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권력야망'과 '전원귀소'라는 이중적 욕구가 유난히 강한 편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관직이 곧 생계수단이기도 했던 시대에서 선비들의 공통적인 욕망이기도 했을 터이다. 다만 그에게는 '권력야망'이 더 높은 관직이 아니라 개혁을 위한 권력추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홍길동전』에서 길동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용이 물에 잠겼으니 어별(魚鼈)이 침노하며,
범이 깊은 수풀을 잃으매 여우와 토끼의 조롱을 받는도다.
오래지 아니해서 풍운을 얻으면
그 변화 측량키 어려우리로다.
이것은 허균의 잠재된 이상이다. 결코 픽션으로 그려낸 문장이 아닐 것이다. 용이 물에 잠겼으니 물고기와 자라가 덤비고, 호랑이가 숲을 잃어서 간사한 여우와 토끼가 설친다. 이무기라고 진호한 그는 용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혼탁한 나라 사정과 간신들이 설치는 조정을 보면서 '풍운(風雲)'을 기도한다. 동양에서 용은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초월자를 상징한다.
앞의 인용시가 이 소설이라면 다음은 산문「복귀부」의 한 대목이다. 전장에서도 인용했으나 재인용한다. 여기서 '올빼미'는 권력의 실세인 이이첨을 일컫지 않을까 싶다.
다시 거듭 말하리라
천지에 숙살 기운 가득하여
화한 기운 막혔어라
난새 공작 위세 꺾이어
형극으로 도망가고
올빼미 뜻을 얻어
대궐에서 요란하네
향기 아니난다 난초 물리치고
누린내 풀 향기롭다 말하며
못생긴 얼굴 곱다 하고
미인을 추하다 하누나
슬기로운 사람은 움츠러들고
어리석은 자가 득세를 하네.
타락한 권력과 조정을 뒤엎고는 싶은데 현실적인 힘이 없었다. '호민'에 속하는 벗들은 이미 칠서지옥 사건으로 목이 잘리고 '항민'들은 용기가 없었다. 허균은 힘(세력)이 없는 관계로 혁명보다 개혁의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자기 딸을 광해의 후궁으로 밀어넣어 군왕을 움직이고자 했다.
인목대비 폐비에 앞장서면서 그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인목대비의 폐비를 반대하는 세력은 허균을 핵심으로 지목하며 공격하였다.
그런 와중에 세자빈에게 후사가 없자, 허균의 딸이 후궁으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세자빈은 이이첨의 외손녀였고, 이 일로 인해 허균과 이이첨은 등을 지게 되었다.
평소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신념을 실천하며 살아온 허균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더 이상 자신의 뜻을 실천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 허균은 마침내 역모를 꾀했다. 그러나 거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이이첨의 술수에 말려들어 역모의 주동자로 붙잡히고 말았다. (주석 4)
개혁주의자들은 순진한 편이다. 반면 수구 측은 교활하고 술수에 능하다. 그래서 상대하기 어렵다. 전자가 명분과 시대정신이 있지만 후자는 실리와 기득권이 쌓였다. 임진전쟁 후 백성들의 참상은 말이 아니었다. 반대로 소수 양반기득권 세력은 전전이나 전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균의 '시국진단'이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통곡헌기」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의 시대는 그들의 시대에 비해 더욱 말세요, 국사는 날로 그릇되고, 선비들의 행실도 날로 야박해져서 친구들 사이에 배치되는 것도 갈림길이 나뉜 것보다 더하며, 어진 선비가 고생을 겪는 것도 비단 길이 막힌 것뿐만 아니어서, 모두 인간 세상 밖으로 도망해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만약 저 몇 분의 군자와 같이 불우하게 일생을 마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시대를 목격하게 한다면 어떤 생각을 품게 될는지 모르겠소. 아마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 팽함(彭咸)이나 굴대부(屈大夫)처럼 돌을 끌어안거나 모래를 품고 투신자살하고자 할 것이오.
다수의 '원민'은 하늘이나 원망하고, 적지 않은 '항민'은 겁이 많아서 신세타령이나 하면서 몸사리고 침묵하였다. '호민'이 나서야 했다.
주석
4> 최성수 외, 「혁명을 꿈꾼 죄 허균」, 『우리 역사의 주체적 인물』, 160~161쪽, 북피아, 2007.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