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노트'는 <오마이뉴스>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이 쓴 기사를 소개하고, 편집기자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물 마셔도 계속 갈증 난다면... '이 질환 의심'"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 증상' 있다면 건강 적신호"
또 클릭하고 말았습니다.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 뜬, 이런 제목의 기사들 말입니다. 질병이나 건강 정보를 소개하는 흔하디 흔한 기사일 뿐이고, 막상 내용을 읽어보면 별다른 내용도 없는데 매번 클릭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자극적이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 탓도 있겠지만, 우리 안의 '불안감'도 한몫할 겁니다. '혹시 내게 자각하지 못한 질병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 마음 말입니다.
의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과거엔 의사들조차 손 쓰지 못했던 많은 질병들도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지만,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하면, 질병으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경제적 압박을 이중 삼중으로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어디 이뿐인가요. '아픈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치료 과정이나 그 이후에 한 개인의 일상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건강을 잃을까 늘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두려움은 젊은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건강 강박'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요. 지친 몸을 이끌고 운동에 미친 듯이 매진하거나, 온갖 종류의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불안을 달래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완벽하게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질병을 앓는 신체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몸'일까요. 아픈 몸을 사는 것은, 곧 불행해지는 길일까요. <오마이뉴스>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과 이 질문에 답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건강 강박증'
[관련 기사] 무릎이 나갔는데, '근손실'을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라톤을 위해 새벽마다 2시간씩 전력 질주를 하고 왔다. 그리고 6개월 뒤, 마라톤을 앞두고 무릎이 나갔다."
정누리 시민기자는 '건강 강박'이라는 주제 앞에, 지난 겨울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변에서 '중독 수준'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운동에 매진하다 결국 부상을 입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걱정한 건 자신의 몸이 아니라 '근 손실'이었습니다.
"근육이 약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 장기간 운동을 중단할 시 생기는 신체의 변화, 그 외의 부작용 등등을 찾아보고 그 결과가 안심할 만하면 안도하고, 또다시 불안한 정보를 발견하면 초조해했다. 건강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어느새 나는 그것에 잠식당해 있었다. 건강염려증 수준이었다."
정누리 시민기자는 아픈 상황에서도 휴식보다 운동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마치 "이상한 자동차"가 된 것 같다고 회상했습니다. "엔진은 모든 업그레이드를 다 하여 최고급인데, 브레이크는 나무 토막으로 하나만 달아놓"은,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더 크게 부서지는 기이한 자동차"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놓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달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누리 시민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청년들의 '건강 강박'이 사회적 압박에 기인한다는 점을 짚어냈습니다. 청년들이 단순히 예민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습득해서 건강 강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건강하지 않는 사람은 배제된다'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면서 동시에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것이지요.
한 개인의 회복엔 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관련 기사] "젊은 사람이 어찌 그런 병에..." 이런 반응, 사양합니다
이은지 시민기자는 직장에서 비슷한 또래의 동료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를 회상하며 글의 서두를 열었습니다. 이어 주변에서 들려온 가지각색의 반응을 전했는데요. 이 반응들에선 아픈 사람, 그중에서도 질병을 가진 청년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아직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어쩌면 좋니..."
"남 일 같지 않아, 건강 잃으면 아무것도 소용없어."
"이렇게 갑자기 휴직하면, 누가 대신 일 하니. 건강관리도 실력이야."
이은지 시민기자가 마주한 반응 중에는 '진심으로 아픔에 공감하며 안타까움을 전'한 사례도 있었지만, 당사자가 '젊은 나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하거나, '자기 관리를 못한 것'이라고 탓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의 설명처럼 "건강한 것은 정상, 몸이 아픈 것은 비정상으로 분류되"고, 당사자는 유독 "젊은 나이라는 이유로 더 안타까운 시선을 받아야 했"던 것이지요. 이런 반응들과 과거 자신의 수술 경험을 회상하던 이은지 시민기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건강해야 할까? 한번 건강을 잃으면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절망하는 이유는 뭘까."
이 기사에 한 독자는 '이런 뉴스는 동의가 간다'는 댓글을 써주기도 하셨는데요. 저는 이 대목을 다시 읽으며, 최근 <경향신문>에서 내놓은 '젊은 암 생존자' 기획보도가 떠올랐습니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진행해 5년 이상 생존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청년들의 사례에 집중했습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전체 암 생존자 중에서도 '비주류'(3%)에 속하는 청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항암 치료를 통해 완치를 이뤄내거나 안정적인 몸 상태를 유지해도 '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거나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빈번했고, 심리적 압박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도 많았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절망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문제들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경향신문> 취재팀은 이 같은 사례들을 종합하며 "암을 치료하는 과정뿐 아니라 암 생존자의 삶을 '암 이전의 삶'으로 돌려놓는 데도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암 이전의 삶'이란 단순히 '투병 전과 똑같은 일상'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겁니다. 질병과 함께한 시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길 테니까요. 그보다는 '투병이라는 이력이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삶', '과거에 아팠고 다시 또 아프더라도 배제되지 않는 삶'을 가능케 해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경향신문>의 보도와 이은지 시민기자의 글은 한 개인의 삶을 회복시키는 데 있어 사회의 역할과 몫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짚어주었습니다. 누군가의 투병 경험을 단순히 '개인의 불행'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독자분들과 곱씹고 싶은 이은지 시민기자의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우리는 건강을 잃으면 불행해질 거라는 생각으로 건강에 집착한다. 하지만 아픈 것은 당연하다. 아니, 아파도 괜찮다. 몸이 아프면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기대어 염려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으면 되고, 마음이 아프면 그곳을 들여다보고 치료를 받으면 된다. (중략) 언제나 완벽하게 건강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픈 몸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비정상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