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잘했으면 야간 근무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힘들게 연장 근무를 뭐 하러 합니까? 쫌! 잘합시다. 빨리 움직이세요."
천장 스피커로부터 한 남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야근 공지는 늘 그렇듯 꾸지람으로 끝났다. 사람들은 주문서의 책을 골라내기 위해 미로 같은 책장 사이로 흩어졌고, 일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무거워 일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고 뻑뻑한 눈은 아무리 껌뻑거려도 앞이 흐릿했다.
밤 10시 반. 야간 조가 출근했어도 주간 조는 퇴근하지 못했다. 자정까지, 연장의 연장 근무이다. 아침 8시에 현장에 도착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일을 시작한 지 14시간째.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12시간 넘게 일하고 있었다.
음반 담당인 j는 인력이 부족해 새벽 6시 30분에 조기 출근했다. j는 출산한 지 3개월 만에 이곳에 돌아왔고 처음엔 모유 수유를 이어갈 계획이었지만, 며칠 되지 않아 모유 수축할 장소도, 시간도 없어 단유를 결심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집에 있는 아기뿐 아니라 j에게도 쉽지 않아 늘 젖이 땡땡하게 불어 아파했다. 집에 돌아가서 아픔을 참지 못하고 우는 아기에게 다시 젖을 물린다고 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j는 화장실에서 젖을 짜 버리며 일을 했다.
어깨 빠지고 손가락 휘고 손톱 갈라지고...
책이 좋아 찾아온 이곳은 책을 좋아한다면 오지 말아야 할 곳이었다. 그래도 나는 '꿀'이라고 불리는 외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외서는 대부분 가벼운 페이퍼북이라 다른 조에 비해 일하기 괜찮았다. 일본 도서는 일어를 배운 적 없어 숨은그림찾기처럼 글자의 모양새를 맞추며 책을 찾았고 배운 적 있는 영어도 매일반이어서 익숙해지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주문이 많은 문학은 양장 도서도 많아 근무자들이 무척 힘들었다. 어깨가 빠지거나 손가락이 휘고 손톱이 갈라지기도 한다. 보통 책들을 바구니 카트에 담아 이동하지만 급할 때는 들고 달려야 했다. 키를 훌쩍 넘는 5단 철제 책장에서 책을 꺼내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 군데에서 이동 없이 일하는 포장 근무자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가만히 서서 일하는 게 움직이는 것보다 다리가 더 아프다. 박스에 책을 포장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손목, 손가락, 어깨 어디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조마다 배치된 프린터기는 밀려드는 주문서를 뱉어내느라 쉬지 않고 삐삐거렸다. 총알 배송, 당일 배송이 약속된 택배 마감 시간에 맞추려면 주문서 여러 장을 손에 쥐고 재빠르게 책을 찾아 포장대에 가져다주어야 한다. 수십 대의 카트가 오가고 수백 개의 발이 뛰어다니는 그곳에서 충돌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건, 단지 운이 좋아서. 다른 대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오후 다섯 시까지는 괜찮았다. 책과 책 사이에서 종이 내음을 맡으며 몸을 움직이는 일은 오히려 신나기도 하니까. 하지만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10시까지 연장근무가 공지되면 조금 힘이 빠졌다. 예상했지만, 기대도 했었다. 남편에게 아이들 저녁을 부탁하고, 아이들에게 엄마 늦는다는 문자를 보낸다. 답장이 오기 전 다시 일을 시작한다. 연말부터 다음 해 3월까지는 일이 가장 많을 때라 해지기 전엔 퇴근할 수 없다. 저녁 9시가 넘어 다시 자정까지 퇴근이 미루어지면 그때는 숨이 턱 막혔다. 핑계를 대고 집에 가고 싶지만 같은 조 동료에게 일을 떠넘기기 미안하고, 한적한 도로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도 위험해 그냥 버틴다.
4개월 동안 10시 퇴근은 다반사였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자정까지 근무했다.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우수수 그만두었고 새로운 얼굴들이 그 뒤를 이어 줄줄이 들어왔다. 근무 시스템이 이러하니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 초과 근무는 매일 발생했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는 고무줄처럼 근무 시간이 계속 늘어났고 주 1회 휴무도 거의 지켜지지 않아 일하러 왔다가 족쇄를 찬 것 같았다.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일상생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다른 누군가가 면박을 주며 입을 막았다.
"일한 만큼 수당 주잖아? 힘들면 그만두든지."
포장대에 제때 도착하지 않은 책 제목과 담당자 이름이 천장 스피커를 통해 사방에 울리면 너도, 나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종종 외서도 방송을 탔는데 들려오는 책이 내가 가지고 있는 주문 목록에 있거나 관리자가 늦었다고 직접 책을 가지러 오기라도 하면 찾는 책은 더 꼭꼭 숨었다. 페이퍼 북은 책등이 얇아 글자가 잘 보이지 않고 아예 책등이 없기도 해 일일이 꺼내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글이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판에 익숙하지 않은 영어, 일어니,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책장을 뒤지는 손은 발발 떨린다. 아무리 책이 좋다지만 이때만큼은 책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졌다.
마감이 한 차례 지나고 구석에서 잠시 한숨을 돌릴 때 j가 책장 사이로 다가와 사탕과 에너지 바를 살그머니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붓기가 덜 빠져 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은 버거운 피로에 푸석거렸지만 늘 웃는 모습이었다. 삼십 대 초반인 그녀는 들고나는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5년 이상 일했다. 계약직으로 5년, 누구보다 성실하고 일을 잘해 출산 휴가 중에도 빨리 나올 수 없겠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서점이 대목이라 바쁘지만 좀 지나면 나아질 거라며 오히려 나를 토닥거리는 j에게 도와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낯선 곳에서 힘이 되어주는 고마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우리는 에너지 보충을 위해 쉬는 시간마다 커피 믹스를 꼬박꼬박 챙겨 마셨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휴게실에서 정수기 온수와 앉을 의자는 늘 모자랐다. 미지근한 물에 믹스 가루를 붓고 봉투로 살살 저은 다음 비상구 층계참에 앉아 한 모금 마시면 채 섞이지 못한 꾸덕꾸덕한 가루 뭉치가 혓바닥에 남아 각기 다른 맛을 내며 입안에 퍼졌다. 지나치게 쓴맛, 지나치게 단맛, 지나치게 고소한 맛. 지금까지 몰랐던 커피의 풍미에 j와 내가 삼켜낸 웃음이 큭큭큭 콘크리트 벽을 튕기며 계단 아래로 굴러갔다. 여기에서 노동 또한 지나친 삶의 풍미일 뿐, 나름 괜찮다고 웃어넘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책을 사랑했던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세 계절이 흘렀다. 건물 앞,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잎이 풍성해져 누군가 쉴 만한 그늘이 생겼을 무렵 나는 그곳을 떠났다. 폭주하던 주문은 조금 진정되었지만 그만큼 인력도 줄어 근무 시간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관리자들이 스피커를 통해 내지르는 호통 또한 그대로였다. j는 단유에 성공했고, 일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 더는 아이를 봐줄 수 없어서였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다른 일자리를 구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j의 부기 빠진 얼굴이 그새 나이를 먹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때가 이미 5~6년 전이다.
요즘 도서 앱을 열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라는 배송 광고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퇴근 전 배송, 잠들기 전 배송, 출근 전 배송이라며 더 똑똑하고 더 확실한 당일, 총알 배송을 표방하는 온라인 서점의 지극한 고객 서비스. 그 뒤에 있는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은 얼마나 변했을까?
취업 사이트에선 온라인 서점 물류창고의 단기 근무자를 1년 365일 상시 모집 중이다. 고용 형태는 여전히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이고 바쁜 시기에는 파트 타임으로 인력을 채운다. 연장 근무를 해야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수준과 채용 문구 또한 예전 그대로이다. 그래도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담당 용역업체를 통해 면접을 보았다. 자정까지의 근무는 근로 노동법에 제한되어 이제는 사라졌으나, 법망을 피한 초과 근무는 여전했고 주 6일 이상 출근, 주말 근무는 필수였다(고용 형태와 근무 조건은 온라인 서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휴게실 같은 근무 환경은 5년 전보다 나아진 것 없이, 공기의 질감까지 그대로였다.
간편하고 이벤트로 가득한 도서 앱 너머에서 하얀 책 먼지가 피어오른다. 딱딱히 뭉친 젖에 신음하던 j가, 움직일 때마다 파스 향이 풍기던 문학 코너의 스무 살짜리 친구가,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훑던 내가 먼지 속에서 울상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우리가 떠났어도 책은 문제없이 배송되었고, 지금은 더 빨리,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전달된다. 물류창고에 공석이란 있을 수 없기에. 일이 필요한 이들은 언제든 구인광고를 보고 그곳의 위태한 계단을 오를 테고, 남은 자들이 떠난 자들의 몫만큼 해낼 테니.
생활 물류 산업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물류를 포장하고 배달하는 이들의 근로환경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관련 근로기준법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실효 문제에 있어선 늘 논쟁이 끊이지 않고 개선점이 현장에서 근무하는 현장 근로자에게 닿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는 일하는 당사자들도 잘 알지 못한다. 관리자에게 물어봐도 우리 업장은 제외라느니, 법령 실행 시기를 미루었다느니 그런 말만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
채용 담당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몸과 영혼을 갈아 넣는 노동을 삶의 풍미로 생각하기에 이제 나는 너무 알고 말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쉬지 않고 대체되는 것이 일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코로나19로 바깥 생활이 어려운 이 시기에 대기업은 빠르고 편리한 배송 서비스로 답답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 뒤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엔 누가 응답해야 할까? 그만큼 돈을 주지 않냐는 말,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는 말로 이 서비스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주문하는 손과 포장하는 손은 다르지 않다. 받아보는 손과 배달하는 손은 분명 같은 손이다.
도서 앱에서 새로 바뀐 배송 서비스 광고를 본 대가로 챙겨 준 천 원 적립금의 유효기간이 오늘 자정까지다. 밤 10시 전에 주문하면 내일 아침 7시 안에 받을 수 있다. 나는 망설이다 주문을 미루고 핸드폰 화면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