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남편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그는 요즘 부엌일에 단단히 재미 들린 듯하다. 이것저것 만들어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청소와 설거지는 잘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리만큼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는 듯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신혼 초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딸린 집에서 살았다.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했다. 그리고 밥상을 차려 방으로 가져가 그의 앞에 대령했다. 사실 이 기억이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집에는 밥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우리는 고타츠에서 밥을 먹었다. 고타츠는 혼자 옮길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기억 속에서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밥상 위 소금과 참기름으로 무친 진녹색 시금치까지 선명하다.
기억이란 것이 쩝! 믿을 게 못 되지만. 어쨌든 그는 신혼초부터 밥상을 받는 남자였다. 첫 아이 산전 진통이 시작되던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그의 도시락으로 김밥을 쌌으니, 밥은 철저히 내 담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주말마다 그가 밥상을 차리고 나는 밥상을 받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천지개벽은 자연스럽게 오지 않았다. 난 어느 순간부터 고분고분 밥상 차리기를 거부했다. 비단 밥상 차리기만은 아니었지만. 우리 사이의 압력은 점점 커져만 갔다.
밥상을 받던 남편이 밥상을 차리다
2019년 8월 어느 토요일 아침, 공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그의 적절하지 않은 언어 사용에 대해 지적하며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예민하게 말꼬리를 잡은 면이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참아주었더니, 별 걸 다 꼬투리 잡네. 내려!"
그는 나를 서울 한복판에 내려놓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드디어 압력을 견디지 못한 풍선이 뻥! 터진 것이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이것이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이 될 줄이야.
그다음 날 일요일, 차려주는 밥만 먹던 그가 부엌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직접 장을 보고, 꽃게를 넣은 된장국을 끓였다. 그리고 우리들이 밥을 먹고 있는 동안 고기를 구웠다. 나는 아무것도 거들지 않고 남편이 차려준 밥상을 마주했다.
엉덩이가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뭐라도 도와야 되지 않을까? 나는 몇 번이고 들썩이는 엉덩이를 가라앉혀야 했다. 이렇게 나는 23년 결혼생활 처음으로 남편으로부터 온전한 밥상을 받게 되었다.
난 이 천지개벽의 상황을 의심했다. 땜빵식 임시방편일까. 그런데 그의 밥하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1년 6개월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밥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요즘 우리집 부엌은 남편의 취미교실이다.
남편의 취미 교실이 된 우리집 부엌
그는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다. 얼마전 평일이었다. 삐삐삐,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가 뚱뚱한 종량제 봉투를 들고 나타난다. 출장 갔다 일이 빨리 끝나 이마트에서 장 보고 오는 길이란다. 자기 밥하는 당번 날도 아닌데, 무언가를 만들 생각으로 장을 보고 오다니!
봉투에서 머리통만한 무우 두 개를 꺼낸다. 막내가 단무지를 좋아하니 담글 생각이란다.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치자를 사서 쟁여놓기까지 했으니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나는 안방으로 피신했다. 그가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내가 눈에 안 보이면 자기 혼자 척척 하는 것을 쓸데없이 물어보는 것이 싫다. 설탕이 부족하다느니, 식초가 부족하다느니.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단무지가 어떻게 되든 난 별로 관심 없다.
다음날 그는 퇴근하자마자 단무지 통을 열어본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겠지. 도톰하고 긴 단무지 한 줄을 꺼내온다. 와! 시중에서 파는 단무지랑 차원이 다르다. 치자로 노랗게 물든 것이 맛도 깔끔하다. 그가 만든 저장 식품 중에 으뜸이다. 그렇다고 깍두기, 얼갈이김치가 맛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열정은 반찬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것저것 간식도 만들어 본다. 그의 피자가 특별한 것은 도우에 있다. 감자를 간다. 전분을 만든다. 전분과 감자 알갱이로 동그랗게 모양을 빗는다. 앞뒤로 굽는다. 파프리카, 양파, 토마토, 치즈로 토핑 한 후 다시 구우면 완성! 감자떡의 쫄깃함을 피자에서 맛볼 수 있다니! 무엇보다 건강식이어서 좋다.
지난 주말에는 쑥 인절미와 쿠키를 만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해 볼 생각이 없다. 난 사실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니까 주부니까 당연히 해야 될 의무로 했을 뿐이다.
하루 세 끼 챙기느라 헉헉거리기에 바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엔 마음도 몸도 버거웠다.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를 잘못 만나 다양한 음식을 못 먹는구나 자책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제라도 아빠가 만든 여러 가지 반찬과 수제간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말이다.
밥짓기가 의무가 되면 그때도 즐거울까
불현듯 그가 얄미울 때가 있다. 나는 요리를 즐길 새도 없이 하녀처럼 가사 노동에 시달렸는데. 그는 가볍게 취미 생활처럼 즐기기까지 하니, 칭찬까지 덤으로 말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법칙이 여기서도 작용하는 것 같다. 그는 퇴직하면 살림을 전담하겠다고 한다.
"내가 퇴직하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다 할게. 넌 하고 싶은 거 해."
"그래? 끝까지 같이 살아야겠네. 이혼하면 내가 손해니까. 내가 20년 했으니 너도 20년 해."
농담인지 진담인지 두고 볼 일이다. 지금은 살림이 취미처럼 가볍지만, 그것을 의무로 해야 한다면 그때도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그가 전업주부로 20년 살면 나도 그때 요리에 적극적이 되어야겠다. 그때쯤이면 그동안 쌓인 피로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겠지. 나도 취미처럼 즐겁게 요리를 하고 싶다.
내가 23년 동안 하루 세 끼 음식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요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각양각색의 식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고, 다지고, 지지고, 볶고, 삶고, 튀기고... 예쁜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리는 것, 그것은 창조적 작품 활동이다. 그런데 요리를 의무로만 여겼던 과거로 인해 요리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렸다. 어찌할꼬! 나도 즐겁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