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투기판이다. 30대 중반 이상은 부동산 투기, 30대 초반은 주식 투기, 20대는 가상코인(또는 암호화폐) 투기 등 전 세대가 온갖 방식의 자산 투기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최고 정점은 뭐라고 해도 비트코인·이더리움·도지코인·페이코인 등 이제 거의 1만 종류에 달할 정도로 온라인에서 마구 생성되는 가상코인 투기다. 가상코인 투자 예탁금이 1년 동안 무려 6배나 불어나서 2월 말 기준 4조6000억을 넘었다고 한다. 전세계 가상코인 거래의 10%를 한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니 그 열풍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거세다.
한국은행 총재나 금융위원장 등 책임 있는 기관장과 권위 있는 학자들이 위험하다고 말려도 막무가내다. 왜 안 그러겠는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지난해 3월 중순만 해도 1 비트코인당 가격은 5000달러(약 500만원)를 오가는 정도였다.
그런데 모든 실물경제가 망가진 와중에도, 비트코인 가격은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훌쩍 뛰어넘어 지난 연말에는 3만 달러에 육박했고, 올 4월에는 6만5000달러를 오가는 등 1년 사이에 10배 이상의 폭등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대박을 터뜨렸다고 난리인데, 코로나19 재난 와중에 몇 푼 더 벌겠다고 뼈빠지게 일할 맛이 나겠는가.
그래서 너도 나도 빚을 끌어서라도 가상코인 투기에 나섰다. 지난 22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 30대 초반 직장인은 "코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실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투자 행위가 마치 카지노 홀짝에서 내 손모가지를 거는 것과 같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30대 초반 투자자도 "사실 코인을 믿지 않는다. 돈 넣고 돈 먹기를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라 전체가 카지노판이 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하루 20조원 오가는 도박판 방치하는 무책임
거품이 거품인 이유는 반드시 터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 시점일 뿐이다. 지금처럼 부동산·주식·가상코인 투기에 수많은 시민들이 '올인'하는 상황에서, 거품이 꺼지고 축제가 끝나고 난 뒤의 세상은 말할 수 없는 지옥이 될 개연성이 크다.
정상적인 세상에서는 이쯤 되면, 거품 붕괴의 참혹한 후과를 두려워해서라도, 강력한 대책을 제안하는 식자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말리려 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당국자들은 오히려 가상코인 시장에 사상 최악의 거품이 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책임한 우려의 목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암호화폐는 투기성이 강한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시민들이 이 투기판에 알아서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는 식의 맥없는 변명을 했다. 책임 있는 금융 당국자가 한 얘기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정도는 정말 참아줄 만한 수준이다. 집권여당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정치인 이광재 의원은 지난 23일 <뉴스원>과 인터뷰에서 "암호화폐 시장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신산업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아예 금융당국자를 나무랐다.
그는 가상코인 시장의 혁신성을 운운하면서 청년들의 투기 가담을 말리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 청년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암호화폐 시장을 산업으로 인정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년들 이름을 빌어 투기 공간을 더 열자는 놀랄만한 제안을 한 것이다. 가상코인의 실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주장이 미칠 사회적 파괴력에 대해 전혀 감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가상코인은 절대 '화폐'가 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어느 시점에서 가상코인 가치는 0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본다. 99% 이상의 가상코인은 모두 폐기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기업들이 비트코인 등 가상코인을 실제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가상코인의 미래에 장미빛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생각해 보라. 현재 비트코인 거래처리 수수료는 건당 2~3만원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비트코인의 거래처리 시간은 블록 생성시간인 평균 10분이다. 그렇게 블록이 생성되었더라도 최종 살아남는 것까지를 가장 짧게 기다려도 30분은 잡아야 한다. 4000원짜리 커피 한 잔 사려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면 수수료를 커피값의 4~5배를 내고 결제시간도 30분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 없이 1초 안에 커피를 살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반박도 있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해주겠다고 했다지 않았냐고?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자동차를 샀더라도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교환기능을 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자산으로서, 테슬라 전기차라는 자산과 비트코인 자산을 교환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해서, 현재까지 나온 가상코인은 모두 '화폐'로 기능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점을 몇 번이고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 가상코인은 '화폐가 아니라 가상 자산'의 성격을 갖고 거래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주식이나 채권처럼 가상자산, 투자상품으로 취급하면 되지 않을까? 한국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상코인 투기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자, 실제 가상자산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가상코인을 가상자산으로, 투자상품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금융위기 주범 '파생상품' 뺨치는 가상코인
우선 모든 투기, 모든 거품은 경제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연히 부동산 거품이나 주식 거품이나 모두 문제다. 그런데 이들 자산은 실체라도 있다. 그리고 각종 금융사기를 막을 시장거래의 규칙, 법과 제도도 있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파생상품도 비록 규제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엉성했고 그 투기적 위험도가 극에 달해서 워런 버핏이 '대량살상무기'라고 비난했지만, 그래도 기초자산이라고 하는 것이 있기는 했다. 파생상품의 원천을 찾아 올라가면 부동산 채권이나 주식 같은 기초자산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상코인은 그 가치를 뒷받침하는 기초자산 자체가 없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역할을 하는 '쓸모'라고 하는 것도 없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 손실위험을 감당해주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제도적인 시장거래 규칙이 없으니 온갖 편법과 사기가 난무해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고,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이 정도면 그냥 '순도 100% 도박판'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코인 투기가 십수 년 전의 파생상품 투기보다도 더 위험하고 더 한심한 투기행위라고 믿는다.
그런데 거금이 오고가는 투전판은 사회적으로 미칠 막대한 해악을 고려하여 통제하는 정부가 웬만한 도박판과 비교도 안 되는 수십조 원이 오가는 가상코인 도박은 규제하지 않고 있다. 테슬라, 골드만삭스, 페이팔, 마스터카드 등 유명한 기업들이 자산의 하나로 인정하는데 설마 그렇게 허무맹랑한 거짓 자산일 리가 없다고 확신해서인가?
하지만 일부 명성을 얻은 장사꾼들의 우호적인 발언이 코인 투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과거 파생상품은 워런 버핏 등 일부 선구자들을 제외하면 세상의 모든 식자가 위험성 경고는커녕 그 훌륭함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일찍이 1970년대 피셔블랙과 마이런 숄즈의 옵션가격모형이라는 '탁월한' 모델을 토대로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노벨상을 받은 유명 경제학자들과 온갖 쟁쟁한 금융공학자들이 완벽하게 위험분산을 시켜 설계한 상품이 파생상품이라고 했었다. 그린스펀과 버냉키 등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들까지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그럼에도 세계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주범의 신세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가상코인을 보라. 한국은행장과 금융위원장은 물론, 미국의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이나 옐런 재무장관 등 압도적으로 많은 전세계 금융당국자들이 모두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누리엘 루비니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도 모두 가상코인 투기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거품 붕괴 이후를 대비해야
그래도 아직 남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토록 뻔한 기술에 이토록 뻔한 거품이라고 진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비트코인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열광시켜오고 있냐고? 행동경제학과 심리경제학에 정통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는 최근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한 가지 단서를 알려준다.
그는 비트코인에서 연출되는 '서사(narrative)'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에 대한 일종의 탈출구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내러티브에 따르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그동안 거대 금융기업들로부터 사기당하고 정부로부터도 외면당해온 시민들의 내면에 "정부의 통제와 관리,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하는 잠재적 열망의 불을 댕겼다는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시대에 "비트코인은 국적이 없어 더욱 민주적이고 국제적인 호소력을 지녔는데, 비트코인 지갑의 소유는 세계 시민이 된다는 것이며, 어찌보면 전통적인 소속집단에서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해방감을 주었다는 설명이다. 불안정 노동환경에 좌절한 2030세대에게 첨단으로 포장된 자산거품 시장에 뛰어들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까지 불어넣어 주었으니 오죽하겠나? 특히 비트코인을 만들었던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인물까지 베일에 쌓여 추리물적 요소까지 가미됐으니 흥미와 관심을 끌 만한 모든 요소가 갖춰진 셈이다.
이렇게 비트코인은 '미래적 상상력' 요소들을 모두 동원해서 청년세대를 투기시장에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전형적 기성세대인 이광재 의원은 "청년들의 미래투자를 기성세대가 막아서는 안 된다"면서 이 허구적 내러티브에 순진하게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실제로 가상코인 투기 참여자 중에는 2030세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코인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2021년 1월 말 기준으로 투자자 중 20대가 32.9%, 30대가 29.1%로 나타났다. 대체로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서, 만약 암호화 화폐 투기거품이 꺼지면 2030세대들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거품 붕괴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간명한 해답은 '일말의 튤립 꽃향기' 조차의 가치도 없는 가상코인의 투기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했다는 정치인이라면, 우리 사회가 위험천만한 도박을 통해서만 미래를 설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마땅히 노동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사회보장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노동으로 일하는 것 이상의 비율로 '집값이 폭등'하지 않도록 투기를 억제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길은 없다. 현실이 힘들다고 마약에 취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