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담다'의 사무실 겸 공방은 안계파출소에서 의성 이웃사촌 지원센터로 가는 길 왼쪽에 있었다. 점심시간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오후 3시쯤에야 사무실을 지키는 스물일곱 동갑내기 최성신, 김민재씨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의성군에서 연 귀촌 프로그램 '도시 청년 의성 살아보기' 제1기 동기생이다.
대구 출신 동갑내기 '의성 살아보기'에서 만나 창업
같은 대구 출신이지만 두 사람을 공동 창업자로 이어준 것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였다. 경영학과를 나와 취업을 준비하던 민재씨나 코이카 국제봉사단으로 지난해 4월 인도네시아로 출국 예정이었던 성신씨를 의성으로 당긴 것은 SNS에 뜬 '청춘구 행복동' 모집 공고였기 때문이다.
민재씨는 그 당시가 '취업하려다가 계속되는 탈락에 자존감이 떨어지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지원 서류를 넣을 때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생기던 차, SNS에 뜬 청춘구 행복동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자, "아, 이거다" 싶었단다. 출국이 연기되자 취업을 준비해야 하나, 망설이던 성신씨도 마찬가지였다.
'청춘구 행복동'은 의성군의 용역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도시 청년들의 공동체 마을'이다. 안계면에 있는 이 마을은 "시골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행복동 소개)이다. 이 마을은 현재 3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도시 청년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숙소이기도 하다.
2020년에 10주 동안 운영된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이수한 1기생 15명 가운데 두 사람을 포함하여 9명이 의성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6주 연수 후 정착을 결정했다. 그 후 4주간 함께한 프로젝트 아이템인 수제비누로 창업을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 담다'가 선보이는 건 수제비누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 문화, 예술을 접목하여 다양한 아트워크와 생활 속 오브제"를 보여주려고 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 의성 정착을 결정하다
도시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시골에서 정착하는 건 잠시 살아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두 사람이 한 달 반 만에 그런 결심을 굳힌 건, 미래에 대한 전망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다.
"올 때는 잠깐 힐링하면서 나를 찾고, 다시 돌아가 취업 준비에 집중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직접 살아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어요. 일단 사람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같이'의 가치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같이 살아갈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여기서도 충분한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요." (김민재)
"살아보니 환경도 사람도 너무 좋았어요. 도시에서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살아왔는데 여기서는 배경 없이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매일 같이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큰 위로를 얻었죠. 이런 곳이라면 살아도 괜찮겠다고 느꼈습니다." (최성신)
부모님이나 가족도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민재씨는 계획을 말씀드리자 두말없이 지지해주신 부모님에 대한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성신씨도 늘 부모님이 원하는 딸로 살아가려 노력하던 자신이 처음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고 자신 있게 얘기해서인지, 의외의 지지와 응원을 받아 놀랐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가게를 열고 숨 가쁘게 달려온 딱 반년, 그 소감과 현재 사업 상황을 물었다. 민재씨는 "사업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로 그 말을 체감하고 있다"며 "부족한 점이 많아 이것저것 컨설팅도 듣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그 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성신씨는 "문을 열기 전부터 주목받아와서 감사하면서도 부담감이 커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이제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 걸음마 단계지요. 이룬 것은 30~40%쯤으로 아직 가야 할 길을 멀다고 봅니다. 일단 의성 지역에서는 '프로젝트 담다'를 아시는 분, 관심을 두는 분들이 느는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만드는 상품 홍보는 입소문이 먼저여야 하는데 이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힘을 내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담다는 경북 청년마을 일자리 뉴딜 지원 사업으로 선정(2020년 7월)된 이래 의성군청 비누 납품(20.12), 마을 자서전 제작(21.01), 안계면사무소 쇼핑백 납품(21.05)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두 사람은 자신의 상품에 "지역과 감성, 그리고 가치"를 담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비누와 아트워크 상품 제작에 디자인과 색감이 중요한데, 이 부분은 한국화와 미술교육을 전공한 성신씨의 몫이 크다고 한다. 지금 판매 중인 엽서나 스티커, 포스터 같은 것들은 성신씨의 작품이다.
담다는 수제비누 홍보를 위해 원데이 클래스(하루 몇 시간 동안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수업)를 운영하며, 기관 단체의 요청에 따라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의성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에 출강했다.
수제비누가 한물간 아이템? "전혀 아니다!"
청년 창업 업체 가운데 식당과는 달리 담다의 '수제비누' 이야기를 듣고 퍼뜩 든 생각은 '수제비누가 한물간 아이템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내 사고는 한동안 수제비누 만들기가 유행했던 90년대 중반쯤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다. 담다의 두 청년들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이에 관한 질문을 던졌더니, 이내 답이 왔다.
"코로나19로 위생이 강조되면서 천연 성분으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고, 높은 항바이러스 효과로 인해 고체 비누가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또 전 세계적으로 환경보호가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추세의 영향도 있습니다. (중략)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이 환경보호를 위해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한 제품 구매 등 자신들의 소비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지요. 그중에서도 국내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M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의식이 뚜렷하며 친환경 제품을 따져 소비를 결정합니다. '한물간 아이템'은 전혀 아니지요."
그러나 가능성과 현실은 다르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답에 꽤 고민한 흔적이 드러났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며, 끊임없는 상품 연구 개발·출시, 고객 피드백의 과정을 반복해 고객들의 미묘한 부분을 알아채서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농촌만의 매력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는 제품 등을 기획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은 당장 넘치는 주문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어도, 가게 임대료 내고, 두 사람이 생활하는 데 지장 없을 만큼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안계면사무소 뒤쪽에 의성군이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조성한 모듈러 주택에 각각 입주하여 살고 있다.
회의에 빠질 때는 없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민재씨는 "솔직히 몇 번이나 다시 도시로 돌아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로 돌아가도 제 고민은 크게 바뀔 게 없다고 판단했다. 후회 없이 도전하고 싶다"라고 했고, 성신씨도 "도시였다면 수월했을 부분들이 어렵게 느껴질 땐"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주체적인 삶 살아본 적이 없었다"
도시 젊은이들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시골에서 낯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업의 성패를 떠나 그곳에 적응하고,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적잖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것이다. 우리는 무심히 그들의 삶을 흘낏 보고 말지만,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살아 있는 날들이다.
어쨌든 지금 '자기실현'의 삶을 살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성신씨의 답변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다. 이들에게 '창업과 도전의 여정'은 단순히 사업의 성패가 달린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최전선에 내던져진 도시 청년들에겐 그 과정이 '자기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주체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보통 남들이 하는 것들, 사회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 나를 맞춰 살아왔는데 여기선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고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