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종종 내게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볼 때 나는 짧게 청소년 활동을 돕는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은 나를 잠시 멍하게 쳐다봤다. 그때 나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청소년활동가예요. 청소년지도사 2급과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고요."
나는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 청소년자치연구소에서 7년째 활동하고 있다. 연구소는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 달그락'을 운영하며, 내가 소속된 이 곳은 비영리 단체다.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지 않고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후원자들이 꾸준히 감소했다. 연구소 소장님과 실무자들은 모여서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단기적 모금을 위한 모임을 조직하고, 각자 모금의 명분을 써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포털에 '명분(名分)'을 쓰고 검색했다. 일을 하기 위해 겉으로 제시하는 이유나 구실이라는 뜻이었다. 이를 적용해 청소년 활동 모금의 명분을 '청소년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제시하는 이유나 구실'로 정의 내렸고, 나만의 명분을 정리했다. 청소년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참여와 자치하는 삶을 돕기 위해 청소년 활동 전문가인 오성우를 지원해달라는 게 요체였다.
첫 번째 모금 활동 모임에서 모금 전문가인 이용수 대표는 명분의 내용이 다소 추상적이고 큰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조금 더 세부적이고 실제적인 오성우만의 이야기와 명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명분의 내용이 완벽하게 정리되지는 않은 채, 일단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직접 부딪혀 보면서 보완해 나갈 요량이었다. 먼저 친한 친구들이나 최근에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에게 전화나 문자를 했고, 직접 만남을 갖기도 했다.
"교수님. 일전에 후원하다가 중단하셨던데, 청소년들의 활동 지원을 위해 후원 재신청이 가능할까요?"
"OO아. 네가 청소년기 시절 때 청소년 동아리, 참여 활동하면서 진로도 찾고 자치할 수 있었잖아. 지역 청소년들이 꿈을 위해 후원해줄 수 있겠니?"
어떤 이들은 이런 요청에 대해 즉시 승낙을 해주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해보고 연락을 주겠다 했다. 답변이 없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모금 관련 활동을 한지 약 일주일 정도가 흘렀을까!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내가 처음 청소년 활동을 시작했던 2007년이 떠올랐다.
2월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지역 청소년 수련 시설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청소년과 동아리들을 만났다. 참여, 진로, 인권, 리더십 등을 주제로 함께 활동을 진행했다. 당시 청소년들은 각자의 동아리방에서 활동을 하다가도 청소년활동가들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와 진로나 삶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냈다.
"선생님. 제가요. 청소년 활동하면서 진짜 꿈을 찾은 거 같아요."
부모님의 의견대로 OO이는 의료분야의 일을, ㅁㅁ이는 교사라는 직업을 준비하며 공부하고 있었지만, 활동을 하면서 OO이는 뮤지컬 배우가, ㅁㅁ이는 누군가를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마치 백만 볼트의 전기를 맞은 것처럼 내 몸에는 전율이 흘렀다. 활동의 본질과 이유를 찾은 순간이었다. 원래 꿈은 학교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날 이후 바뀌었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고.
최근 일부 단체들은 모금을 위해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사진이나 영상으로 홍보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과정들을 '빈곤 포르노'라는 개념으로 비판했다. 나 역시 한 인격체를 단순히 불쌍한 사람으로 전락시켜버리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금 활동이나 후원 요청에 대한 '진짜' 명분을 발견했다. 청소년들의 꿈을 찾아주기 위한 활동 공간이나 청소년 자치 활동 전문가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후원 요청 시 상대방에게 미안함보다는 내 활동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커졌다.
'진짜'를 발견한 나에게 모금의 크기나 후원자의 증가보다는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면서 청소년 활동과 활동가 지원을 위한 동참을 말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희망의 씨앗을 뿌리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