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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선거기간동안 임시현수막을 단 선거사무실 앞 최지선 후보
예비선거기간동안 임시현수막을 단 선거사무실 앞 최지선 후보 ⓒ 최지선

"출마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여성으로서 지선님의 출마가 힘이 됐어요."


선거가 끝나고 '낙선 인사' 중에 유권자에게 들은 말이다. 내 출마가 누군가에게 힘이 됐다니, 기분은 좋았지만 조금 의아했다. 나는 당선되지 못했는데, '출마' 자체가 힘이 됐다니?

몇 주 후에 또 다른 얘기를 듣고서야 의문이 해소됐다. "이런 얘기 조금 진부하지만, 30대 여성이 정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어요." 스포츠로 치자면, 국제대회에서 출전권도 따내지 못하고 만년 탈락하던 비인기 종목의 국가대표팀이 우여곡절 끝에 국제대회 출전권을 따내고, 메달은 못 땄을지라도 경기를 성실히 치르는 것을 봤을 때.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느껴지는 마음과 비슷하겠구나.

'나와 닮은 후보'는 왜 보기 힘들까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송파구의원 선거)에서 나는 만 31살 여성에 소수정당 후보였다. '아이들과 청소년이 행복한 잠실'을 만들고 싶다며 '비주류'인 환경 공약을 들고나왔다. 평균 재산 수십억 원에 평균 나이 50대 남성, 또 2개 정당 출신이 90%를 차지하는 국회를 봐도, '30대 여성 소수정당 후보자'라는 정체성만이라도 어느정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평소에 '내 모습과 닮은' 당선자는 둘째치고, 후보조차 잘 접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돈'님이 될 수 있겠다.

내가 출마할 때 가장 큰 장벽이 됐던 건 단연코 돈이었다. 기초의원 후보 등록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야 하는 기탁금만 해도 200만 원에, 공보물과 벽보 인쇄비, 사무실 임차료, 선거운동비용 등 대략 계산해봐도 1000만 원은 훌쩍 넘어가는 비용인데, 내 통장에는 그 돈이 없었다. 득표율 15%가 넘는 후보에겐 '선거비용'을 세금으로 돌려주는 '선거비용 보전제도'가 존재하지만, 나같은 소수정당 후보는 15% 득표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돈 문제'는 거대정당의 청년 후보자도 피해갈 수 없는데, 사후에 선거비용을 돌려받게 되더라도 선거기간 동안 사용할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초의원이라도 선거에 한 번 나오면 수천만 원은 쓰게 되는데, 이는 경제활동 기간이 짧은 청년들이 부담하기엔 너무 큰 돈이다. 후보등록 기탁금 200만 원만 해도 최저임금 한 달 월급을 초과한다. 

이에 대해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는데, 2018년 전주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서난이 현 전주시의원이다. 그는 출마 당시 선거자금 4000만 원을 펀드 형식으로 모금해 선거 후 0.3%의 이율을 보태서 투자자들에게 반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이는 15% 득표가 거의 확실시되는 거대정당 후보여서 가능한 방식이었지만, 기초의원 선거자금을 펀드형식으로 해소한 기지가 돋보였다. 

다행히 지난해 선거법이 개정돼 올해부터는 기초의원 후보자도 후원회를 만들 수 있게 됐고, 나는 후원금을 모아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기탁금 200만 원을 포함해 약 1500만 원이 들었는데, 이것도 수많은 선거운동원 분들이 무보수로 자원봉사 해주시고, 갑작스레 정해진 보궐선거라 예비후보 기간 90일을 다 채우지 못한 덕분에 가능한 예산이었다.
 
 최지선 후원회 포스터
최지선 후원회 포스터 ⓒ 최지선
 
돈과 관련해 개선이 필요한 또 하나는 선거비용 보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선거법에 의하면, 15% 이상 득표한 후보는 '선거비용'을 100% 세금으로 돌려받는다. 물론 돌려받는 한도와 선거에 사용된 비용 중 '선거비용'에 포함되는 항목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기탁금을 제외한 유권자가 직접 접할 수 있는 선거의 거의 모든 것(공보물·홍보물 인쇄비, 사무실 운영비, 운동원 인건비 및 유세차 포함 선거운동비용 등)이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이 제도를 통해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26억 원을, 박영선 후보는 28억 원의 선거비용을 돌려받았다고 한다.

한편, 10% 이상 득표한 후보들은 '선거비용'의 50%를 보전받을 수 있고, 이마저도 득표하지 못한 후보들은 선거비용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15% 득표를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후보들은 돈을 펑펑 쓰며 선거를 치를 수 있지만, 이외 다른 후보들은 보전 여부를 알 수 없는 돈을 아껴가며 선거를 치러야 하는 구조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출전권'만이라도

선거비용을 세금으로 돌려주는 것은 '선거공영제'에 기반하는데, 선거공영제는 "선거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가가 부담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을 기함과 동시에 자력(경제력)이 없는 유능한 후보자의 당선을 보장"하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공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금전적으로 공정한 선거가 가능할까? 차라리 모든 공보물과 벽보 인쇄비용을 선관위가 부담한다면 어떨까? 물론 현재 1·2당 후보들에게 보전하는 공보물 예산보다 더 적은 예산 안에서 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보물 최대 장 수인 8페이지를 꽉 채웠던 1·2당 후보들의 공보물 장 수는 줄어들 것이고, 비용절감을 위해 손바닥만한 공보물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던 소수정당 후보자들의 공보물 퀄리티는 올라갈 것이다.

또는 선거비용을 임의적인 득표율 15%, 10% 기준으로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보전해주기보다는 득표율에 비례해서 보전해주면 어떨까? 또는 차라리 미국처럼, 후보자들의 '선거비용'에 세금을 지출하기보단 모든 '선거비용'을 후원금으로만 충당하게 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겠다. 

직접 겪어보니 너무나 냉정한 돈의 현실이었다. 지난해에 개정된 후원회 제도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지난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최소한의 선거 출전권이라도 얻을 수 있으려면 돈과 관련된 선거법 개정이 절실하다.

#선거법#기탁금#선거비용보전#선거공영제#정치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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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파에서 시민 개개인이 주인이 되어 함께 잘사는 사회를 궁리하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ditto.2020 페이스북@jeeseu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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