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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붙는 연관 검색어를 떠올린다면 어떤 단어가 가장 어울릴까. (믿지 않는 데에도 기운이 들어가기에) 요즘 같으면 불신이라는 말도 쓰기 아까워 '무관심'과 '기대 없음'이 최상위권에 올라오지 않을까 싶은데,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넣어보니 '정치테마주'가 제일 위에 나온다. 내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일까.

어쨌든 상상력의 부재를 논하기에 앞서 정치의 부재를 살피고 따져야 할 시국이다. 전에 없던 정치를 그리거나 전혀 다른 정치를 바라기보다는, 지금의 정치에서 쓸모를 찾아 활용도를 높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물론 쓸모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실패한 건 정치가 아니다

제목과 부제가 마치 어제 처음 나온 책 같다. 제목은 <정치를 옹호함>이고, 부제는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다. 그런데 이 책, 1962년에 처음 나와 60년 동안 꾸준히 읽혔다. 정치는 그 세월 동안에도 여러 모습으로 이야기되었다.

"기존 질서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이익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적이고, "특정한 자유들과 결합돼 있고 관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이고, "여러 집단들이 공동체의 번영과 생존을 위한 공정한 기준을 확보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의식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이라 일컬어졌듯 말이다. 

이 가운데 우리 각자가 실망한 정치는 무엇이고, 여전히 기대하는 정치는 무엇일까.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어떤 주의나 조건이나 상황으로 환원하는 생각의 방식이 강고하게 자리 잡으며, 정치는 늘 실패하고 더는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다행이다. 지켜야 할, 이룰 수 있는 정치가 여전히, 충분히 살아있어서.
 
버나드 크릭 <정치를 옹호함 ?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버나드 크릭 <정치를 옹호함 ?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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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정부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는 것으로, 오래됐지만 확실한 테스트가 있다. 그곳에서 가능한 효과적인 방식으로 비판이 허용되고 있는지, 곧 반대가 허용되는지의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치란 자유롭게 행위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치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회는 분열돼 있고, 정치란 분열된 사회를 과도한 폭력 없이 통치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시도야말로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정치 따위"를 존중하는 것보다 훨씬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매우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책 <정치를 옹호함> 속에서
 
변화는 놀랍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의 모든 정치인은 변화를 내세운다. 지키는 게 특기인 보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늘 변화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넛지>로 잘 알려진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이 이번에는 책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에서 보다 큰 규모의 사회 변화에 주목했다. 법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규범 선도자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정책 설계도 흥미롭지만, 역시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게 되는지가 재미나다. 

"A가 기후 변화는 심각한 환경 문제라고 믿는다고 해보자. 반면 B는 이러한 믿음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B는 침묵을 지키거나 A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혹은 A의 생각이 훌륭한 의견이라고 인정한다. 여기서 C는 A가 기후 변화는 심각한 문제라고 믿고, B는 A의 행각에 동의한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C는 그러한 믿음에 회의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임에도 동의를 표한다." 

이런 상황은 정치에서도 숱하게 벌어진다. 물론 정치인들은 평판을 유지하려 대개 말을 더 하려다 실수를 하는데, 이들이 침묵을 지키거나 자신의 생각을 숨기며 시민 다수의 바람대로 따라오게 할 수 있다면, 무조건 반길 일은 아니겠으나 지금보다는 나은 상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캐스 R. 선스타인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캐스 R. 선스타인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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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회 운동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믿음과 가치를 주입한다. 그리고 때로 사람들의 기호는 기존 관습과 규범에 적응한다. 그럴 때 아무것도 억압받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해방될 일도 없다. 따라서 대규모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고, 일어난다고 해도 그 속도는 대단히 느리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폭포 효과는 나타날 수 있다. 여기서 우연히 발생한 상호작용과 고립된 논의, 폭포 효과를 가속화하기로 결심한 인물의 등장은 필수적이다. 이들 모두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낸다.
- 책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속에서 
 
운동은 무엇보다 꾸준히

앞서 60년 묵은 책을 소개했는데 이번엔 50년이다. <운동은 이렇게> 이야기다. 지금은 피켓과 전단이 아니라 SNS와 동영상을 활용하지만, 여전히 운동은 사람과 뜻이 바탕이고, 전략과 행동이 중심이며, 확산과 유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문제로 다룰 이슈를 정의하고, 지지층을 찾고, 리더를 세우고, 자금을 모으고, 상징과 언론을 활용하며, 결국에는 승리든 패배든 결론에 다다르는, 운동의 전 과정을 교과서처럼 정리해놓은 이 책은 50년 후에도 유효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효용은 시간뿐 아니라 여러 공간에도 이어진다.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의 현장뿐 아니라 온갖 정치가 난무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는 회사라든지, 직업 정치에 비해 소박해보이지만 그럼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치열한 관계의 정치에서도 빛을 발할 조언이 책 곳곳에 가득하다. 

"사랑을 찾아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운동 속 인간관계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배려를 읽다 보면, 운동 정말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물론 운동은 실천이 중요하다. 당장 내일 아침, 아니 오늘 밤부터 시작이다. 
 
마이클 왈저 <운동은 이렇게>?
 마이클 왈저 <운동은 이렇게>?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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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가 최선이다. 승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최선이다. 운동은 계속되는 일련의 활동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그런 활동에서 성공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이뤄낼지를 계획할 수 있다. 이런 성공은 대체로 작은 승리들, 아마도 운동 스스로의 활동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승리를 의미할 것이다. 성공적인 집회, 지난번보다 더 큰 규모의 행진, 기대했던 것보다(기대를 낮춰야 한다) 더 많은 서명, 운동에 동의를 표하고 지지를 구하는 정치인들, 이 모든 것이 승리의 징표이다. 이런 승리는 운동의 성장을 보여 주며, 운동은 실제로 이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성장한다.
- 책 <운동은 이렇게>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근 님은 온라인서점 알라딘 MD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


정치를 옹호함 -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버나드 크릭 (지은이), 이관후 (옮긴이), 후마니타스(2021)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 미투 운동부터 정책 설계까지, 세상을 바꾸는 힘에 관하여

캐스 R. 선스타인 (지은이), 박세연 (옮긴이), 열린책들(2021)


운동은 이렇게 -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마이클 왈저 (지은이), 박수형 (옮긴이), 후마니타스(2021)


태그:#참여사회, #박태근, #책추천, #운동은이렇게, #정치를옹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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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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