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투자자들에게는 황금률과 같은 원칙이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분산시키라는 의미이다. 투자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적용되어야 할 명언이다. 투자의 황금률에 비추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서울시장 선거 패배가 억울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현 정부의 잘못이라고 보기 애매한, 예전부터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왔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갑자기 정권심판론으로 흘러 선거에서 졌다는 피해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LH 사태는 도화선이었을 뿐 정권심판론은 중도층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민주당의 참패 원인 #1] 한 바구니에 계란 담기
정치에 있어 명분은 중요하다. 때로 대중들은 실리를 확실히 보장해준다면 명분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기도 한다. 국민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를 몰라서 대통령으로 뽑아준 게 아니다. 비리가 있더라도 저 사람이 경제를 살리겠구나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국회의원선거가 뉴타운 총선이 되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명분도 사라진 상황에서 실리마저 보장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국민들이 그 당을 찍을 이유가 없다. 이번 선거가 급속히 정권심판론으로 기운 이유는 민주당이 명분도 잃었고, 실리마저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꺾였기 때문이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 (더불어민주당 당헌 96조 2항)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당헌 개정 사건은 명분을 잃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당헌이란 국가로 치면 헌법과 같은 것이 아닌가. 당의 근간이 되는 원칙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실행해보지 않고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헌신짝 내팽개치듯 쉽게 뒤집어버리니 국민들에게 '명분 있는' 정치집단이 아닌 '내로남불' 정치집단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다.
당헌 개정을 하지 않고도 후보를 낼 방법은 없지 않았다. 진보 진영의 원로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의 말처럼 민주당이 생각하는 후보를 무소속으로 내보낼 수도 있고, 유인태 전 사무총장의 제안처럼 서울시장 선거를 연대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연대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연대의 경험과 역량은 보수보다 진보가 훨씬 앞서 있기에 의지만 있었다면 명분을 잃지 않고도 서울시장 후보에 민주당이 생각하는 후보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11월 당헌·당규 개정 이후에도 정경심 1심 판결, 여당 정치인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내로남불' 이미지가 누적되어 원칙 있는 승리 또는 원칙 있는 패배의 가장 큰 자산인 명분을 깎아 먹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명분을 잃은 정치집단에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만약 연대의 틀을 활용했다면 민주당 내부 악재나 정부의 실정은 연대체 일부의 일로 상당히 희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왜 민주당은 명분을 버리고서라도 민심이라는 계란을 민주당이라는 바구니에만 다 담으려 했을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투자는 고위험·고수익을 노리는 전형적인 투자기법이다. 주로 자신의 투자실력을 과신할 때 나오는 투자방식이다. 민주당이 당헌 개정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은 명분을 잃더라도 승산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실력을 과신하는 오만에 빠졌거나, 명분을 잃는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편견에 사로잡혔거나 둘 중 하나이다.
[민주당의 참패 원인 #2] 바구니에 있는 계란 내던지기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상식적으로 볼 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일으킨다. 민심이라는 계란을 민주당이라는 한 바구니 안에 담기로 했다면 계란을 더 담을 생각을 해야 한다. 도리어 있던 계란까지 내던져 버리는 것은 선거를 앞둔 정당이 하는 행동이라고 보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중도와 진보 일부 계층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진실을 떠나 윤 전 총장은 정부여당의 내로남불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민주당 주류의 생각이 어떻든 윤 전 총장을 원칙에 충실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기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봉합해가던 상황에서 굳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내세운 중대범죄수사청 문제로 자극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던 사람 뺨 때린 격이 되어 윤 전 총장은 사퇴하고 말았다.
바구니에 민심이라는 계란을 더 담아도 부족할 판에 있던 계란을 내던지는 자충수를 두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잡으려는 시도나 다를 바 없다. 이 또한 표본에 편향이 심하게 일어났거나 자신의 실력을 과신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처럼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이 좋아서 밀어준 것이 아니다. 중도와 진보 지지층의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 정신 차리라며 투표를 포기하거나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찍어주었다.
선거 결과를 곱씹어보며 민주당이 듣고 있던 민심의 소리에 과도하게 편향과 편견이 끼어 있던 것은 아닌지, 편향과 편견에 기반해 지지 세력과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투자의 대가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오랫동안 꾸준히 투자에 성공하는 이들은 자기 실력을 과신하는 오만과 본질을 흐리는 편견과 편향을 다스리는데 도가 튼 이들이기에 민주당의 개혁과 갱신에 필요한 조언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