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전면에 흐르는 맥락은 '민족혼'이다.
오늘의 관점으로는 다소 국수주의적이라 할 지 모르지만, 당시는 나라를 빼앗긴 채 타국을 유랑하면서 광복운동을 지도하는 독립운동가로서,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이 가장 절박했던 시절이다. 다시 발췌한다.
신지식을 안다고 하는 학자들도 고적을 말하라고 하면 마니산의 제천단은 모르면서도 이집트의 금자탑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며 정평구(鄭平九, 임진왜란 때의 발명가)가 처음 만들어 낸 비행기는 몰라도 멍불이 발명한 기구(氣球)는 과장하여 말하고, 인쇄활자는 반드시 독일과 네덜란드만 들먹였지 그보다 수백 년이나 앞서서 만들어진 신라ㆍ고려는 이야기할 줄 모른다.
문장을 배우고 글귀를 따는 데 있어서도 이태백이나 두보만 숭상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학술문학은 배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위인의 명언이나 훌륭한 행동을 말하라 하면 워싱턴이나 넬슨만 알았지 우리나라의 훌륭한 철학자나 뛰어난 인물들은 말할 것 없다고 하였다. 나도 이태백이나 두보의 문장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동포들이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것만 좇음은 원치 않는 것이다. 어찌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스스로 얕잡아 보는 근성과, 책은 들추면서도 조상을 잊어버리는 기풍이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우리들의 어리석고 깨우치지 못함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심한 것일까? 5천 년 역사 속에 우리들은 여기서 나고, 자라고, 먹고, 입고, 버젓한 나라를 세워 다른 나라와 어깨를 겨누며 살아왔다. 만약 예의도 교육도, 덕망 있는 인물도 없었다면 어찌 그렇게 오래도록 나라를 빛내며 이어 올 수 있었겠는가. 어쩌자고 오직 타국에서 대신 기록해 준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일을 까마득히 모르는가. 잊어버림도 너무나 지나친 것이다.
제 나라의 역사조차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이대로 흐리멍덩하게 지나게 된다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얼마 안되는 기록들과 다른 사람이 써놓은 짤막한 문구들도, 오늘날 보배롭게 여기는 것들까지도 장차는 아주 남김없이 잊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고 보면 단군의 자손이니 부여민족이니 하는 것은 겨우 망국이라는 하나의 명사로 다른 나라의 역사에 남겨지게 될 뿐이요,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대한' 이라는 두 글자의 자취는 영영 사라져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아아, 천지신명의 자손들도 다함께 생(生)을 타서 났고, 기(氣)를 품고 있으면서 그토록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렸으니 뉘우쳐도 쓸데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주 멸망해 없어지는 것을 달갑게 여겨야 할 것이냐. 금협산인(錦頰山人) 신채호는 하동의 썩은 뼈를 꾸짖으면서 대동사(大東史)를 썼고 곡교소년(曲橋少年) 최남선은 서산에 지는 해를 탄식하면서 광문회를 만들고 홍암나자(弘巖羅子) 나철은 대종교리(大倧敎理)를 밝혔고 주시경 씨는 조국의 말과 글을 갈고 닦으며 연구하였다.
우리의 나아갈 길은 외롭지 않아 그런 기쁘고 다행한 일이 있으니 오직 바라는 것은 그것을 이어받을 사람이 일어나서 서로 찾고 호응하여 준다면 이것으로 나라가 망함을 뉘우치는 한 줄기 상징이 되어 장차 죽어가려는 인심을 되찾을 수 있으며 나라의 혼이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아아! 동포여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노예 아래서 노예가 되고 옥 속의 옥에 갇혔어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어리석고 게으르고 거칠고 뿔뿔이 흩어진다면 그 죄값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뿐만 아니라 눈깜짝할 사이에 종족이 멸절되는 화를 입을 것이다.(최남선이 변절하기 전에 쓴 글이다 ㅡ 저자)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