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3일 오후 5시 22분]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 당대표에 도전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돌풍이 심상치 않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했던 그는, 5월 28일 예비 경선에서 중진들을 제치고 1위로 통과했다. 일반국민 조사에서 1위(51%)를 기록했고, 당원 조사에서도 1위인 나경원 전 원내대표(32%)를 1%p 차이로 추격했다.
그는 자신을 '상계동 사람'으로 소개한다. 지역에 대한 애착을 꾸준히 드러냈던 그는 지금까지 노원 병 지역구에 세 차례 출마했다. 모두 낙선에 그치면서 '0선 중진'이라는 비하적 표현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30대 - 0선 - 제1야당 당수'의 탄생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이준석 돌풍'은 고령화된 한국 정치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박원석 정의당 전 의원 등 다른 당 인사들 역시 그의 약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준석은 2011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되어 정치권에 등장했다. '박근혜 키즈'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는 이 별명을 정면으로 맞받아친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탄핵 부정론, 선거조작론과도 단호히 선을 긋는다. '키보드 배틀'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인을 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부에 대한 욕망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친박, 친이, 영남 정당, 태극기 집회 등의 수식어로부터 자유롭다. 지금의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능력주의, 그리고 '이대남' 정치다.
"이대남, 자네들은 말이지"의 함의
민주당 지자체장들이 성폭력 사건으로 낙마하며 치러진 4.7 재보궐선거가 야권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18,19세 남성 포함)의 72.5%가 오세훈 현 시장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 이준석은 출구조사 결과가 담긴 사진을 공유하면서 "20대 남자, 자네들은 말이지..."라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20대 여성의 절반 이상이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같은 당 태영호 의원(초선)이 "왜 이대녀의 지지를 받지 못 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자세를 낮춘 것과 대조적이었다.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 이준석 전 최고위원
이준석은 선거 유세 과정에서 부동산 문제와 공정성, 정부 여당의 무능 등을 줄곧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을 승리 요인으로 꼽았다. 이준석은 중앙 정치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조직화한 첫 번째 인물이다. 그가 공략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이준석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잘못된 페미니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 할당제'는 그의 주된 공격 대상이다.
그는 추미애, 김현미, 강경화, 유은혜 장관 등을 여성 할당제에 따라 임명한 것을 실정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내각 할당제가 법제화된 적은 없으며, 여성 장관 비율이 목표치였던 30% 이상을 차지했던 기간 역시 짧다. 2021년 5월 기준, 18개 부처 장관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2%에 그친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여성 정책에 매몰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충분히 지키지도 못했다. 인사 문제를 장관의 성별과 연결짓는 주장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평등에 대한 방법론은 무엇이든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차별적 구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지난 5월 7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기회 평등이 침해받는 이슈가 있다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다만 특정이 가능한 이슈여야 한다. 2030 여성들이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 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큰 반향을 이끌었을 때, 이준석은 '어떤 사람이 겪을 수 있는 피해의 합집합으로 이루어졌다',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9년 바른미래당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단체 관람을 논의했을 때도 '정치적 자해'를 운운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을 흘린 사람 중에는 이준석이 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85년생 이준석'은 여성들이 확인한 보편성을 두고 쉽게 '피해의식'이라 규정할 뿐이다. 그의 사고에서는 계량화되지 않는 영역이 배제된다. 은근한 여성혐오(misogyny), 문화적-미시적 영역에 존재하는 차별이 파고들 틈은 없다. '여성의 기회 평등이 침해받는 이슈'였던 금융권 채용 성차별 등에 대한 그의 목소리도 알려진 바 없다. 21대 국회에서의 여성 의원 비율이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으나, 여전히 20%를 밑도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별'과 '피해망상' 사이에서
한 청년 단체가 성평등, 기후 위기, 자살 문제 등에 대한 질의서를 주요 후보들에게 발송했을 때, 당시 오세훈 캠프 소속 뉴미디어본부장이었던 이준석은 응답을 거절했다. 그리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전, 자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 남녀구분이 필요한 게 뭡니까.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 강요하지 마십시오"라는 입장을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 남녀 구분이 왜 필요하냐'라는 질문은 현상을 왜곡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성별 비율은 여성이 93.3%, 남성이 6.7%로 나타났다. 사진 합성과 공공장소 불법 촬영 피해의 경우 모두 여성 관련 피해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차별적 구조'의 사례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이해를 거부하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이 하지 못 하는 발화로 지지를 받았다. 무슬림과 이민자를 악마화했고, 차별적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구호는 러스트 벨트(rust belt : 쇠퇴한 공업 지대)의 노동 계급을 관통했다. 물론 이준석은 트럼프와 달리 표면적으로 여성을 비하한 적이 없다. 그러나 차별의 성립을 부정하고, 피아 식별에 충실한 그의 발화는 방법론 측면에서 트럼프와 닮았다.
그건 정치의 역할이 아니다
금태섭 전 의원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퀴어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준석은 '영업하는 데에 있어 고객 분석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에게 있어 질문의 내용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다. '영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성원을 포괄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청년의 생애 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에 따르면, 15세부터 39세까지의 여성 중 약 75%가 '한국사회는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인식했고, 남성 중 18.6%만이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인식했다. 이 인식의 괴리를 단순히 피해 망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 아니다.
군인 처우 개선 등 20대 남성의 인권을 챙기면서, 20대 여성의 호소를 듣는 것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는 일이다.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테두리는 매우 협애하다. 이준석의 정치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일까.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능력주의 체제의 패배자가 설 자리는 있는가. 젊은 권력의 탄생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정치는 트럼프 식의 피아 식별과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