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에 이어 2020년 12월말, 서울 마포구가 다시 홍대 지역 중심의 관광특구 지정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에 발족된 홍대관광특구 대책회의가 생각하는 홍대관광특구의 문제점과 홍대앞의 미래에 대한 목소리를 공개하려 한다. [기자말] |
[기사 수정 : 11일 오후 2시 48분]
전세계적인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홍대 관광특구 추진계획이 재림했다. 홍대를 '글로벌 관광도시'로 개발해 관광생태계를 복원하며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 서울시 마포구의 입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함께 홍대합정 공실률은 작년 4분기에 19.2%에 이르렀고(직전 분기 9.2%),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들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다. 주변 대학의 비대면 수업 실시, 영업시간 제한, 비싼 임대료, 프랜차이즈 위주의 업종 구성, 골목상권의 부상 등이 그 이유다.
마포구는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포 관광산업 도약'을 내세운다. 관광특구로 지정되면 연간 최대 300억원 규모의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진흥개발기금을 융자받을 수 있으며, 서울시에서도 관광특구 활성화 보조금이 나온다. 이 돈들은 특구 내 호텔이나 위락시설 개발에 쓰인다.
4년 전 그랬듯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관광특구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관광특구가 지나친 상업화와 개발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관광특구 계획 발표에도 불구하고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고 있지 않지만, 감염병 소강상태가 된다면 이 추세는 변화할 수 있다.
4년 전, 지금과 동일한 내용의 관광특구 계획이 발표되면서 홍대와 인근 지역의 임대료가 5% 이상 급상승했었다. 공시지가는 1년 내 18.74% 상승했다. 그런데도 해당 계획서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이 단 한 줄 쓰여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관광특구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마포구는 어떻게 대처하려는 자신감일까?
관광특구는 누구를 지역에서 내모는가
그간 홍대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어왔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홍대'씬'을 이루어왔던 대안독립예술인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났고, 도시개발, 젠트리피케이션 탓에 '두리반', 한 잔의 룰루랄라를 비롯해 홍대입구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되던 장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왔다. 관광객을 위한 시설들이 들어설 자리에 있던, 또 어떤 공간들과 사람들이 사라질까?
글로벌 관광도시화가 과연 어떤 집단의 부를 창출하고, 어떤 집단의 몰락을 야기하는지 또한 관광특구 문제에서 명확하게 검토되어야 할 일이다. 관광명소 이태원 해방촌을 보면, 그간 젠트리피케이션을 견디지 못해 공동체 공간들이 우후죽순 사라졌고, 청년, 활동가들은 다른 지역으로 밀려났다.
다른 나라 사례도 보자. 세계적인 관광도시인 홍콩에서는 지나친 상업화와 관광객 증가로 인해 주민들이 도시 주변부로 떠밀렸고, 세계 최고 수준의 임대료와 동시에 서민층에게는 '닭장 아파트'라 불릴 정도로 열악한 주거환경이 보편화되었는데,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만은 지난 민주화 시위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특구 개발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지금 과연 관광특구가 '신의 한 수'가 될 것인지 의문이다. 현재 이미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는 이태원과 명동은 작년, 각각 34.9%와 41.2%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공실률을 보였다. '특구'는 코로나19 앞에서 무력했던 것이다. 코로나 19는 언젠가 멈출 것이니 일단 개발하고 보자는 시도라면, 그런 무책임한 계획에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정부의 재정이 투여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순순히 쫓겨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마포구는 '민관 거버넌스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주민주도형 특구를 조성하겠다고 하지만, 주민설명회는 한 두 차례 있었으나, 직접 이해 당사자인 청년과 문화예술인에게 충분한 설명과 논의없이 진행되었다. 지역에 거주하며 지역의 문화를 창출해온 이들은, 비록 설명회장에는 초대받지 못했지만 목소리 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설명회장 '바깥에서' 이들은 홍대에 진정 필요한 공간이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밀려남에 저항하고 있는지 뚜렷한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도시의 공간들이 대기업과 투기 자본으로 상품화되는 현장에 청년, 청소년, 문화예술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십 년 전 칼국수집 두리반이 그랬다. 두리반은 홍대입구역 4번 출구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2009년 신공항 철도 역사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 건물의 재건축 공사가 시작되었고, GS건설의 용역들은 버티려던 가게 주인장을 위협했다. 버티기를 도우려고 예술인과 연대자들이 모여 들어 531일간 매일같이 공연과 '파티'를 벌였다.
자본이 없는 이들이 서로를 연결해 있을 곳을 지킨다는 끈끈한 공감대가 있었다. 이들의 싸움은, 비록 그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보상을 얻는 흔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다. 두리반 이후, 명동 마리,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경의선공유지를 비롯해 강제 퇴거 '밀려남'에 저항하는 투쟁 현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점거 공동체'가 형성된다.
2010년 도시재생사업으로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가 조성된 이후 급격한 상업화로 투기자본이 들이닥친 서촌 궁중족발에서도 그랬다.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300만 원을 내던 임차상인에게 건물주는 '보증금 1억 원, 월세 1200만 원'을 통보했다. 나가라는 것이었다. "궁중족발이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 때도 강제집행에 대항하기 위해 철문을 굳게 닫아 건 점거공동체 공간은 큰 역할을 했다. 그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2017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이어진 12차례의 강제집행을 버티며, 같이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영업이 멈춘 가게의 임차상인은 연대인들을 위해 여러 요리를 만들었고, 족발집이지만, 동물권 활동가 연대인들를 위한 비건 음식도 종종 나누어 먹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게 된 많은 곳들은 패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버티고 서로를 연결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개발을 꿈꾸는 이들은 조금쯤은 각오하고 일을 벌리는 것이 좋다.
일상에 해로운 관광특구, 반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의 일상은 한층 더 불안해졌다. 모임과 커뮤니티 활동은 제약되었고, 실직이 이어지며,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동결해주기를 '부탁'하는 실정이다. 주변이 온통 돌봄독박과 코로나 블루로 괴롭고 우울한 사람들 투성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가장 절박한 과제는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일이 아닐까. 코로나19로 정지된 삶의 권리들을 확인하고, 그것을 회복할 수 있게끔 하는 것. 한 사람이 주변과의 관계망을 지속하고, 대화할 사람들을 만나고, 갈 수 있는 작은 가게들을 갖고, 공연을 누리고, 서로를 돌보는 것과 같은 생활에 필요한 요소들을 보장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
나는 마포구의 관광특구 계획이 이러한 우리의 '일상의 권리'에 정면충돌하는 계획이라는 것을 새삼 지적하고 싶다. 홍대에서 공연음악을 누리고, 개성적인 가게에 들르며, 집회와 캠페인을 벌이는 일상을 사랑하는 서울시민으로서 나는 홍대 관광특구 개발계획에 반대한다.
관광산업으로 인한 도시공간의 재편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밀려남을 가속화시키며, 도시 내 장소들에서 일상적으로 생성되던 관계와 문화를 파괴할 것이다. 나의 예술가, 활동가, 상인 친구들, 몫 없는 주민들이 밀려날 것이며, 사실 이미 그래왔다. 기후정의 활동가로서, 마포구가 목표로 하는 '천만' 관광객이 타고 오는 비행기가 내뿜게 될 탄소가 지구온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매우 걱정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마포구가 관광특구 계획을 철회하기까지 동료 시민들과 함께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덧붙이는 글 | 필자소개 : 상현
살다보니 여러 운동에 휩쓸리며 살고 있는 활동가이자, 기획자, 정당인.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기후정의, 해외 민주화운동 연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논평과 성명서, 보도자료를 쓰고 액션을 기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