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7일 성년의 날을 맞아 20대 청년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송영길 대표는 간담회 축사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여러분들이 마음껏 희망을 얘기하고 앞날의 계획을 세우는 데 전념하기 힘들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 모임인 '더민초'가 20대 청년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민주당에 실망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였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원인을 분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4.7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난 뒤에 정치권은 20대 표심에 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번엔, 항상 선거 이후 수반되는 승패 원인 분석과는 그 양상이 많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20대 모두 지지를 철회하는데... 잡아야 하는 건 이남자?
민주당 내에서는 선거 패인을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일보>의 4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선거결과를 분석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임에서 한 남성 의원은 "20대 남성의 지지를 잃은 건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의원 개인 한 명의 생각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민주당은 편향적인 페미니즘 정책을 펼쳐서 선거에서 진 것'이라는 여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다른 의원들도 '이남자(20대 남성)'에게 구애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남국 의원은 2030 남성 비율이 높은 인터넷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에 가입을 해 소통을 하겠다고 했다가, 타 사이트에 "(에펨코리아에) 다들 가입해 달라"는 말을 남겨 '좌표찍기'라는 등 빈축을 샀다. 전용기 의원은 "군 가산점 재도입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개헌을 해서라도 전역 장병에 대한 보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그런데 이런 '이남자'에 대한 구애는 너무 단순한 접근이 아닐까 싶다.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를 직접 만나서도 아니고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으로부터 듣겠다는 방식도 그러하지만, 군 가산점 논의가 특히 그렇다. 이미 위헌이라고 판단받았을 뿐더러 "입법자가 채택 여부를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 이상 아니다"(2010년 여성가족부 연구용역보고서 중)라고 평가받은 군 가산점제를 또 다시 논의의 장에 끌고 오는 것은 너무 구시대적·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어떨까. 애초에 18세~29세 남성 유권자들의 72.5%가 '민주당의 페미니즘 정책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오세훈을 뽑았다는 분석은, 사안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이며 게으른 분석이다. 만약 그렇다면, 20대 여성의 국정 지지율이 정권 출범 초기인 2017년 6월엔 94%로 시작했는데 올해 1월 37%까지 꾸준히 떨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민주당 지지율 역시 20대 여성이 20대 남성의 그것보단 높았지만, 국정 지지율과 함께 꾸준히 하락해왔는데 말이다.
이 또한 20대 여성 역시 민주당의 페미니즘 행보에 등을 돌린 결과라고 봐야 하는걸까? 부질없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즉 민주당이 보고 싶은 것만 확대해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은, 20대 청년 유권자들은 남녀 모두 점진적으로 그러나 지속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둬왔다는 사실이다.
즉 청년의 삶을 제대로 대변하는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데에는 성별 무관하게 모두 공감하고 있다는 해석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따라서 '집권여당 민주당'은 청년세대 전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거 참패 후 민주당의 행보는 과연 그러했는가?
누가 갈등을 조장하나
결국 내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지점은 이것이다. '이남자'와 '이여자'를 자의적으로 구분해서 숫자로 보이는 지지율에 일희일비 하다 보면, 결국 누구를 잡고 누구를 포기할지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남자가 화가 난 게 문제다'는 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청년세대 내의 다양한 삶의 형태에 주목하면서 이들을 법적·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놓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남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반대로 여성들은 무엇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먼저 당사자들에게 성실히 청취해보고 정책적으로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정치권은 이를 둘 중 하나, 즉 양자택일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게 맞는 방향일까. 청년을 위하는 정치가 특정 집단을 위한 정치로 축소되게 되면,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젠더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당만 그런 게 아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이남자' 유권자에게 공을 들이는 한편, 안티 페미니즘에 대한 정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중이다. 이 전 최고위원 역시 "민주당이 2030세대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 참패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최근에는 국민의힘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청년·여성·호남 할당제 등을 겨냥한 듯 "실력만 있으면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정함으로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자"라며 할당제 폐지를 암시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를 두고 "게임 규칙이 실은 공정하지 못하기에 만들어진 게 할당제"라며 "(이준석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차별에 대한 인식이 없기에 뻘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할당제를 단순히 '역차별', '불공정'으로만 여기는 듯하지만, 내 눈에는 국가의 대소사를 논하는 정치조직에 국민을 대변하는 여성 정치인이 21대 국회에 19%밖에 되지 않는 현실이 더 차별적이고 불공정해 보인다.
이렇듯 '이남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역차별을 주장하고 '과도한 페미니즘' 운운한다는 점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청년을 오히려 갈라치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지우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형식적인 간담회를 열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용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당사자들이 있는 현장에도 가지 않으면서 말이다.
정치권이 나서서 '이남자'와 '이여자'를 서로 대결하게 만드는, 대립 구도로 놓는 이 상황에 20대 청년이 나는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