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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학문도 옅고, 지혜도 부족한 필자가 천만 뜻밖에도 4월 7일부터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렇게 된 연원은 두 분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두 분의 높은 유지를 받들어 한반도 평화와 조국 통일, 나라 발전에 보탬이 되는 글감으로 '박도 칼럼'을 연재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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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생활 33년 가운데 28년을 기독교 학교에서 근무했다. 나는 그제나 이제나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그 학교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학교법인이 신앙을 강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매주 있었던 전교 예배시간은 주로 대학 강당에서 가졌던 바, 훌륭하신 인사를 초빙해 좋은 말씀을 들었기에 거부감없이 수양의 시간으로 보냈다.

당시 설교를 하셨던 많은 인사 가운데 이즈음 기억에 떠오르는 분은 이대교목이었던 서광선 목사님이다. 어느 날 그분은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바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금언이라 여겨진다.

요즘 국회에서는 5개 부처 장관후보자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한 후보자는 해외출장 때 가족과 동행한 전력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태 전 어느 장관후보자 역시 자녀의 대학교, 대학원 입시전형에 편의를 줬다는 의혹으로 지금도 재판 중이다. 당사자는 항변할 말이 있을 것이나, 유권자가 이런 사례를 접하면 난감하기 일쑤다. 정치 지도자들이 입으로 만들겠다는 세상과 실제 그들이 사는 세상이 너무나도 다름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족이기주의는 유별나다. 그 정도가 지나쳐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한 집안에서 고위직에 오르면 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그 영향 아래에서 기생하려고 한다. 조선 말기 세도정치가 그 실례다. 그 폐단은 결국 국력을 쇠퇴하게 해 끝내 망국의 빌미가 됐다.
  
 뤼순의 203고지
 뤼순의 203고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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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 203고지

2009년 10월, 필자가 안중근 의사 마지막 행장을 답사하고자 중국 랴오닝 성 다롄의 뤼순에 갔을 때다. 뤼순은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 순국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곳은 군항지다. 이 군항은 팔자가 드세 중국에서 러시아로, 러일전쟁 후에는 일본으로, 일본 패전 후 다시 러시아로, 이후는 중국의 군항으로, 그때그때 강자의 판도에 있었던 군사 요새다. 지금도 그곳에는 러일전쟁 당시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고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뤼순은 러시아 군항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일본이 러시아를 제압하자면 러시아 군항인 뤼순항의 203 요새지를 반드시 그들의 손아귀에 넣어야 했다. 필자가 둘러본 뤼순항은 복어 모양의 천연 군항으로 203 고지 요새에서 뤼순 항을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러시아는 이 203 고지에 콘크리트 방카로 문자 그대로 난공불락 요새지를 만들었다.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가 이끄는 일본군은 하루에 8000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일본군 13만 명 가운데 6만여 명을 희생시킨 끝에 203고지를 함락할 수 있었다. 그런 뒤 뤼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함대를 모두 괴멸시킨 다음 마침내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203고지에서 바라본 뤼순군항
 203고지에서 바라본 뤼순군항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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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전투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일본인들은 노기 장군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노기 역시 자신의 아들도 그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소식에 가족 잃은 일본인들은 말없이 눈물을 머금은 채 뒤돌아섰다고 전해진다.

내가 6.25전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바, 1950년 중국은 백만 대군을 '항미원조전쟁(중국 측에서 부르는 6.25전쟁)'에 지원군으로 보냈다. 거기에는 마오쩌둥의 장남 모인영도 공군 조종사로 참전케 했다. 모인영은 미공군기에 격추당해 전사했다. 하지만 마오 주석은 자기 아들의 시신을 송환치 않게 하고 북한 땅에 그대로 묻게 했다. 그래서 항미원조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시신을 인도받지 못한 중국 부모들의 원성을 잠재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본보기가 지도자의 첫째 덕목이 아닐까. 나라와 민족에 대한 희생없이 단물만 빨려는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는가. 

이즈음 우리나라는 대단히 어렵다. 시민들은 정치지도자를 극도로 불신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고위 공직자는 백설같이 청렴하고, 칼날같이 공정하며, 부정부패에 찌들지 않은 인물이어야만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물이어야만 부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신뢰에 금이 간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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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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