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근로정신대·근로보국대'로 사용되었던 '근로(勤勞)'라는 용어를 '노동 존중 시대'에 맞게 '노동(勞動)'으로 바꾸는 조례를 제정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근로'는 '힘을 들여 부지런히 일함',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함'이라는 뜻이다. 관련 법률은 개정되지 않았지만 몇몇 지방자치단체(의회)는 '근로'를 '노동'으로 바로 잡는 조례를 제정했다.
경남 창원시의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2019년 7월 "근로 관련 용어 변경을 위한 창원시 감정노동자의 권리 보호 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경남도의회도 같은 해 12월 전국 광역의회에서는 처음으로 "경상남도 조례 용어 일괄 정비를 위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이 조례에 따라 각종 조례나 공문, 문서, 보도자료, 기관명에 들어 있는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도록 했다. '근로자'는 '노동자', '근로소득'은 '노동소득',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는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자활근로사업단'은 '자활노동사업단'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당시 최영희 창원시의원은 "일제강점기 때 '근로정신대' 내지 '근로보국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며 "노동 존중 시대에 맞게 용어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경남도-창원시, 아직 '근로'라 쓴 사례 많아
그런데 개정된 조례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잦다. 올해 경남도와 창원시가 낸 공문이나 보도자료를 보면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례가 많다.
창원시가 지난 4월 말에 낸 '직원 특별휴가 실시 계획 알림' 공문을 보면 "근로자의 날 및 가정의 달 5월 중 특별휴가를 실시하과 한다"고 되어 있다. 조례대로 하면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의 날' 내지 '노동절'로 표현해야 한다.
경남도가 올해 낸 코로나19 관련 설명 자료를 보면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라고 표현한 사례가 많다.
경남도는 2월 3일 "방역 관련 예방 체계와 근로자 개인위생 수칙 등을 집중 점검", "근로자가 밀집하는 구내식당에서 칸막이를 설치하지 않거나"라고 썼다.
또 경남도는 3월 11일 자료에서 "최근 수도권의 외국인 근로자 집단감염 발생으로", "시군의 외국인이 근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라고 했다.
경남도는 3월 21일 자료에서도 "방역당국에서 실시한 외국인 근로자 선제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라고 썼다.
보도자료에서 '근로'가 사용되었다. 경남도가 올해 4월 18일 낸 "코로나19 극복 희망근로 3666명 일자리 제공"이란 제목의 자료에서 '근로'라 했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희망근로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한다"라고 표현했다.
경남도는 "모집대상은 만 18세 이상으로 근로 능력이 있고 지역경제 침체로 생계지원이 필요한 도민이다"라고 했다.
또 경남도는 3월 18일 낸 "항공제조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신규 지정"이란 제목의 자료에서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를 대상으로", "근로자에 대한 직업훈련 생계비 대부 한도"라고 표현했다.
창원시도 마찬가지다. 4월 5일 나온 "불법 좌회전 청소차 대행업체 대행계약 위반으로 조치"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창원시는 "해당업체 및 근로자의 사유서를 징구하고"라거나 "현장 근로자들의 불법탑승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라고 표현했다.
또 창원시는 4월 15일 낸 자료에서 "근로자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노력"이라고 했다.
경남도와 창원시가 쓴 '근로'와 '근로자', '희망근로'는 '노동'과 '노동자', '희망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
"상위 법률이 바뀌지 않아서" ... "빨리 개선해 나가야"
최영희 창원시의원은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어야 하고,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는데도 여전히 바꾸어지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시의회 5분자유발언을 통해 여러 사례를 지적했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다. 자칫 노동 천시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지수 경남도의원(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대변인)은 "최근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명칭을 변경하고, 법령에 산재한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근로자는 '부지런히 일하는 자'라는 수동적인 대상자의 의미인 반면, 노동자는 '몸을 움직여 일하는 자'라는 능동적 의미가 있어 '노동자'가 '근로자'보다 가치중립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국회에서도 지난해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서 노동자의 이름을 되찾는 법제화를 모색하고 있다"며 "일제의 잔재 청산과 아울러 노동자의 원래 이름을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석규 창원시 노동정책관은 "아직 헷갈리는 면이 있다. 법에 근로라는 표현이 남아 있기도 하다. 공무원들은 법정 용어에 따라 일하다 보니 법에 있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며 "상위 법률 용어가 고쳐지지 않고 있다 보니, 괴리감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개선해 나아가야 한다. 창원시는 이미 조례를 만들었고, 다른 지자체들도 관련 조례를 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빨리 '근로' 보다 '노동'으로 되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