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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보궐 선거에서 대패한 더불어민주당은 등 돌린 20대 남자를 되찾고 싶은지 군 가산점과 여성 입대를 성평등이라는 기준에 올려놨다.
재보궐 선거에서 대패한 더불어민주당은 등 돌린 20대 남자를 되찾고 싶은지 군 가산점과 여성 입대를 성평등이라는 기준에 올려놨다. ⓒ 연합뉴스
  
26살 11월, 보통 대학생 남자의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제법 늦은 나이에 입대해 28살 7월이 되어서야 제대했다. 1년 8개월의 시간은 꽤 긴 시간이라 입대 시기는 중요했다. 20대 초중반엔 나의 목표가 있었고, 목표를 이뤄놓고 군대에 가면 좋을 것 같아 늦춘 게 26살 11월이었다. 28살 7월 사회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간 내가 세운 나름의 커리어는 사라졌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마음에 불안과 초조함이 따랐다.

제대하자마자 이것저것 일을 벌인 것도 그 탓이었다. 누구는 그런 나를 보며 "그러게 빨리 다녀오지"라고 했지만, 빨리 갔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20대 초중반에 세운 목표도 당연히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시작이라는 두려움은 같았겠지만, 빨리 다녀왔더라면 그나마 세워둔 커리어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늦게 간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무엇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28살 7월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남 되찾고픈' 민주당, 그들이 놓친 것

재보궐 선거에서 대패한 민주당은 등 돌린 20대 남자를 되찾고 싶은지 군 가산점과 여성 입대를 성평등이라는 기준에 올려놨다. 군 가산점 제도는 군대와 노동시장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도입하려면 성별 간 생애주기 노동시간과 평균임금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별 간 임금 격차는 32.5%로, 이는 OECD 국가 중 최고치다. 남성이 100만 원 벌 때 여성은 68만 원을 벌었다. 또 남성 노동참여율은 74%지만, 여성은 53%에 그친다. 여자 친구들이랑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같은 직급인데도 남자 동료와 월급 차이가 난다는 것, 남자 동료가 승진을 더 빠르게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이는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심각해 보였다. 남성이 직장에서 우대받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1년 6개월의 입대 보상은 직접적이지 않을 뿐 분명 존재한다. 물론 국가에 청춘을 바치고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고, 굉장히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군 가산점제를 노동시장에 도입하고자 할 때는 기존의 노동시장은 과연 평범한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 가산점제는 복무에 대한 직접 보상이 아닌 추후 보상인데 이 부분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다. 왜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을 추후에 받아야 할까? 올해 대한민국 병장 월급은 60만 8500원이다.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한 달 월급 182만 2480원에 1/3 수준이다.

세상 어떤 나라, 어떤 노동시장도 노동에 대한 보상을 추후에 하는 곳은 없다. 정작 군복무 할 때는 애국페이로 퉁치더니 제대하고 나서 군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게 보상일 수 있을까.

2020년 7월에 제대한 나는 거의 다 쓰러져 가는 막사에서 침대도 없이 군복무를 했다. 야외 훈련 때 쓰는 수통과 반합은 오래돼 다 찌그러지고, 곰팡이가 펴 거기에 밥을 먹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훈련소에 있을 당시 다른 분대에서 한 장병이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모포를 덮고 자는 바람에 피부병이 도져 밤에 응급실로 향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런 것에 대한 보상은 없고, 나중에 그것도 전용기 의원에 따르면 공기업에 승진할 때나 주는 군 가산점이 평등이 될 수 있을까? 그럼 공기업에 취직하지 않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보상을 할 텐가. 이는 지금 당장에 대한 보상을 추후로 연기하면서 젠더간의 혐오만 부추기는 꼴이다.

가산점 도입'만' 주장, 남녀간 혐오감만 깊어진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의원과 함께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의원과 함께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또 남자의 경우 별일이 없는 한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지만, 여성은 결혼과 육아로 커리어를 잃는다. 여성은 아이를 돌보다가 40대가 돼서야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그제서야 다시 시작하는 부담감과 두려움은 늦은 입대로 다시 시작해야 했던 나의 부담감과 두려움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것이다. 나는 잠시 쉰 것뿐 끊긴 게 아니지만, 여성은 그 시기에 경력이 단절된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의 경우라도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게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다.

군 복무의 보상을 노동시장의 평등 기준선으로 가져올 때는 기존 노동시장에서의 평등함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것에 대한 논의는 정작 없이 가산점 도입만 주장하니까 결국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혐오감만 깊어진다. 이는 평등을 위한 것이 아닌, 그냥 '나쁜 정치'다.

군 복무에 대한 진정한 평등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그 시작은 군 가산점제도 아니고, 모병제와 남녀평등복무제를 함께하는 것도 아니다. 현역 예비군 훈련도 가보면 엉망인데, 무슨 수로 어떻게 40~100일 훈련한 예비군들로 새로운 병역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건지 의문이다. 군 복무에 있어 진정한 평등을 논하고자 한다면 지금과 같은 허접한 논의가 아닌, 많은 고민과 연구를 담아낸 모병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대 남자를 군대라는 수단에 엮어 젠더 간 혐오만 부추기는 정치를 멈추고 진정한 정의와 공정을 위한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군가산점#모병제#징병제#남녀평등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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