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채용비리, 사모펀드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이 최대 4번이나 연임에 성공하면서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법안 발의가 예고됐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선 이를 두고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과도한 개입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봤습니다.
해당 논란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 발의를 예고한 뒤 불거졌습니다.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1회로 제한하면서 총 임기는 6년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또 이 법안에는 금융지주 회장의 계열 금융회사 임원의 겸직 금지 조항도 조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길 전망입니다. 현재는 '이해 상충 또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저해 우려가 적은 경우' 등 겸직 금지에 관한 예외 사항이 너무 폭넓게 규정돼있는데 금융지주 회장이 계열사 사장 등의 업무를 함께 수행하려면 보다 더 깐깐한 기준을 통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행법을 보면, 상법에서는 지주회사 회장의 임기를 3년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임 횟수와 관련한 특별한 제한 사항은 없습니다. 통상 회장 선임은 이사회 의결로 결정되는데, 정관을 통해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도록 정할 수도 있습니다.
허술한 지배구조, 대형 금융사고에도 계속되는 연임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형식적으로는 회장추천위원회 내에 상근임원이 참여하지 못하는 등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내부 견제가 가능한 것처럼) 완벽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금융지주사 이사회가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하는 등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 머물러 있다"라며 "회장 권력에 이사회가 포섭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연임 중이며,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역시 2014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들의 재임 기간은 채용 비리, 사모펀드 사태 시기와 맞물려있습니다. 500여 건의 부정채용이 발생한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의 경우 지난 2017년 국회 국정감사를 계기로 금융감독원 조사 등이 이뤄지면서 현재에도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약 6조3000억원의 부실을 불러온 사모펀드 사태 역시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후 현재까지 감독당국의 조사, 검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적자금 수혈받은 금융사.... "문제 있다면 규제해야"
그런데도 일부에선 박 의원의 법안을 두고 '관치·정치금융',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행위', '경영 자율성을 해치는 법안',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박용진 의원실 쪽은 금융산업을 일반 제조업 등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삼성·LG 등 제조업은 완전경쟁시장에 가깝지만, 금융산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므로 달리 봐야 한다"며 "누구나 은행업을 하고 싶다고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 사기업과 다르게 인가를 통해 영업 중인 소수의 금융지주사들이 일종의 특혜를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무와 공적 의무도 함께 요구된다"며 "금융지주사들이 공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사내 지배구조상 문제가 있다면 규제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해외 금융회사들과 달리 우리나라 금융사들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이 굉장히 많이 투입된 것도 사실"이라며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은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사회 참호효과로 부작용 지속... 연임 제한 필요"
또 해당 법안이 통과하더라도 현재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곧바로 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의원실 쪽 설명입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연임한 회장들의 임기를 갑자기 중단시키는 내용이 아니라 앞으로는 과도하게 연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도 해당 법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상훈 변호사(서울시복지재단 공익법센터장)는 "그동안 한번 금융지주 회장이 되면 이사회 등을 자기 세력으로 만들어 참호를 구축해 계속해서 본인의 지위를 유지하는 부작용이 계속해서 나타났다"며 "연임 제한의 사회적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금융산업의 경우 본질적으로 계열사 사이에도 장벽을 두고 서로 감시·견제할 필요가 있어 임원의 겸직제한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데, 예외 조항을 폭넓게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겸직제한을 강화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의 돈을 굴려 이익을 내는 금융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적절히 규제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너무나 큰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금융산업에 자율경쟁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현재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