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출마선언은 형식부터 내용까지 180도 달랐다.
우선,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대비가 극명했다. 윤 전 총장의 출마선언은 전통적이라 할 수 있다. 6.29 선언 날짜에 맞춰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연설과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틀 뒤인 1일 이 지사는 미리 제작해놓은 14분짜리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는, 간단하고도 전례 없는 방식으로 대선 출마선언을 갈음했다.
윤 전 총장 출마선언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20명 넘게 집결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윤석열로 정권교체' 등 현수막을 든 수백 명의 지지자들이 몰려 전통적인 세과시의 형태가 됐다. 반면, 이 지사의 출마 동영상엔 이 지사 혼자다. 이 지사 측은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상황을 감안해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대비되는 출마선언 형식에는 각 주자가 처한 정치 현실이 반영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1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잠행을 거듭하던 윤 전 총장 입장에서 6.29 일정은 정치 입문을 선언하는 첫 행보였기 때문에 공개 기자회견 방식을 통해 자신의 출마 경위를 직접 설명하는 게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석에 동의한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반면 이 지사는 대선주자로서 이미 오랫동안 노출돼온 사람이기 때문에 동영상 출마 같은 형식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짚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윤 전 총장은 사실상 국민의힘 경선부터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보수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계기가 필요했다"라며 "이 지사 출마가 윤 전 총장 선언과 시차를 두고 이뤄졌다는 점이나, 간단한 동영상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선 최근 당내 '경선연기' 파고를 넘은 이 지사 쪽의 여유도 느껴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보수 주도권 확보차 '이념' 앞세운 윤석열
코로나 비대면 '맞춤형' 출마선언한 이재명
형식만큼이나 달랐던 건 내용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자신의 보수 정체성이나 이념을 규정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기본주택 등 자신의 구체적인 정책을 어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박성민 대표는 "윤 전 총장은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는 등 자신의 철학과 이념,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과 국가관을 주로 얘기했고, 이 지사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뭘 하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에 치중했다"고 분석했다.
엄경영 소장은 이에 "최근 야권 일각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띄우고, 홍준표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윤 전 총장 입장에선 흔들리는 반문(반문재인) 대표성을 회복하고 보수 1등 주자로서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라며 "야권의 복잡한 대선 구도 속에 윤 전 총장이 자신의 보수 정체성과 명확한 철학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이 지사에 대해선 "대선출마 '재수생'인 점을 고려하면 국정 비전, 특히 정치개혁 비전의 깊이는 다소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예컨대 당장 당내 다른 주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개헌 문제라든지, 지난번 선거법 개정 논란 때 불거진 위성정당 문제를 위한 해결책 등 큰 줄기들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대통령은 전체 국민의 대표여야 하는데, 이 지사가 서민과 기득권을 지나치게 갈라치는 듯한 선동적인 표현들이 우려되는 면도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김형준 교수는 두 주자가 공히 주장하고 있는 '공정' 담론이 앞으로 논쟁 지점이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김 교수는 "출마선언상 윤 전 총장과 이 지사가 모두 공정을 강조했지만, 윤 전 총장의 공정은 시장 경쟁주의에 의한, 예컨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얘기하는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것일 가능성이 크다"라며 "반면 이 지사는 역시 복지를 통해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의 공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공정과 상식으로'를 핵심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이 지사는 "공정성 확보"와 함께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 복지확충에 더해 경제적기본권 보장"도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공통점도 있다... D-250 막 오른 양강 경쟁
출마선언의 형식과 내용면에서 크게 대비되는 여야 1등 대선주자지만, 한 가지 공통된 행보도 있었다.
이 지사는 이날 출마선언 직후 첫 공개 행보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택했다. 이 지사는 대선주자들이 통상 찾았던 대통령 묘소 대신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에 참배하며 "누군가는 이름이라도 남기지만, 누구는 이름조차 남길 수 없고 위패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분들이 이 나라를 지키셨다"고 했다.
윤 전 총장 역시 지난 6월 5일 같은 장소를 찾아 충혼탑 지하 무명용사비와 위패봉안실에 헌화한 일이 나중에 알려졌다. 일반 묘역에선 월남전·대간첩 작전 전사자 유족을 만나 위로했던 그는 당시 방명록에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적었다.
양측 모두 '대한민국을 지킨 것은 민초들'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나타내며 맞불을 지핀 것이다. 내년 3.9 대선까지는 오늘로 250일. 여야의 후보 경선 등의 관문을 남겨두고 있지만, 양강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과 윤석열의 경쟁은 시작부터 절묘한 대비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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