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군사반란으로 멈췄던 지방자치가 30여 년 만에 부활되어 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을 주체화하기 시작했다. 경기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시민원탁회의, 좋은시정위원회, 시민행복위원회, 100인 위원회 등 시민을 주체화하는데 많은 정성을 기울이며 그 활기의 중심에 섰다.
특히, 군포시의 100인 위원회는 시민을 주체화하여 단순 참여에 멈추지 않고, 시민의 주장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합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지방자치제도가 사라져 버렸던 독재정권 시기에는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정치와 민감 현안에 대하여 시민들에게 침묵을 강요하였다. 시민들은 권력의 주체였으나 무장한 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고, 주권자의 권리는 커녕 시민들은 입을 닫고, 행정가들은 귀를 닫는 등 '주권재민'은 요원해져 갔다.
1987년 6월항쟁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국민은 가슴 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30여 년동안 강압적 환경 속에서 주눅 들었던 시민들은 토론과 합의의 문화보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의제는 난무했으며 소통과 합의는 어려웠다.
'시민과의 소통'을 공약화한 한대희 군포시장은 학창시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제적당했다. 이후 노동운동, 정당운동의 현장에서 '시민의 소리가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라는 신념을 다진다. 이러한 한 시장의 정치철학은 '시민우선 사람중심 군포'라는 시정 목표로 형상화되었다.
한대희 시장은 민선7기에 들어서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장치 정착을 위한 활동을 대폭 지원한다"며 시민에 손을 내밀었다.
군포시의 100인 위원회는 '시민과 소통하면 통한다'는 한 시장의 정치철학을 반영함과 동시에 '민과 관이 만나 토론하는 열린 공간 그 자체'이다.
2018년 군포시는 민관협치 준비모임을 구성하고, 더딘 합의 과정을 지속해 나갔다. 조례 제정까지 1여 년, 민관 모두 일방통행 없이 서로가 납득하고 합의될 때까지 기다리며 소통하였다.
2019년 7월 법제화된 '군포시 협치 활성화를 위한 100인 위원회 구성 및 운영 조례'에는 "사회구성원이 함께 올바른 소통과 참여, 합의 과정을 통하여 대안을 결정함으로써 결정 권한을 공유하고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의사 결정 단계부터 집행 단계까지의 전 과정에 시민의 참여한다"고 명시되었다.
조례를 바탕으로 출범한 100인 위원회는 공론화, 당사자, 시정 참여의 3개 분과로 구성되었고, 분과별로 소위원회는 시민의 뜻에 따라 필요시마다 개편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100인 위원회 이채영씨는 "협치는 한마디로 근육이라고 생각한다. 근육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반복할 때 생긴다. 민과 행정이 꾸준히 협력하고 마음이 오갈 때 신뢰를 통한 협치 근육이 단단해질 것"이라며 협치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 정책에 반영한다는 당사자 소위원회의 활약도 눈길을 끈다. 청소년 위원들이 군포시의 모든 청소년 당사자와 의기투합해 추진한 '청소년 전설프로젝트'는 2019년 12월부터 1여 년간 진행된 사업으로 2차례의 주관식, 객관식 설문조사와 3차례의 심화 토론을 통해서 8가지 의제를 도출하였다.
군포시에 거주하는 청소년 전체가 설문에 참여한다는 사업명 '전설'에 걸맞게 이 사업에 참여한 청소년은 4850명에 이른다. 대면과 비대면 회의로 분산과 집중을 꾀하였고, 도출된 의제들은 관련 부서에서의 법률 검토 과정을 거쳐 결과를 청소년들과 공유했다.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던 청소년들을 숙의 민주주의 광장에 합류시킨 것이다.
채택된 일부 의제는 군포시가 집행하고, 일부는 경기도의 주민참여 공모 사업으로, 올해 4월 여성가족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전설 프로젝트 시즌2'를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면서, 청소년들의 숙의 민주주의 실험이 더욱 값지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연명으로 제출된 지역 개발에 대한 공론장 개최 청구(02.09)가 있어 공론화분과위원회에서 공론장 개최를 한참 준비 중이었다. 공론장의 핵심은 '가치풀자(가치를 같이 풀자)'로 결과만이 아니라 '결과에 승복하기 위하여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에 정성을 쏟는다.
이는 로마시대 집회소(forum)를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견해와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이끌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조금 더 실현하던 모습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한 시장은 시민의 닫힌 입을 열게 하되, 주장이 아닌 합리적 토론을 통한 합의로 100인 위원회라는 열린 공간에서 시민의 다양한 소리를 끌어내고 합의를 하기 위한 조력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군포시는 공무원과 시민이 함께 공부하며 토론촉진가(퍼실리테이터)를 양성했다.
100인 위원회가 제도적 장치라면 토론촉진가는 인적 구성으로, 100인 위원회 준비 시 함께 양성했다. 그동안 양성한 47명의 토론 조력가는 군포시가 주관하는 원탁회의, 공청회, 일자리 토론회 등 다양한 토론에 참여하여 성숙한 토론 문화를 이끌고 있다.
토론촉진가로 참여하는 김준열씨는 "목소리 큰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던 토론장이 소외되는 사람 없이 참여하는 공론장의 모습에 희열을 느끼며, 시민의 가슴과 머릿속에 있는 막연했던 주장을 이성적인 소리가 되어 상대에게 전달되도록 한다"며 조력자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군포시의 또 하나의 민주주의는 민관이 함께하는 협치 활동가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가 부활되고 가장 많이 등장한 용어가 협치지만, 협치의 주체는 시민사회단체였다. 군포시는 시민을 주체로 세우기 위해 협치 활동 강사를 양성하였고, 공무원 650여 명을 비롯해 시민들을 지난 3년동안 약 3천여 명을 교육하였다.
올해부터는 군포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협업을 통하여 토론촉진가와 협치 활동 강사를 확대․양성하는 사업을 진행 중에 있어, 군포시의 실험이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밑거름이 될지 주목된다.
최근 100인 위원회 참여자들은 스스로 1기를 평가 중이다. 이들은 "민주적으로 잘 만들어진 조직과 조례일지라도 시대의 흐름과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군포시의 100인 위원회는 완전히 구성되기 전인 2019년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서 수상하면서 이목을 받았고, 2021년에는 거버넌스 지방정치대상에 수상하였다.
시민의 입을 열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군포시의 100년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실험에 100인 위원회가 주목받고 있다. 청소년과 시민은 참여로의 연대를, 행정은 지원으로의 연대를 통해 군포시의 직접 민주주의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의미 있는 걸음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