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서에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최근 용산참사 발언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용산참사 1년 후인 2010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당시의 경찰권 행사는 경찰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경찰비례의 원칙에 어긋난 과잉조치였다"고 밝혔다. 즉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당 의견서는 인권위를 후퇴시킨 인물로 평가되는 현병철(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씨가 임명)씨가 위원장으로 있던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현씨가 용산참사 관련 안건 사정을 막았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논란이 있었던 상황에서 나온 의견서이기에 그 의미가 깊다.
하지만 이러한 인권위의 판단과 오 후보의 인식 사이엔 거리가 있다. 오 후보는 지난 3월 31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임차인이 중심이 돼서 시민단체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이 가세해 폭력적 형태의 저항이 있었다"며 "거기에 경찰이 진입하다가 생긴 참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고는 과도한, 부주의한 폭력 행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 투입으로 생겼다. 그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의견서를 제출하며 인권위가 낸 보도자료를 그대로 전한다.
"용산 사건, 경찰 주의의무 위반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의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재정신청 사건이 진행 중인 서울고등법원에 당시의 경찰권 행사는 경찰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경찰비례의 원칙에 어긋난 과잉조치였다는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당시의 경찰권 행사가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이유 및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원에 제출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진입계획을 수립한 경찰지휘부는 당초에 진입계획을 세울 때 농성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시너, 화염병 등 위험물질의 종류와 양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예방책도 마련했으나 정작 진입작전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위험성을 도외시했습니다. 즉, 제1차 진입을 수행하는 경찰특공대원 및 소방관에게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교육 또는 정보제공을 하지 않았기에 경찰특공대원들은 이러한 점을 모르거나 도외시한 상태에서 망루에 투입되어 시너 및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발생의 가능성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진압작전을 시행한 현장지휘부 및 현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이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고려했다면 화재 발생을 미리 방지했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신속하게 대응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경찰이 제2차 진입을 시도할 당시에는 이미 많은 농성자가 체포된 이후였고 수명의 농성자만이 경찰에 포위된 상태에서 망루 4층에 남아 있었습니다. 경찰은 이미 제1차 진입 시에 제1차 화재가 발생한 점과 망루 내외에 다량의 시너가 뿌려졌고 망루 내부에는 가연성 유증기가 가득 차서 아주 작은 화원이라도 생길 경우 대형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른 작전의 변경, 망루 내부 상황의 파악, 망루 내부에 있는 농성자들에 대한 설득, 위험원 제거를 위한 현장 정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무리하게 곧바로 제2차 진입을 시도하였습니다.
이처럼 화재의 위험성이 매우 높고 강제진압을 할 경우 농성자들의 분신과 방화를 비롯한 돌출행동이 예견되는 상황 아래에서는, 작전에 투입된 경찰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해 더욱 신중히 공권력을 행사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불법점거와 농성을 진압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불법행위의 태양 및 위험물질 보유여부, 농성 장소의 상황 등에서 예측되는 피해 발생의 구체적 위험성에 비추어 농성진압을 계속 수행할 것인지 또는 진압방법을 변경할 필요성은 없는지 등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대처해야 합니다. 즉, 최대한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농성진압을 하여 진압과정에서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불필요한 위해를 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 한 채 합리적이고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를 넘어서 농성자들의 체포에만 주력해 이러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였음이 인정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 재정신청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해 공권력은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사법적인 기준을 설정해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