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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며 아시아계 증오 범죄 규탄 시위를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며 아시아계 증오 범죄 규탄 시위를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 AP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 아래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의 총격으로 한인 4명을 포함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과 며칠 전인 5월 31일에는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한 식당 앞을 지나던 아시아계 여성을 흑인 남성이 주먹으로 때려 실신시키는 사고가 발생했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 증오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아시아계 미국인 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10월까지 뉴욕경찰에 신고 된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증오범죄가 전년도에 비해 8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누가 백인인가
 
 영화 <똑바로 살아라> 포스터
영화 <똑바로 살아라> 포스터 ⓒ 똑바로 살아라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똑바로 살아라>(원제 Do the Right Thing)는 1989년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1년 전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나 최근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증오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 브루클린의 어느 마을은 아프리칸 아메리칸(흑인), 히스패닉, 유대인, 슈퍼마켓을 하는 한국인 등 '소수' 인종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피자가게를 하는 이탈리아계 쌜과 그의 두 아들 비토와 피노는 백인이기는 하나 이탈리아 이주민으로 앵글로 색슨계 백인이 아닌 '소수 백인'이다. 소수 백인이라는 말이 다소 낯선 분들이라면, 진구섭이 쓴 책 <누가 백인인가?>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미국에서 '원조' 백인인 앵글로 색슨계 백인에 이어 독일, 아일랜드를 포함한 북유럽계 백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동부 유럽 이민자와 유대인들이 순차적으로 '백인'의 반열에 포함되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이들 소수 인종들은 서로에 대해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운 편견, 욕설 등으로 서로를 비하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흑인이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유럽 놈, 마늘 냄새 풍기고, 피자나 돌리고 스파게티 휘젓는 망할 놈, 엿 먹을 놈"이라고 내뱉으면, 이에 맞서 이탈리아 피자가게 주인의 아들은 "너, 누런 황금 이빨. 가짜 금목걸이. 비스킷 먹는 원숭이, 고릴라, 더러운 쓰레기, 360도 덩크슛만 하는 깜둥이, 엿 먹을 놈들, 덥고 깜둥이들 득시글대는 아프리카로 꺼져버려"라고 되받는다.

히스패닉계 청년은 한국인들을 향해 "실눈이나 해가지고 '나. 여, 영어 모~못해', 뉴욕 과일가게 다 해먹어라 새끼들아, 문선명이나 믿는 놈들. 88 서울올림픽. 킥복싱, 빌어먹을 한국 놈들"이라는 욕설을 퍼붓는다. 태권도를 킥복싱으로 표현하고, 영어를 잘 못하면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것이다. 한국인 슈퍼마켓 주인은 "역겨운 거나 마시고 베이글빵이나 먹는 짠돌이 유태인 새끼들"이라며 유태인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것은 '차별이 차별을 낳는다'는 명제다. 노예제 폐지 후에도 지속적으로 차별받아 온 흑인들, 숫자로는 흑인보다 많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와 빈곤 때문에 차별받는 히스패닉 이주민들, 소매상 등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의 상권을 장악하지만 용모나 관습 등을 이유로 따돌림 받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받는 차별에 대한 저항 심리나 상대적 우월감에 기대어 다른 '소수' 인종들에 대해 반감을 차별의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다.

위와 같은 갈등은 결국 이탈리아 피자집 주인 쌜과 흑인 청년 라디오 라힘 사이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출동한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라디오 라힘이 경찰봉에 목이 눌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1년 전, 미네소타 주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면서 무릎으로 목을 눌러 질식사하게 한 사건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나 백인 아냐. 나 흑인, 너, 나 같아"
 
 2020년 6월 10일, 미국 필라델피아 한 도로 위에 시민들이 '이제 인종차별 끝장내자'는 구호와 함께 에밋 틸ㆍ조지 플로이드 등 인종차별 희생자들의 이름을 적고 그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고있다.
2020년 6월 10일, 미국 필라델피아 한 도로 위에 시민들이 '이제 인종차별 끝장내자'는 구호와 함께 에밋 틸ㆍ조지 플로이드 등 인종차별 희생자들의 이름을 적고 그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고있다. ⓒ 필라델피아 AP/연합뉴스
 
문제는 위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경찰은 이 마을의 잠재적 인종 갈등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소수 인종들 사이의 갈등을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쓰지 않다가 폭동이나 분쟁이 발생한 후에야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피자가게가 불타고 흑인들이 한인 슈퍼마켓을 공격하려는 순간, 한국인 주인은 흑인들에게 "나 백인 아냐. 나 흑인, 너, 나 같아"라는 말을 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 임기응변이기는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백인들에게 차별받는 '유색' 인종이라는 점에서는 "같다"는 것을 암시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영화 개봉 3년 후에 발생한 1992년 'LA 흑인 폭동'에서는 한인 상점들이 흑인들의 약탈로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당시 미국 사회는 한인들이 입은 피해를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오래된 반감", "한인들과 흑인들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한인 상점들이 공격받는 것을 보면서도 사실상 방관한 LA 경찰의 소극적 대응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한다. 소수 인종들 사이의 '차별'과 '갈등'이 백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선택적 개입을 통해 관리하면 충분하다는 미국 사회의 속내는 영화와 현실 모두에서 드러난다.
 
차별이 차별을 낳다
 

코로나의 팬데믹은 차별과 증오범죄의 팬데믹을 낳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차별과 증오범죄의 가해자 중 상당수가 오래된 차별의 희생자인 소수 인종들이라는 점이다. '차별'이 '차별'을 낳고 있는 셈이다. 영화 <똑 바로 살아라>가 보여준 소수 인종들 사이의 차별과 혐오는 최근 빈발하는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증오범죄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차별은 차별을 낳는다. 차별의 해악(害惡) 중 가장 큰 해악이 바로 이것이다. 요즘 진행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0만 행동'에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코로나의 팬데믹을 가라앉히는 백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차별의 감염과 전파를 사전에 차단하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사회적 백신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바로가기 https://bit.ly/equality100000 )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대전충남인권연대 필진 좌세준 변호사입니다.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똑바로 살아라#대전충남인권연대 #인종차별#차별금지법#차별금지법 제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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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인권연대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기본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1948.12.10)의 정신에 따라 대전충남지역의 인권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권상담과 교육,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 피해자 구제활동 등을 펼치는 인권운동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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