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묻엄"
지난 2월 15일 영면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무덤 앞에 세워진 새긴돌(묘비) 앞쪽에 새겨진 다섯글자다. 새긴돌 뒤쪽에는 백 소장이 생전에 직접 지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백 소장의 글씨체로 새겨졌다.
6일 49재를 맞아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님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서 '백기완 선생님 새긴돌 세우는 날-질라라비 훨훨'이라고 이름 붙은 묘비 제막 행사를 진행했다.
'질라라비'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억셈을 상징하는 새를 뜻하는 말로, 우람한 몸집과 우렁찬 울음을 지닌 닭의 본래 모습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기도 하다. 결국 '질라라비 훨훨'은 인간에게 사육당해 나는 법을 잃은 닭이 자유와 해방의 본성을 찾아 날갯짓을 하며 다시 훨훨 날아오른다는 것을 뜻한다.
생전에 백 소장은 강연 자리에서 "질라라비는 닭의 원래 이름"이라면서 "닭은 2만년동안 사람하고 살면서 자기 집을 짓는 것, 자기 입으로 먹이를 구하는 것을 잊어 버렸어. 사람들이 먹여주고 재워주지. 그래서 알도 낳고 늦잠 자는 아저씨를 깨워줬는데, 사돈에 팔촌이 왔다고 자기 모가지를 비틀어서 튀기려거든. 이에 화가 나서 오라를 풀고 날개를 쳐 날아가 버렸어. 울을 박차고 자기 해방의 경지로 날아가는 것을 '질라라비 훨훨~'이라고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백기완 묻엄'의 의미"
현장에는 백 소장의 유족을 비롯해 자발적으로 모인 1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이 가운데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있었다.
유 전 청장은 새긴돌 옆에 서서 "둥근 차돌 위에 '백기완 묻엄'이라 새겼다"면서 "돌 위에 무슨 글씨로 새겨야 할지 고민이 컸고, (한글학자) 김두봉 선생이 쓴 백범 김구 선생의 부인인 최준례 여사의 묘비를 참조해 아름답고 힘 있는 훈민정음체로 새기게 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백 소장의 새긴돌에 새겨진 글귀와 1924년 1월 1일에 사망한 최준례 여사의 묘비에는 똑같이 '묻엄'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졌다.
1919년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한 김두봉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서 의원을 지내며 <독립신문>을 편찬했다. 1924년 백범 김구의 부인 최준례가 상하이에서 숨진 뒤 그의 묘비에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단기 4222년 3월 19일), 대한민국 ㅂ해 ㄱ달 ㄱ날 죽음(대한민국 6년 1월 1일) 최준례 묻엄(무덤) 남편 김구 세움'이라고 새겼다.
유 전 청장은 "백기완 선생의 무덤을 잘 만드는 것이 우리의 민중문화를 완성하는 것이라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백기완 선생의 새긴돌에는 새기지 못했지만 백 선생이 생전에 남긴 비문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로 오늘 말을 대신한다"라며 낭송했다.
익은 낱알은 죽지 않는다
땅으로 떨어질 뿐이다
산새 들새들이여
낱알을 물고 가되
울음은 떨구고 가시라
- 비문 백기완
백기완에게 꽃을 올린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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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백기완 선생 유가족 “아름다운 꽃무덤 만들어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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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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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백 소장의 무덤에는 화사한 봄꽃이 한가득 올려졌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꽃을 올려 꽃무덤을 완성해 준 것이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김수억 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선생님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통일문제연구소 살구꽃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길가에 흐드러진 꽃을 꺾어왔다"면서 "한국가스공사와 철도 비정규직, 엘지트윈타워, 아시아나KO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꽃을 들고 다시 선생님 뵈러 온 것"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고개 들어, 어깨 펴' 힘을 불어 넣어준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윤보다 생명을, 이윤보다 평화를 강조하시며 '자본주의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선생님. 선생님이 마지막 온힘을 다해 쓴 '노동해방'과 '통일세상'... 외롭고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로 살아가겠다."
백 소장의 장녀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무덤 만들어줘 고맙다"면서 "아버님이 강조한 것이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나도 잘살고 너도 잘살고 하는 것이 노나메기 세상"이라고 강조했다.
"제 후배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선배는 왜 세상에 무서운 게 없냐고. 제가 말했다. 백기완의 딸로 살아봐라. 세상에 무서울 것이 무엇이겠냐고. 여러분은 백기완과 싸우고 함께 나아간 분들이다. 여러분 역시 무엇이 무섭겠나. 아버님께서는 평생에 자신을 박물관 유물로 박제화 하는 걸 거부하셨다. 그리고 어떤 싸움터든 가장 먼저 달려가셨다.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첫발떼기에 목숨을 걸자."
백 소장의 부인 김정숙 여사도 연신 "고맙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남편이 정말 마음 편히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고 말했다.
이날 새긴돌 세움 현장에는 지난 2월 영결식 때에 이어 가수 정태춘씨가 백기완 소장을 추모하기 위해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백기완 선생의 노랫말로 완성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정씨와 함께 불렀다.
지난 2월 15일 89세의 일기로 영면한 백기완 소장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무덤 옆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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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백기완 묘비 제막식, ‘민중비나리’ 올린 명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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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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