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각계각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이런 시장을 원한다!'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정책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
"퇴원할 때도 친구가 모시러 오겠네?"
"결혼상대자는 없어? 결혼해야지."
얼마 전 수술을 받게 되어 입원해 있을 때, 같은 병실을 쓰던 환자분들이 물으셨다. 어머니뻘 되는 분들 눈에 내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삼십대 후반의 여자이고, 거의 매일 병실을 오가며 나의 회복을 도운 것은 내 룸메이트였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직장을 다녔지만 지금은 건강 문제로 주말 아르바이트만 한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타지에서 온 친구와 2년째 같이 살고 있다. 왜 여자 둘이 같이 사는가? 가장 설명하기 편리한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다. 벌이가 마땅찮은 내가,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집에서, 월세 걱정 없이 살기 위해, 셰어하우스처럼 집을 나눠 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동거인은 나의 신체적 불편, 정서적 문제 등 생활 전반의 난관을 해결하도록 돕는 동반자이다. 허리가 좋지 않은 나 대신 짐을 들고, 대도심의 운전을 능숙하게 해내며, 일 중독인 내가 무리하지 않도록 하던 일을 끊어낼 시간을 알려준다.
한편 나는 집밥을 지어 동거인을 패스트푸드와 떼어놓고, 청소와 정리를 취미처럼 해내며, 전화 통화를 어려워하는 그 대신 전화로 잡다한 일을 해결한다. 우리는 혼술할 때 술을 따라주고, 고민이 있거나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부담 없이 의견을 나누는 상대이다.
한마디로 완전한 상호보완 관계인데, 이 관계는 임시적인 것이 아니다. 2014년부터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인 '생활동반자법'(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이 국가에 이를 등록하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 등 권리를 보장하고 둘 사이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안)의 개념처럼,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생활동반자 관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반려인'이라 부른다.
우리는 1.5인가구인가요?
타지에서 자취를 하며 직장다운 직장 없이도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반려인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월세에서 전세로 집을 옮길 수 있었던 것도 각자 가진 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합쳐 전세보증금을 마련했기 때문이고, 전셋집에 필요한 기본 가전제품도 혼자였다면 쉽게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제도적인 벽이 있다. 전세 계약이 끝나고 이사를 하게 되면 그때는 우리가 금융 제도 안에서 청년의 나이를 벗어나, 해당되는 대출 상품이 없다.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본가 근처로 이사해야 하는데, 근처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 아파트는 신혼부부나 예비신혼부부, 대학생, 청년 1인가구를 입주 대상으로 한다.
LH의 임대주택 중 2~3인 공동거주에 맞는 청년전세임대 셰어하우스도 있지만 공고 시기와 지역이 한정적이다. 또한 입주가 가능하더라도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각자가 모두 당첨되어야 공동거주가 가능하다.
두 개인이 만나 긴밀히 연대하고 돌보며 살아도, 혈연이나 혼인 관계의 가족이 아니라면 1인가구의 혜택도, 2인가구의 혜택도 받기 어렵다. 우리는 공동명의의 전세 계약이 되지 않아 반려인을 세대주로 정했고 내 몫의 보증금도 개인적으로 그에게 맡겼다. 반려인은 이 돈에 대해 굳이 계약서를 쓰자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본인이 사고를 당할 경우 내가 재산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는 것을 우려해서이다.
재산권에 있어서는 개인이 '증여'와 같은 대비책을 세울 수도 있지만, 그 외에도 이러한 '사회적 가족'의 공동 경제생활은 공적 제도와 민간 제도에서 모두 배제되어 있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관계없이 직계가족만을 보호자로 등치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시신 인수와 장례 권한을 갖는 연고자 역시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 등으로만 규정된다.
2013년, 부산의 한 60대 노인이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40년간 환자와 가족을 이루어 살아왔음에도, 연락 없이 살던 환자의 조카에게 전 재산과 집, 환자에 대한 접근권마저 빼앗기고 절망하여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혈연 외의 가족구성을 위해 '혼자' 아니면 '결혼'만을 강요하는 현 가족제도의 빈틈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다.
동거는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9년 1인가구 수는 전체의 30.2%를 차지하며, 1인가구 중 여성의 경우 60~70대 노년층이 무려 45.3%에 달한다.
전 국회 보좌관 황두영 작가는 저서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을 기피하는 이성 동거커플이나 동성애자를 위한 법이 아니며, 무엇보다 노년층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노인 빈곤과 독거, 고독사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개인들 간의 자발적 돌봄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정부 또는 기관의 입장에서 적극 활용할 자원이며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러한 연대 관계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다른 나라의 선례는 참고가 될 수 있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협약인 팍스(PACS)를 도입해 동성·이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 동거가구에 가정수당을 주고, 동거 관계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철저히 금지해 출생률 반등에 성공했다.
2018년 영국은 외로움을 흡연보다 더한 건강의 위협요인으로 보고 정부 차원에서 '외로움위원회'를 구성했다. 한국과 유사하게 가족의존형 복지국가 모델을 가진 일본은, 도쿄 시부야구를 시작으로 26개 지방자치단체가 '파트너십 증명제도' 등 조례를 통해 동거 관계의 두 성인이 공공기관에서 공평하고 적절한 대응을 받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당신의 가족은 '정상'인가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한 청원이 1000건 넘는 동의를 얻었다. KBS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발적 비혼모인 사유리의 아들 키우는 모습을 방영하는 것이 공영방송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정상가족'의 신화는, 남녀 부모와 아이로 구성되지 않은 가족은 '결핍'의 상태이고 어렵고 불행한 생활을 한다는 전제를 내포한다.
정말 정상가족 안의 가족 구성원들은 더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은 대체로 불행할까? 부모님의 이혼보다 정상가족 단위를 유지하며 지속되는 다툼이 더 불행했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결코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대표의 말을 빌리면, 모든 관계에는 위기가 있을 수 있고 모든 삶에는 위기가 있는데 지금까지 국가는 '특정 가족 형태가 위기다. 저들만 위기를 경험하고 있고 나머지는 괜찮다'고 말해왔다.
국가는 재생산의 단위로서 집단화된 가족의 형태와 안정된 시민권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국가 경영의 효율성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국가가 정한 '가족의 정상성'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 자연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 문제 등 개인의 사정으로 결혼과 출산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에서 벗어나는 무연고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가족을 단위나 형식이 아닌, 상호의존과 생활돌봄의 실천적 기능체로서 인식해야 한다.
2005년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폐지되기까지 기존 제도로 인해 부당한 불편을 겪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무마되었으나, 폐지 이후에는 그 같은 법 아래에 살았던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로 느껴진다. 수많은 개인이 각자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이라 믿어온 하나의 틀이 정말로 '유일한' 틀인가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출생률이 걱정된다고? 맞다. 2020년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0.98명이다. 프랑스에서 '팍스(PACS)'의 도입이 오히려 출생률을 반등시킨 것처럼, 가족에 대한 개념을 넓혀 가는 것이 국가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출생률이 더 떨어질 곳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하지 못할 실험은 없다는 황두영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생활동반자법 입법에 앞서, 먼저 도시 단위에서 기존 공적 제도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시범적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선할 일은 '대안적 파트너십'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거 복지와 생활 지원 등의 자격 증명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추가 조항을 제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청약당첨을 위한 가짜 파트너십 등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인원수만 맞추는 식의 악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도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가 가족이랑 같아? 늙어서까지 옆에 있겠어?"라는 시선에 대해 나는 "그럼 그게 가능하다면, 가족으로 존중할 수 있나요?"라고 반문하려 한다.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지금, 나는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존중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확대하는 새로운 시장을 원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시대에, 개인들의 돌봄과 연대를 제도적으로 돕는 정책과 그런 시정에 대한 상상력을 가진 시장이 필요하다. 나라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지 않고 제도를 위해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념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점진적 시도들을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연구와 글, 황두영 작가의 저서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글에 적은 '사회적 가족'의 개념은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진행한 '서울시 사회적 가족 실태와 차별 사례' 연구에서 밝힌 개념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사회적 가족을 “두 사람이 서로 돌보는 동반자 관계인 2인 동거 사회적 가족, 협동조합주택이나 쉐어하우스 등 자발적으로 주거를 함께 하면서 살아가는 주거공동체 지향 사회적 가족, 공동 주거 방식은 아니지만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지역사회 영역에서 서로 돌봄을 수행하는 네트워크 지향 사회적 가족, 이렇게 세 유형으로 구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