄의 역할, 경제적 부양의 역할은 개인 단위로 조직화하되 사회가 분담하도록 하고, 가족은 부양과 돌봄의 부담에 눌리지 않고 진정한 '친밀성'이 실천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아동을 키우는 책임은 더 이상 개별 가족에게 모두 넘겨서는 안 되며, 국가의 책임성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새로운 가족, 새로운 공동체가 자리 잡은 사회적 기준이 만들어지고 사람 사이의 유대에 관심을 가진 새로운 삶들의 경제적 기반이 갖추어져, 더 많은 사유리씨를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은지 시민기자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