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이 아닌, 이란 핵의 평화적 해결에 먼저 착수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현지 시각 6일부터 이란 핵합의 당사국 회담을 열고 있다.
2015년 7월 14일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타결됐다가 2018년 5월 8일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파기된 이란 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CPOA)에는 이란과 안보리 상임이사국(Pemanent member,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과 독일이 참여했다.
그래서 이란과 'P5+1'이 2015년 7월 14일로 시간을 되돌리고자 오스트리아 빈에 모였지만, 회담 시작 전부터 전망은 불투명했다. '경제제재를 먼저 풀라'는 이란과 '핵 프로그램을 먼저 중지하라'는 미국의 입장 차이가 좁혀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6일 시작 '빈 회담'... 맞서는 이란과 미국
6일 빈 회담에서도 이란은 "제재 해제가 합의 복원을 위한 가장 필요하고 우선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합의 파기 및 제재 복원 때문에 자국이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게 됐으니 미국의 제재 해제가 선결 조건이라는 게 이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농도 20%의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면, 10억 달러(약 1조 1천억 원) 규모의 동결 자산을 해제해주겠다'며 핵 프로그램부터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10억 달러를 운운하는 미국에 대해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은 "터무니없는 제안"이라고 일축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한국에서 받지 못한 이란의 원유 대금만 해도 70억 달러(약 7조 8천억 원)다.
입장 차가 좁혀질 가능성은 이처럼 낮을 뿐 아니라, 회담 형식마저 비효율적이다. 이 회담 개최를 보도한 지난 2일자 로이터통신 기사 제목은 '미국·이란, 간접적 핵 거래 회담을 위해 비인으로 향한다(U.S., Iran head to Vienna for indirect nuclear deal talks)'였다.
기사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번 회담은 '간접 회담'이다. 이란과 미국이 빈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는 모여도, 특정 건물의 한 지붕 아래에는 모이지 않는다. 이란 측이 직접 얼굴을 맞대는 쪽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다. 이란이 미국과의 대면 회담을 거부한 결과다.
실상은 이란과 접촉하지 못하지만, 같은 도시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만난다는 점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만족하고 있다. 지난 3일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앞으로 어려운 논의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돌파구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이것이 건전한 진전이라고 믿는다"고 발언했다.
사실, 이란 핵보다 북한 핵이 미국에 훨씬 위협적이다. 북쪽에 수직선 형태의 카스피해를 두고 남쪽에 수평선 형태의 페르시아만·오만만을 둔 이란과 달리, 북한은 서쪽과 동쪽에 비교적 넓은 바다가 있어서 미사일 실험 발사를 통해 미국을 위협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또 건국의 주역인 앵글로색슨족이 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시작해 태평양과 그 너머 쪽으로 점차 서진(西進)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은 중동 쪽에서 발생한 위협보다는 태평양 쪽에서 발생한 위협에 더 민감하다. 북한이 무언가를 쏘아 올릴 때마다 미국의 지하벙커 회사 사장들의 입가가 올라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현상은 북미관계가 험악했을 때인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특히 두드러졌다.
2017년 8월 10일자 <LA 중앙일보> 기사 "미국인은 '불안불안' ... 지하벙커 회사 호황"은 "북한발 핵미사일 위협으로 미국의 지하벙커 회사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며 "9일 CBS방송은 LA의 지하벙커 제작사인 아틀라스 서바이버 셸터(Atlas Survivor Shelters)사가 창사 36년 만에 최고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두려워 지하벙커를 만들려 하는 미국 부자들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보도다.
전통 '보수' 미국인 안보관과 더 맞는 건 트럼프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이란 핵보다 북핵을 우선 처리하고자 했던 트럼프의 방식이 전통적인 미국인의 안보관과 보다 더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3월 25일에 했던 것처럼 탄도미사일을 동해 쪽으로 쏘아 올리는데도 '한·미·일 3국 협력으로 대응한다'는 원칙만 표명하고 있다.
바이든의 접근법을 '중동 석유자원에 대한 애착'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중동 석유는 지금도 미국에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은 과거보다 낮아졌다. 종래보다 더 깊은 지층인 셰일층에서 뽑아 올리는 셰일 오일이 각광받기 시작한 뒤인 2014년, 미국이 세계 1위의 원유 생산국이 됐다. 원유 매장량에서는 베네수엘라가 2011년에 세계 1위가 있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의 위상이 이전보다 낮아진 것이다.
바이든 핵정책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트럼프의 정책과 바이든의 정책이 실상은 똑같은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란과의 대립 국면을 조성했던 트럼프와, 이란과의 합의 국면을 조성하려는 바이든이 사실은 똑같은 것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원래 지배층은 앵글로색슨족이었지만. 20세기에는 '표면적으로는 앵글로색슨족, 이면적으로는 유대인'으로 바뀌었다. '성경 신약과 구약의 조합'으로 볼 수 있는 이 구조는 미국 대외정책의 중점이 서태평양(동아시아)과 중동으로 분산돼 있는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피부로 체감할 수 있듯, 미국의 세계전략은 동아시아가 있는 서태평양보다는 이스라엘이 있는 중동 쪽으로 좀 더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이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20세기 이후의 현실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에 관한 한, 트럼프와 바이든은 다르지 않다. 양자의 대외정책은 유대인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이란 핵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란 핵합의를 성사시키도록 오바마 행정부를 움직인 힘과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도록 트럼프 행정부를 움직인 힘은 똑같이 유대인들에게서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를 움직이는 힘도 마찬가지다.
2015년 이란 핵합의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미국 내 유대인들은 찬반양론으로 의견이 갈렸다. 핵합의 이듬해인 2016년 1월 9일 영문판 파키스탄 매체인 <카프카삼(Kafkassam)>에 실린 '유대계 미국인 관점에서 본 이란과의 핵 협상(The Nuclear Deal with Iran from Jewish-American Perspective)'이라는 기사에 그런 분위기가 설명돼 있다.
이 기사는 "(이란 핵합의) 지지자들의 주된 주장은 이 거래가 수년간에 걸친 이란과 세계 강대국들의 협상의 결과로 나왔기 때문에 지역을 안정시키는 좋은 단계라는 것"이라며 "반대자들은 이 거래가 테헤란의 핵개발 목표를 전멸시키기보다는 지연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고 정리한다.
이란 핵 위협 없애자는 목표는 '동일'... 접근방법의 차이일 뿐
찬반 양측의 궁극적 목표는 동일했다. 이란 핵의 위협을 없애는 것이다. 합의를 통해 그렇게 하느냐, 압박과 제재를 통해 그렇게 하느냐 하는 방식에서만 다를 뿐이다.
위 기사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유대계 미국인 사회에서는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유대계 미국 의원들은 달랐다. 이들 다수는 핵합의를 지지했다. 위 기사는 <예루살렘 포스트>를 인용해 "의회의 유대인 의원 3분의 2가 이란 핵합의를 지지했다(two thirds of Congress' Jewish lawmakers backed the Iran nuclear deal)고 설명한다.
유대계 의원들 입장에서 보면, 고국 이스라엘 안보를 하루라도 빨리 이룩하려면 제재·압박으로 이란을 굴복시키기보다는 협상으로 핵개발을 중단시키는 편이 훨씬 빠르다. 당장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의원들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이란을 상대로 대결 국면을 장기간 끌어가는 것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될 뿐이다.
오바마 정부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핵합의를 추진했다. 반면, 핵합의를 파기한 트럼프는 유대계 미국인들의 다수 의견을 존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때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을 가장 크게 의식한다는 점에서 오바마·바이든과 트럼프는 다르지 않다. 바이든이 북핵보다 이란 핵을 우선 처리하려는 것은 이란 핵으로 인한 위협을 감소시켜 가시적 성과를 내고자 하는 초조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이든의 접근법은 2015년에 표출됐던 유대계 다수의 정서를 거스르는 것이다. 이로 인한 유대계 표의 감소에 대비하는 조치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 신속히 취해졌다. 그것은 극단적인 친(親)이스라엘을 표방했던 트럼프의 정책 기조를 답습하는 조치들이었다.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팔레스타인의 반발 및 국제사회의 우려를 초래한 트럼프의 조치를 존중하면서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언명한 일, 한국이 제공하는 주한미군 방위비의 4배 가까운 38억 달러를 해마다 이스라엘 군사지원비로 계속 사용하기로 한 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전쟁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관리들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기소된 일에 대해 미국이 우려를 표명해준 일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이란 핵합의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불만을 누그러트리는 조치를 취한 상태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6일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과 '간접회담'을 하고 있다. 이란 핵에 신경을 쓴다는 모양새를 갖추는 데에 치중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하고도 남는 장면이다.
유대인 관점에서 핵문제를 다루는 이같은 접근법이 미국의 북핵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이 대북관계에 신경을 덜 쓰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바이든은 김정은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은 이스라엘에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을 직시하면서 북미관계에 전력을 기울여도 부족할 판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핵정책이 지나치게 유대인 관점에 휘둘리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미관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핵문제를 대할 때는 핵에만 집중하고 북미관계를 대할 때는 북한에만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